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대의 리더십

실용, 실력, 실리

by THE RISING SUN

인류는 늘 최고의 리더십을 추구해 왔다. 지도자의 역량에 공동체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리더의 기준은 달랐고, 그에 따라 선호하는 리더의 유형도 달라졌다.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시기에는 무엇보다 군사적 리더십이 중시됐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나라를 이끌었다. 유능한 군인은 영웅이 됐고 대통령이 됐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프랑스의 드골, 미국의 아이젠하워처럼 포연 자욱한 아비규환에서 국민을 구해낸 군사 지도자들은 전후 국가의 상징이 됐다.


총성이 멈추고 평화시대가 되자,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바뀌었다. 전쟁 영웅보다는, 책상에서 계획을 세우고, 원탁에서 토론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일을 잘하는 이들이 각광받았다.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설득과 협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문과형 리더들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엔 말과 글이 무기였다. 링컨과 루스벨트, 케네디 등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논리로 설득해서 공감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문과형 지도자들은 때로 현실보다 이상을 좇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체임벌린이다. 그는 뮌헨에서 히틀러에게 양보하고 돌아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지만,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을 막으려던 이상주의가 도리어 전쟁을 불러왔던 것이다. 미국의 지미 카터도 도덕성과 인권이라는 명분에 집중했지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앞에선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지도자 모두 한 인간으로서는 훌륭했지만, 시대의 요구를 버텨낼 리더십은 부족했다. 정치는 이상과 감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냉정한 계산과 복잡한 조정, 그리고 거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과형 리더십은 그 지점에서 종종 머뭇거렸다.


20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정치권은 주로 문과 출신, 특히 법학 전공자들이 주도해 왔다. 제도와 법률 중심의 정치는 게임의 룰과 협상을 다루는 법조인에게 유리한 구조였다.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끄는 일이기에, 논리와 설득 중심의 문과형 리더십이 적합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칭했던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은 “궤변론자”로 불렸다. 실질이 없는 정치는 공허한 말의 향연일 뿐이다. 특히 기술과 속도를 요구하는, 데이터 분석이나 과학적 사고가 절실한 현시대의 문제들 앞에서 문과형 리더십은 한계를 드러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이과 출신 정치 지도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양자화학 박사였던 그녀는 정치에 입문한 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리더십으로 독일, 나아가 유럽을 이끌었다. 유로존 위기나 난민 문제, 코로나 팬데믹 등 복잡한 국면에서도 이상보다는 현실, 감정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했다. 그녀는 ‘천천히 가도 정확히’라는 원칙으로 구조적인 해법을 추구했다. 이는 법학이나 정치학 출신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메르켈의 성공은 과학적 사고가 정치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메르켈은 정치를 실험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녀에게 정치란 이념 대결이나 말싸움의 무대가 아니라, 분석하고 탐구하여 모형을 구성하고, 변수와의 관계를 정리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복잡한 사안을 구성요소별로 쪼개고, 상호작용을 분석하며, 가능성을 수치처럼 배치했다. 감정은 방정식을 흐리는 잡음이었고, 충돌은 제거해야 할 외부 변수였다. 그녀의 발언은 설계도 같았다. 정치적 언어보다 기술 매뉴얼에 가까운 말투로, 그녀는 통치보다는 조정, 연설보다는 계산에 가까운 정치를 실현했다.


임기 초반 카리스마 없고 느리다는 의미였던 “메르켈하다”는 허세나 선동이 없이 실질적이고 신중하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되고, 의도된 결과를 낳는 메르켈의 과학적 정치는 위기의 시기마다 안정감을 주었다. 유로존 경제위기 때 그녀는 유럽 재정 질서를 재설계했고, 난민 사태 때는 국내 여론을 억누르며 정책의 원칙을 고수했다. 코로나 팬데믹에선 전문가들과 데이터를 공유하며,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독일 사회를 조율했다. 정치가 감정의 과잉으로 흔들릴 때, 메르켈은 침묵과 계산으로 중심을 잡았다.


메르켈은 말하자면 ‘정치 엔지니어’였다. 그녀는 설계 없이 움직이지 않았고, 감각보다 근거를 신뢰했다. 카리스마 없이도 권위가 있었고, 쇼맨십 없이도 존경받았다. 검소한 일상과 절제된 언행은 권력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였고, 그것이 국민에게 신뢰를 줬다. 메르켈은 정치에서 ‘정치적인 것’을 줄여나간 사람이다. 이념, 구호, 상징 대신 실용, 분석, 설계로 채운 정치. 그 침묵과 반복의 리더십은 기계 같았고, 그래서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굳건했고 오래갔다.


메르켈 외에도 세계에는 이과형 지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수학과 철학 모두를 공부했고,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역시 전통적인 법률가가 아닌 기술과 조직 관리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정치를 단순한 이념 싸움이 아닌, ‘시스템 운영’과 ‘위기관리’, 그리고 ‘실질적 설계’로 접근한다. 복잡한 세계에서 이과형 리더십은 기술혁신과 국가 전략의 연결에 적합하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의 우위를 결정하는 국가 경쟁력에서 과학기술의 비중이 점점 커져가는 흐름 속에서, 이과형 지도자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물론, 이과형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고가 곧 정치 역량의 모든 것은 아니다. 미국의 허버트 후버는 공학자 출신 대통령이었지만, 대공황 초기 오판과 실책만 반복하다가, 실기하고 결국 무너졌다. 숫자에 강한 사람이 때론 현실에 둔감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사람보다 시스템을 더 신뢰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과형 리더십은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하되, 사람을 이해하고 정치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과학적 사고 위에 인간에 대한 통찰이 더해질 때, 비로소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은 완성된다.


정치 지도자에게 적합한 전공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또한 전공이 한 인간의 성품, 소질, 역량 같은 것들을 대변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현대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면, 무력으로 권좌를 차지한 군사독재자들을 제외한, 대통령 내지는 대권에 근접했던 리더십들은 하나같이 문과형 지도자들이었고, 법률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들은 말과 글에 능하고, 토론과 연설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역사적으로 문을 중시하고 선호하는 우리의 특수성도 분명 영향을 미쳤겠지만, 세계사적 흐름을 고려하더라도 그간 문과형, 특히 법률가 출신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법률가는 대통령, 경제 전문가는 총리, 공학자는 장관 등을 맡는 일관성 있는 구도가 드러난다.


특정 유형의 리더십이 집중적으로 선호된다는 건 우리 정치의 토양이 그렇고, 주권자인 국민이 그걸 원한다는 뜻이다. 실용보다는 이념, 실력보다는 구호와 선전·선동, 실리보다는 명분이 앞서는 우리 정치의 현실도 그걸 증명한다. 그 아래에서 지역으로, 성별과 나이로, 계층으로 분열되고 갈등한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운명이 달려있는 경제와 외교에서는 오판과 실책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성장 동력은 소멸하고 있고,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 미래 기술에서는 뒤처져 있다. 또한 국제 정치 무대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 내지는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무엇이며, 대한민국에게 절실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4화경쟁과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