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국민적 정당성과 리더십의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 행정부 수반이 의회와 별개로 선출되기 때문에 독립성과 추진력이 확보되며, 위기 상황에서 빠른 결단과 집행을 통해 일사불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특히 국가 안보, 외교, 경제 등 특정 분야에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장기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 국정의 일관성 확보에 유리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다 보면 견제장치가 약화되기 쉽고, 대통령이 의회의 다수당이 아닐 경우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대통령과 의회가 갈등을 빚을 경우, 정책 결정이 지연되거나 권력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모든 권력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로, 민주주의 시스템이라기보다는 ‘합법적 군주제’에 가깝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당 대표이자 정당의 공천권까지 장악하며, 인사권과 예산권, 국정 어젠다 설정권을 독점한다. 이러한 구조는 국회, 정당, 관료조직 등 제도적 견제 장치를 무력화시키며 대통령 1인에 대한 충성심 경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대통령의 통치 성향에 따라 정부 전체가 흔들리는 극단적 정치 의존 구조가 만들어진다. 레임덕, 권력 남용, 정책의 단절 등도 결국 제왕적 구조에서 비롯된 고질적 폐해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 말에 고립되거나 수사 선상에 오르는 비극 또한 이 구조의 반복되는 증거다.
대통령 단임제 역시 국정의 일관성과 책임 정치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원인이다. 임기 초반에는 전 정권 지우기에 몰두하고, 중반에는 다음 선거 준비에,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과 권력 누수로 국정 동력이 상실된다. 단임 5년이란 시간은 장기 비전보다는 단기 성과 위주의 정책에 쏠리게 만들고,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포퓰리즘적 선택을 유도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어떤 유능한 대통령이 등장해도 지속가능한 개혁을 완수하기 어렵고, 정치가 ‘정책의 기술’이 아니라 ‘이미지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치는 국민 신뢰를 잃고, 국정은 늘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미국의 대통령제도 한국보다는 제도적 견제가 강하지만,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심각한 교착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상하원 간 갈등, 정당 간 협치 부재, 대통령의 행정명령 남발 등은 대통령제가 더 이상 안정적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특히 대통령제의 단점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 하나로 외교, 국방, 환경, 공공질서 전반이 요동쳤고, 임기 말에는 의회 폭동까지 발생했다. 이런 모습은 세계 민주주의의 상징이던 미국조차 대통령제의 구조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권력 분산과 유기적 협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총리와 내각이 국회의 신임 아래에서 행정 권한을 행사한다. 행정과 입법이 대립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로 기능하면서도, 내각이 국정 운영에 실패하면 불신임으로 곧바로 교체할 수 있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정당 간 연립정부 구성이 일상화된 시스템에서는 극단적인 정책보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점진적 개혁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포퓰리즘의 유혹을 줄이고,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다. 총리는 국가의 얼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다수당의 지도자이자 의회 중심의 실무책임자로 기능한다.
독일은 의원내각제의 안정성과 실용적 리더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 중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강력한 의회 중심의 의원내각제를 구축하였다. 총리(수상)는 연방 하원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며, 한번 선출되면 임기 내내 강한 정책 추진력을 갖는다. 특히 ‘건설적 불신임 제도’는 총리를 해임할 때 반드시 새로운 총리를 함께 선출하도록 하여, 정권의 공백과 혼란을 막고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해 왔다.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 전 총리는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정권의 연속성과 에너지 전환, 복지 개혁, 난민 정책 등의 일관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총리가 단순히 행정의 책임자일 뿐 아니라 정당 정치의 중심이 되기에, 권력은 분산되되 국정은 통합적으로 운영된다. 특히 정당의 자율성과 국회의 주도성이 강화되면서, 대통령제보다 훨씬 유연하고 책임 있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연정 체제 속에서도 실용과 협치를 중시하는 정치문화 덕분에, 독일은 유럽의 중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대표적인 북유럽 복지국가로, 정당 간의 협치를 바탕으로 한 다당제 기반 의원내각제가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년 가까이 사민당이 장기 집권하며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에도 소수 정당 연정이나 협치를 통해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지속되고 있다. 의회와 내각 간 협력 관계가 강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정책 결정 과정은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며 복지 확대, 노동시장 안정화, 교육 개혁 등 장기 전략을 가능케 했다. 또한 여야 간 합리적 타협 문화는 정부 교체 시에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노르웨이 역시 스웨덴과 유사한 의원내각제 기반의 다당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자원 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장기간 안정적인 내각이 운영되었고, 공공정책 수립 과정에 전문가, 시민사회, 정당이 고루 참여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신뢰도가 높다. 석유기금(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 관리에 있어 정당 정치의 책임성과 합의제 의사결정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해왔으며, 이는 미래 세대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정책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민들은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신뢰하며, 정치적 극단주의가 적은 편이고, 내각 구성원들에 대한 전문성과 도덕성 기대치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
