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31
< 염불보다 잿밥> >
7/5 금요일 (Saint-Jean-Pied-Port 9.2km)
이곳의 여주인은 푸른색의 린넨 원피스를 입은 호리호리한 중년 여자로 아주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를 가졌다. 그녀는 우리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정원에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텐트와 캐빈이 있었다. 우린 다행히 캐빈에서 잘 수 있었다. 텐트에선 빗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하루 종일 걸으면서 자연에 노출되어 있었으니 잘 때만이라도 편히 자고 싶다. 게다가 텐트에서 자면 화장실도 친환경적으로 쓰는 구조다. 오우 노 땡큐ㅋ
그녀가 거주하는 거실의 한쪽은 부엌이고 그 옆에 식탁이 있다. 한쪽은 작업하는 공간인 것 같다. 현대식과 전원 풍경이 잘 어우러지게 장식을 해 놓았다. 손님이 우리뿐이라 우린 셋이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의 말로는, 야채는 다 이 동네에서 나는 것이고, 치즈며 그 밖의 것도 다 이 고장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식사라 했다.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였다.
그녀의 거실에 있는 한쪽 장식 장위에 작은 부처상이 있어 내가 물었다.
“불교 신자세요?”
그녀는 자기가 뼛속까지 크리스챤이란다. 하지만 일상에서 크리스챤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을 때가 있다나. 자기가 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너무나 평온하고 친절하며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그녀는 부처상을 하나 샀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부처상 앞에서 명상을 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으음.... 그렇군. 그럴 수도 있군.’ 그러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다.
요즘 한국인들이 산티아고로 걷기 위해 많이들 오는데 왜 그런 거냐는 거다. 진지한 그녀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오천년의 역사다. 하지만 실생활과 결합되어 내게 종교적으로는 그리 영향을 못 끼치는 것 같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내게 ‘신’이라는 개념을 깨우쳐 주었다. 나는 십자가 앞에서 명상을 하고 신과 대화를 한다. 그 신에 대한 역사가 궁금하지 않겠나.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이백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백년은 박해의 역사다. 그 이전의 기독교 역사를 보고, 체험하고자 왔다.‘
대답이 잘 되었나 모르겠지만 그녀는 만족한 듯 했다. 아무튼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현상이 이들에겐 좀 신기하게 보여 지나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녀의 정원을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정원에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며 밖으로 나갔다. 정원엔 갖가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녀는 기뻐하며 꽃들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해주었다. 얼마 전 골프공만한 우박이 쏟아져 정원의 꽃들이 많이 피해를 봤단다. 햇빛도 예년보다 많지 않아 열매들도 덜 달다고 한다.
그녀는 세탁기로 빨 수 있으니 세탁물도 달라하며 빨래도 해주었다. 마침 언니야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주교님께 받은 손수건이 있어 그녀에게 선물해 주었다. 그녀는 엄청 기뻐하며 자신의 장식장 위에 고이 모셔 놓았다.
다음날 아침, 우린 그녀가 차려주는 아침을 잘 먹고 생장피드폴로 출발했다. 날씨가 아주 맑고 쾌청하다. 목표는 13키로미터. '으음~~ 그쯤이야' ㅋ 이제 발도 많이 안정적이고 루르드 이후 몸도 좀 안정적이라 다시 배낭도 꺼내들었다.
바람도 없는 쨍쨍한 날씨라 조금 걷다보니 땀이 뻘뻘 난다. 저만치 앞서가는 언니야는 우리가 도착하는 숙소 앞에 리들이라는 꽤 큰 슈퍼마켓이 있다며 빨리 가서 장을 보자고 나를 유혹했다. 오우 슈퍼마켓이라 고라~~ 생장피드폴보다 리들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언니야를 쫒아가느라 허벌나게 걸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어 왔다고? ㅋ 그런 말을 한지 하루도 안지나 나는 수퍼마켓에 널려있는 과일과 먹거리에 사활을 걸고 콧구멍에 바람을 뿜어대고 있었다. 길이 오르막 내리막이 없진 않으나 그리 험하지 않아 큰 고생 없이 무사히 생장피드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서 리들의 간판이 보일 때의 그 환희란!!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마중나오신듯 반갑기가 이를데 없다.
이곳은 꽤 큰 도시로 도착하자마자 점심부터 먹었다. 샹그리아로 목을 축이고 푸짐한 바스크식 샐러드와 그라땅같은 건데 달걀과 치이즈와 약간의 야채가 들어간 뭐 그런 걸로 시켜먹었다.
얼른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는 샤워 후 다시 나와 드디어 리들로 갔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점심은 사서 먹을 예정이다. 꽤 큰 마켓에 널려있는 먹거리를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천국이 따로 없다.ㅋㅋ 우린 과일과 상추와 샐러드 밥과 주스, 초코렛 등을 사갖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더운 것인지! 내리쬐는 뙤약볕에 눈을 뜰 수 조차 없이 땀이 난다. 호텔방도 쩔쩔 끓어서 테라스로 나있는 문을 활짝 연채로 우린 빤바람에 앉아 방안에서 샐러드 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었다. 쌈도 싸먹었다. 우리의 순창고추장은 참말로 짱이다. 무슨 음식이든 내 입에 맞게끔 변신을 시켜주니 말이다.
7시 미사를 보기로 했는데 내심 이리 더워 가겠나 싶었다.(늘 이런 식이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하느라 멈칫하고, 언니야는 몸이 벌써 나간다.) 밥 먹고 여섯시 반에 나오니 해가 구름에 가려 시원하다. 미사를 끝내고 강복 받고 나오니 더 시원했다. 우린 내친김에 성벽도 올라가고 내일 갈 길까지 다 돌아보고 숙소로 들어왔다.
이곳은 일몰이 10시다. 아홉시 넘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뇌성이 울리더니 폭우가 쏟아진다. 오늘 처음 반팔을 입었는데 내일 다시 긴팔 티셔츠를 입어야 할 것 같다. 하루 빼고 한 달 내내 입었으니 본전은 뽑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