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반복, 민주주의 실패, 자살골, 공멸
미국은 18세기 독립 이후 신생국으로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실시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에서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관세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는 이후 미국 경제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19세기 내내 미국은 영국 등 선진 공업국과의 경쟁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율 관세 정책을 유지하였고, 특히 남북전쟁 이후 북부의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강화됐다.
또한 미국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19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수천 개의 수입 품목에 대한 관세가 대폭 인상됐다. 그러나 이 조치는 국제 교역 전반의 위축을 초래했고, 유럽 등 주요 교역국들이 보복 관세로 맞서면서 세계 무역량은 급감했다. 대공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세계경제는 무역전쟁이라는 결정타를 맞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혼란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는 미국만 살리면 된다는 자국 우선 고립주의, 그리고 정치적 효과를 노렸지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미국 내 실업률은 더욱 악화됐고 경제 위기는 심화됐다. 하나로 연결된 상호의존적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미국도 세계도 모두 망가졌다. 후버는 정치적으로도 처참한 평가를 받았고 재선에 실패한다. 후임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세계 질서 재편을 주도하면서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전략을 전환한다. 1947년 GATT 출범, 1995년 WTO 창설 등을 통해 다자무역 체제를 구축하고, 세계화를 선도하면서 자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냉전기에는 자유시장경제를 이념적 무기로 적극 활용하며, 동맹국과의 무역 자유화를 통해 팽창하는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를 확립했고, 이러한 기조는 20세기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급부상한 중국,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등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은 미국 제조업 기반의 붕괴와 중산층의 쇠퇴를 야기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한 반발로,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며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대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했다. 이 시기 미국은 NAFTA 재협상, 미중 무역전쟁 등 적극적 개입에 나섰으며,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국내 불만을 반영한 탈세계화 흐름이 본격화됐다. 이를 통해 일부 산업의 회복을 시도했지만,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동맹국 간 마찰을 동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재선에 실패해 바이든에게 정권을 넘겼던 트럼프가 2025년 귀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공세를 강화함과 동시에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목표로 했던 보호무역 정책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철강이다. 미국은 20세기 초까지 세계 최대의 생산국이었지만, 1970년대 이후 가격 경쟁력과 기술 혁신에서 후발 주자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1980년대 이후 반복적으로 수입 철강에 대한 반덤핑 관세와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특히 2002년 부시 행정부와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각각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 수입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단기적으로 일부 기업의 수익을 보호했을 뿐 철강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저하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미국 내 철강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정을 겪으며 제조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됐고, 미국 철강산업의 상징인 US스틸은 일본과 매각 협상을 진행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다음은 조선업이다. 미국은 1920년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미국 항만 간 화물 운송은 반드시 미국산 선박과 미국인 선원을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조선업과 해운업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자국우선주의 조치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낳았다. 높은 조선 단가와 인건비로 인해 미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됐고, 세계 선박 시장에서 점유율은 1% 미만으로 하락했다. <존스법(Jones Act)>은 오히려 해운 물류비용을 상승시켰고, 석유·LNG 수송과 같은 전략산업에서도 해외 기술 의존성을 높인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미국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는 물론 군함 건조와 수리도 한국 등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됐다.
다음은 자동차다. 1980년대 일본 자동차의 수입이 급증하자, 미국 정부는 일본에 수출 자율규제를 요구하고, 일부 차종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1981년 <미·일 자율수출규제(VRA> 이후, 일본 업체들은 미국 현지 공장을 설립하면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고, 오히려 디트로이트 3사(GM, Ford, Chrysler)는 기술 혁신과 품질 개선에 실패하며 시장을 잠식당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해당 시기는 “보호가 혁신을 가로막은 시기”로 평가된다. 이후 허약해진 GM과 크라이슬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지 못하고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하게 된다.
다음은 반도체다. 역시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산 반도체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요구했다. 이 조치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의 위축에 일조했지만, 근본적 체질 개선보다는 정치적 보호에 의존하며 R&D 투자와 생산 공정 혁신에서 뒤처진 미국 반도체 산업은 아예 경쟁력을 잃게 됐다. 이후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 공정 미세화와 수율 개선에서 앞서가며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현재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10% 미만이다. 2022년 시행한 <칩스법(CHIPS and Science Act> 등으로 산업 부활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는 실패한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다음은 농업분야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 중 하나지만, 동시에 높은 농업 보조금과 관세 장벽으로 자국 시장을 보호해 왔다. 특히 1985년 <식량안보법(Food Security Act)>, 1996년 <농업개혁법(FAIR Act)> 등을 잇달아 시행하며, WTO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각종 수출 보조금과 가격 보장 정책으로 세계 시장의 왜곡을 초래해 왔다. 그러나 이런 보호조치들은 농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대형 농가 중심의 수익 보전으로 이어졌고, 소규모 농가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또한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옥수수 수입을 중단하자, 미 농가들은 수출길이 막히며 연쇄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2020년 미국 정부는 농가 지원금으로 약 460억 달러(약 50조 원)를 긴급 투입해야 했다.