덴마크는 대표적인 다당제 의원내각제 국가로, 다양한 정치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지만 협치를 통해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유지해 왔다. 특히 ‘소수 정부’ 체제가 일반화되어 있어, 정당 간의 협상과 타협이 정치 문화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이후 여러 정당이 집권을 경험했지만, 그 어떤 정부도 급진적인 정책 변화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복지, 기후, 교육 분야에서 정당 간 협력을 통해 장기 계획이 수립되고, 행정과 입법의 연결도 유기적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도 매우 높은 편이며, 권력의 수평적 분산이 내각제의 건강한 작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가장 체계화된 합의제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의원내각제 아래 정당 간 협상을 통한 연립정부 구성이 일반적이며, 다양한 사회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치 구조가 정착돼 있다. 정권이 자주 바뀌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은 연정 협약에 따라 일관되게 유지되며, 급격한 정책 뒤집기나 혼란은 드물다. 특히 마르크 뤼터 총리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다양한 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장기 집권하며 경제 안정, 이민 정책, 교육 개혁 등을 이끌었고, 정치적 유연성과 합리성이 네덜란드 정치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핀란드는 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총리가 행사하는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에 제한적인 권한만을 가지며, 국내 정치 전반은 총리와 내각이 주도한다. 핀란드는 교육과 복지에서 세계적 모범 사례로 꼽히며, 이는 안정적인 내각제 운영과 정당 간 합의에 기반한 장기 전략 덕분이다. 최근에는 젊은 총리들의 연속 집권이 주목받았고, 특히 산나 마린 총리는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팬데믹 대응, 복지 개혁 등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보였다. 정당의 다양성과 정책의 유연성이 결합되어 사회 전반의 통합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차례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를 경험했다. 이제는 책임정치와 권력 분산을 위한 제도 개편 논의를 본격화할 시점이다.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의 전횡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정당 중심의 정치문화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국민들의 직선제 선호, 정당 구조의 미성숙 등 장벽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혁의 불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법 개정, 선거제도 개편, 의회 기능 강화 등의 제도적 전환을 통해, 보다 유연하고 책임 있는 내각 중심의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한 사람의 실패가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구조는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현재 우리 정치의 시스템은 요행에 요행에 요행을 바라는 격이다. 요행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가 선택되고, 요행 제대로 된 정책들이 선택되고, 요행 그가 속한 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경우에만 성공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원내각제는 총리가 모든 의원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검증받아 선출되는 구조다. 정책도 기본적으로 정당들 간의 합의에 기반해 선택된다. 또한 단독 과반이든, 연정이든 총리는 다수파의 수장이 되는 것이므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국정이 안정된다.
한국 정치의 근본적 개혁은 권력 구조의 개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시도는 본질을 외면한 처방에 불과하다. 지금의 정치적 파행과 비효율, 반복되는 정권 교체기의 혼란은 대통령제의 근본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의원내각제로의 이행은 단지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협의와 합의를 중심으로 한 정치 운영 문화, 그리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국민 중심의 책임정치와 권력의 수평화를 위해, 한국도 새로운 대안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다만 의원내각제라고 해서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다수파가 등장하지 못해서 지나치게 빈번하게 정권이 교체된다면 오히려 정책의 일관성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다당제와 연립정부 구조가 복잡하게 얽힐 경우 국정 운영이 느려지거나 정국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우리의 대통령제가 잇달아 실패를 경험하고 있듯이, 이탈리아는 잇달아 의원내각제의 실패를 겪고 있다. 80년간 무려 70회 이상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당 평균 존속 기간이 1년여밖에 안 된다. 상원과 하원 모두 각각 10개 넘는 정당들이 난립하는 구조에서 연립 내각이 구성이 불가피한데, 추구하는 철학과 정책 목표가 달라 갈등과 내분을 겪다 결국 붕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등 특정 시스템이 정치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의원내각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내각 교체가 유연하고 국민 정서와 정책 흐름이 정당을 통해 매끄럽게 연결되면서 정치의 신뢰성과 정책의 지속성이 높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정이 안정되고 경제·복지·기후 등 다방면의 글로벌 지표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등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그들만의 성공한 의원내각제 모델이 확립된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의원내각제가 현재 우리 겪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들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부가 의회의 신임을 바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 간 협력이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정당 간 협의와 타협을 통해 연립정부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총리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신속하게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정치적 지형에 맞는 여러 장치들을 추가로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어렵다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결합한 이원집정부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