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에 의해 뒤틀리지만
서울에서 강원도 영월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568년 전엔 7일 정도 걸렸다. 노산군(魯山君)은 1457년 7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해 7월 28일 청령포(淸泠浦)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걷거나 말을 타고, 또는 배를 타고 이동했던 280km, 700리의 유배길이었다. 노산군은 224년 동안 서인(庶人)이었다가, 숙종 대인 1681년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追封)되고 다시 1698년 현감 신규(申奎)의 상소로 복위(復位)되어 단종(端宗)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단종은 11세인 1452년 즉위했다. 이듬해인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은 1455년 스스로 왕이 됐고 단종은 상왕이 되었으나, 1456년 사육신(死六臣) 등이 일으킨 복위 사건으로 인해 1457년 7월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된다. 같은 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되어 서인으로 강봉되고 결국 11월 영월에서 사망한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단명한 왕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단명했던 왕은 성리학의 나라, 명분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다. 조선의 국왕 27명 중에서 적장자로 태어나 왕세자를 거쳐 왕위에 오른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7명뿐이다. 그중에서도 단종은 유일하게 적장자 출신 왕세자의 아들로 태어난 적장자, 즉 적장손 출신 국왕이었다. 13세에 즉위했으나 정통성을 명분으로 수렴청정도 없이 바로 친정을 시작하며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숙종보다도 훨씬 더 완벽한, 흠잡을 데 없는 정통성이었다.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 가던 7일간의 여정에 대한 공식적 기록은 세조가 세종의 별장이던 화양정(華陽亭)에 환관 안노를 보내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는 사실이 실록에 전할뿐이다. 지금의 서울시 강동구 화양동으로, 화양정터가 남아있다. 찬란할 ‘화’자에서 볕 ‘양’자로 정자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는 세종은 자신의 사랑하는 적장손이 믿었던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 가는 장소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떻게 그곳에서 환송연(歡送宴)을 열 수 있었을까. 반정(反正)이 온전히 완결된 그곳이 자신에게는 진정 ‘화양’이라는 의미였을까.
그러나 7일간의 여정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우리 산천(山川)에 굽이굽이 새겨져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지고 있다. 단종은 현재 워커힐호텔인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경기 광주군에 내린 후, 지금의 양평군, 당시의 양근군과 지평현을 통과한다. 이때 백성 차성복이 백설기 한 시루를 지어 단종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연안 차씨 족보에 전한다. 또한 이포나루로 가기 위해 통과했던 여주군에는 단종이 쉬어가며 목을 축였다는 어수정(御水井), 임금이 행차한 고개라는 뜻의 행치(行峙)가 있다. 이후 행치라는 이름의 고개는 영월까지 두 곳이 더 있다. 여주 이포나루에서 단강(丹江)을 건너면 원주에는 단종이 쉬어갔던 정자라는 뜻의 단정(端亭), 귀한 손님이 오셨다는 뜻의 귀래면(貴來面)이 있다. 영월에 들어선 후에는 단종이 물을 마시며 쉬었다는 어음정(御飮井), 임금이 넘은 고개라는 의미의 군등치(君登峙), 청령포에 이르기 전 마지막 고개로, 단종이 서울을 향해 절을 했다는 배일치(排日峙)가 있다.
삼면은 서강이 굽이치고, 한 면은 천애(天涯)의 절벽이 떨어지는 청령포로 배를 타고 들어가면 울창한 솔숲 한 가운데 나이가 600년이 넘은 거대한 소나무가 있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과 오열하는 소리를 보고 들었다는 ‘관음송(觀音松)’이다. 단종의 거처 주변에는 백성들의 접근을 금하던 금표비(禁標碑),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었다는 노산대(魯山臺),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았다는 망향탑(望鄕塔) 등이 있다.
한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해 청령포 일대가 물에 잠기자 단종은 두어 달 만에 거처를 당시 영월군의 객사였던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긴다.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단종이 종종 올랐다는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자규’는 피를 토하며 슬피 운다는 두견이다. 접동새라고도 한다. 원래는 세종 10년, 군수 신권근이 매죽루(梅竹樓)로 지었던 것을 후대 사람들이 바꾸어 불렀다. 단종의 자규시가 전한다.
一自寃禽出帝宮
원한 맺힌 새 한 마리 궁궐을 나와
孤身隻影碧山中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중을 헤맨다
假眠夜夜眠無假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청하는 잠은 오지 않고
窮恨年年恨不窮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나지 않네
聲斷曉岑殘月白
두견이 울음도 끊긴 새벽, 멧부리엔 달빛만 밝은데
血流春谷落花紅
봄 골짜기 떨어진 꽃, 피 흐르는 듯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귀먹은 하늘은 슬픈 사연 듣지 못하는데
何乃愁人耳獨聽
어찌하여 수심 많은 내 귀만 홀로 듣는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