보호무역의 정책 실패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영국은 1967년 철강산업을 국유화하여 브리티시스틸(BSC)을 설립한다.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통제했지만, 기업의 혁신과 효율성을 저해할 뿐이었다. 경쟁력 약화와 재정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BSC는 결국 1980년대 들어 민영화됐다. 많은 공장이 폐쇄됐고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중국의 경우엔 정부가 전략적으로 태양광 산업을 지원했다.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높아졌지만, 정부의 대규모 지원은 과잉 생산을 초래하였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2013년 중국의 대표적 태양광 기업인 Suntech Power가 파산신청을 하는 등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은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와 엄격한 수입 제한, 그리고 보조금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 농업 종사자들을 보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농업 생산성 향상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 농산물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됐고, 국내 소비자들은 높은 식료품 가격을 부담해야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정치와 보호무역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 개발과 혁신이라는 기업 본연의 자세로 경쟁력을 강화한 경우엔 어떻게 됐을까. 1993년, 미국의 전통적인 대형 제철소들이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스틸 다이내믹스는 인디애나주에 독일 SMS사의 첨단 박판주조 기술을 도입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 한 미니밀(mini mill)을 설립하고, 비노조(non union) 체제로 경영 유연성까지 확보하며 미국 철강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이들은 설립 14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 6개월 만에 흑자를 기록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포드 F-150 픽업트럭의 A프레임 서스펜션 암에 사용되는 고품질 강판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동유럽의 폴란드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후, 1990년대 초반부터 경제 자유화 정책을 적극 도입했다.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며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했다. 2004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폴란드는 구조 기금을 활용하여 인프라를 개선하고,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s)를 설립하여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그 결과, 제조업과 기술 산업이 급성장하며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다. 현재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로, 생활 수준의 향상과 함께 서유럽 국가들을 따라잡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섬유산업의 경쟁력이 돋보인다. 1978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한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며 전반적으로 무역장벽을 완화했는데, 특히 섬유산업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고 경쟁이 촉진되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은 1980년 4.6%에서 2005년 24.1%로 급증했다. 생산량도 같은 기간에 18배 증가하며, 중국은 세계 최대의 섬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성과는 무역 자유화와 경쟁 촉진이 산업 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준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반 정도인 9억 8,315만 ha를 영토로 하는 미국은 국토 면적으로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다. 러시아, 캐나다의 경우 북부의 상당 부분이 동토(凍土)임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이용 가능한 국토의 면적은 미국이 1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동쪽에 대서양, 서쪽에 태평양을 접하고 있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배타적 경제수역(EEZ)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관광자원, 전 세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모여든 3.5억여 명의 인구는 세계 3위로, 모두 그 넓은 영토로 인해 가능한 것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전장(戰場)이었던 유럽으로부터 대양 너머에 있으므로 인해 국토를 보존했고 동시에 전쟁물자 생산기지가 됐다. 전쟁과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급격한 산업화로 이어졌다. 승전국으로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경제가 초호황을 맞이한 미국에서 인간의 탐욕이 폭발했다. 대공황이 일어났고 경제위기는 세계로 확산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2차 대전 때도 미국은 관망만 하다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자국 영토가 침범당하자, 그때서야 참전했다. 역시 본토는 온전하였고, 전략물자 생산기지가 됐고 덕분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참전과 지원을 조건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전 세계에 갖고 있던 수많은 항구들을 넘겨받았다. 함대와 잠수함을 정박시킬 수 있는 세계 전역의 항구에 성조기가 걸리고 미국의 태양이 떠올랐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폐허가 된 유럽의 복구와 경제적 회복을 위한 마셜플랜을 추진하고, (UN)국제연합 창설을 주도한다. 인류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익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어지는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세계경찰국가로서의 역할도 역시 사회주의 확산 억제 등 자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었지, 순수한 인류애 차원의 무료봉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2007년 세계금융위기도 미국발이었다. 역시 탐욕으로 미국 금융시스템이 망가졌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경제위기에 내몰렸다. 원인도 결과도 1929년 대공황과 판박이다.
그간 미국이 서방 자유세계를 위해 헌신한 부분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임도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만큼 대공황,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촉발했다는 사실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간 인류사의 대부분, 특히 세계적 규모의 전쟁들의 무대가 됐던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은 여차하면 고립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보호무역 장벽을 쌓아 올렸다. 그러다가도 자국에게 유리할 때는 세계화를 주도했다. 1776년 7월 4일 독립 이후 미국은 자유, 다양성, 인권 등 인류 공통의 가치들을 수호하는 매력국가였고, 아직은 유효하다. 하지만 과거의 유산으로 버티는 시간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다. 지위와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보호무역 같은 장벽을 쌓을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