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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차별

by THE RISING SUN

경쟁은 불가피하다.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개인은 생존하기 위해 경쟁하고, 국가는 번영하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은 우리를 자극했고, 인류를 발전시켰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치까지도 모두 경쟁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경쟁은 살아남기 위해 본성에서 단순하게 시작됐지만, 이성을 통해 고차원으로 끌어올려졌고 현재의 인류 문명과 역사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패를 가른다.


어쩌면 우리가 환호하고 칭송하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승자의 문명이고 승자의 역사다. 적자생존.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가 도태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지극히 부합한다. 만약 이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생태계는 교란되고 자연은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철저하게 적자생존의 생태계 원리를 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끝은 제국주의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 인류는 공멸 직전에서야 가까스로 멈춰 섰다. 그리고 신사협정을 맺었다.


우리는 분명 자연의 일부이지만, 온전히 자연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 안에 살지만,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자연에서 힘의 논리는 항상성 안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질서가 유지되고 그들의 세계는 보존된다. 하지만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한계가 없다. 본성은 다만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만큼의 욕망을 생산할 뿐이지만, 이성은 끝없이 부풀린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화려하게 포장한다. 욕망은 폭발한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다.


인간 욕망의 공간적 폭발이 제국주의라면, 시간적 폭발은 신분제다. 경쟁에서의 승리로 쟁취한 전리품들을 대대손손 영구적으로 세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화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배층과 피지배층 정도였던 것이, 귀족과 평민과 천민으로 나누고, 다시 귀족들의 중에서 왕족을 구분하고, 귀족들도 등급이 매겨진다. 또한 공고화된다. 물리적으로 뒤엎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고, 제도, 교육, 문화를 통한 세뇌까지 이뤄진다.


그랬던 것이,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간 안에서 몇 가지 분기점을 맞는다. 한계 없는 인간의 욕망이 한계에 닿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발동된 욕망이, 넘어가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계에 결국 도달했던 것이다. 경쟁은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낳기도 했지만, 치열해지다 못해 극렬해지면서 용인의 범위를 넘어섰다. 극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문명이었다.


첫째, 사회주의의 탄생이다. 사회주의는 신분제의 폐단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극한이자 동시에 신분제의 폐기다. 피지배계급의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이었다. 그 이전까지 인간 경쟁의 결과로 당연시되어왔던, 모든 문명과 역사의 근간이 되어왔던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분제의 오류를 인식했고, 플라톤의 이상국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루소의 이상사회 등으로 대안을 제시했었다. 그것이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단계를 거쳐, 러시아 혁명으로 현실화 됐던 것이다.


둘째, 제국주의의 종언이다. 강할수록 더 많은 것을 갖는, 한계 없는 욕망과 경쟁의 끝에서 멈춰 선 것이다. 인류는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욕망은 더 타올랐고 경쟁은 심화됐다.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자들은 더 가지려 했고, 패배한 자들은 만회하려 했다. 불과 20여 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다시 발발했고, 수천만 명을 더 죽이고 다치게 한 후에야 겨우 제동력이 작동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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