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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비오스

정치체제 순환이론

by THE RISING SUN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폴리비오스(Polybius)는 그의 저작 <역사(Histories)>에서 정치 체제는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흥망을 거듭한다고 보았다. 이른바 “정체 순환이론(anacyclosis)”이다. 그에 따르면, 정치 체제는 군주정 → 귀족정 → 민주정 → 다시 군주정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갖는다.


처음엔 고결한 의지를 가진 군주가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이 부패해 폭군이 되고, 이에 귀족이 공동의 리더십을 통해 통치하게 되지만 이 역시 금세 특권층으로 변질된다. 귀족정이 무너지면 시민이 권력을 갖는 민주정이 성립하지만, 이 또한 선동가의 등장과 대중의 무책임으로 인해 무질서에 빠지고, 결국 사람들은 다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게 되며 군주정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폴리비오스는 이 순환을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았지만, 동시에 그 순환을 끊기 위한 정치 체제의 대안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혼합정(constitutional mixed government)'이다. 그는 로마공화정을 이상적인 모델로 보며, 군주의 권위(집정관), 귀족의 지혜(원로원), 시민의 의사(민회)를 적절히 결합해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견제와 균형, 바로 현대 민주주의 헌법 질서의 핵심 기제가 폴리비오스의 이론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순환은 멈추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하고 있고,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선동가가 등장하고 있다. 중우정치의 위험과 포퓰리즘의 파고는 민주정의 기초를 흔들고, 권력 집중과 체제 피로는 다시 ‘강한 리더’를 갈망하게 한다. 폴리비오스가 경고했던 역사적 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순환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 체제의 구조를 진화시켜야 하는가? 오늘날 정치학자들과 헌정주의자들이 제안하는 ‘참여와 책임’의 확대, 연합 정치와 숙의 민주주의, 제2원적 상원제와 같은 제도적 실험들은, 그 순환을 끊기 위한 현대적 해법이다. 단순한 견제와 균형을 넘어서, 정치 세력이 공동으로 국정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폴리비오스의 순환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인간 본성과 권력의 속성, 역사와 제도의 상호작용이라는 복잡한 구조 때문이며, 어떤 체제도 영원하지 않다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강력한 군주, 이상적인 귀족, 깨어 있는 시민. 그 모두가 균형을 이뤄야 정치가 지속 가능하다는, 고대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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