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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기술전쟁의 본질

by THE RISING SUN

기술패권 경쟁의 본질은 단순한 성능 우위나 생산량의 경쟁이 아니다. 진짜 승부는 기술을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방식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가’에 있다. 표준을 장악한 국가는 생산만이 아니라 규칙을 주도하게 되고, 그 규칙은 시장을 넘어 정치와 외교까지 영향력을 확장한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기술전쟁은 바로 이 표준 전쟁이며, 이는 단순한 기술력의 대결이 아닌, 시스템과 세계관의 충돌이다.


미국은 기술에서 ‘가치의 확산’을 전략적 기조로 삼아왔다. 민주주의, 개방성, 개인의 자유와 같은 서구식 가치가 기술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되기를 기대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문명의 운반자’처럼 기능해왔다. 클라우드와 검색,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의 표준은 곧 미국식 세계관의 확산 경로였다.


반면 중국은 ‘표준의 선점’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5G, 스마트시티, 전자결제, 감시 시스템, 전기차 충전 기술 등에서 중국은 성능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기준’을 설정하려 한다. 기술이 세계로 수출될 때, 그 기술을 운영하는 규칙과 프로토콜이 함께 전파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화웨이는 단순한 통신 장비 기업이 아니라, 5G 세계 표준의 공동 설계자이자 정책 협상의 당사자로 활동해왔다.


이 대립은 ‘기술력 vs 규범력’이 아니라, ‘기술 표준 vs 가치 표준’의 경쟁이다. 미국은 규범을 강조한다. 기술이 보장해야 할 것은 자유, 투명성, 개인정보 보호 등 가치 중심의 질서라고 본다. 반면 중국은 실용성과 효율을 중시한다. 표준은 누가 먼저 깔고, 얼마나 많이 쓰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그것이 곧 패권의 실질이라는 입장이다. 전 세계 중소국가들은 양국이 제공하는 기술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저울질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표준을 누가 먼저 제시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수익과 정치적 영향력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19세기 철도 폭의 기준부터, 오늘날의 전기차 충전기 규격, AI 윤리 가이드라인까지, 표준은 기술의 법이자 무기였다. 미국은 여전히 SW와 반도체 설계에서 표준을 주도하지만, 중국은 전기차, 드론, 감시 장비, 디지털 위안화 등 신흥 영역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앞으로 기술의 미래는 단순히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편리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기술전쟁의 승패는 무기나 장비의 문제가 아니다. 그 기술이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가, 어떤 사회 구조와 맞물려 있는가, 그리고 어떤 나라의 세계관을 지탱하는가의 문제다. 결국 기술전쟁의 본질은, 세계가 어느 표준을 따를 것이며, 누구의 질서에 편입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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