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림
세조의 찬탈은 조선 역사에 수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첫째, 성군이 선정을 펼치고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그를 뒷받침하여 태평성대가 펼쳐지는 가장 이상적인 왕정의 모델을 파괴하고, 흐름을 끊어버렸다. 세종과 문종에 이어 단종이 이뤄낼 수 있었을, 어쩌면 당대 세계 최고 문명의 가능성도 사라져 버렸다.
둘째, 왕위를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앞서 태종의 사례가 있긴 했지만 상황이 좀 다르다. 개국 초기의 총체적 혼란은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필요로 했고, 세종의 치세가 그걸 증명한다. 세조는 차라리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으로 남아 주나라 주공(희공)처럼 충분한 자질을 갖춘 조카를 보위해 성군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셋째, 신하가 왕을 만들고,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경종 2년인 1722년 묵호룡의 고변에 삼급수(三急手)가 등장한다. 왕을 교체하기 위해 칼로 죽이는 대급수(大急手), 독약으로 죽이는 소급수(小急手), 유언비어로 쫓아내는 평지수(平地手)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이 자신들의 가문에서만 왕비를 배출하겠다고 다짐했던 물실국혼(勿失國婚)도 있다.
넷째, 나쁜 신하들이 출세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황희와 맹사성 같은 경세가들이 아닌 한명회 같은 책사들이 입신양명하는 세상이 됐다. 최윤덕과 김종서 같이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데 힘을 사용하는 무인들이 아니라, 섬기는 주군을 위해, 보다 냉정하게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무부(武夫)들이 돋보이는 세상이 됐다.
다섯째, 합법적인 경로가 아닌 인맥과 같은 비공식적 루트가 활용됐다. 한명회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친구 권람의 소개로 수양대군의 책사가 됐다. 양정, 홍달손 같은 이들은 무과를 치르지 않은 장안의 이름난 무뢰배들이었다. 이후 수많은 간신들이 득세한다.
여섯째, 신하들이 높은 학문과 아름다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가문의 번영을 위해 경쟁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권력의 향배에 따라 파벌이 나뉘어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행태가 시작됐다. 선조 대에 본격화된 붕당의 원형이다.
일곱째, 배신은 의심을 생산한다. 왕과 신하들이, 신하와 신하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 늘 긴장하고, 시험하고, 감시해야 했다. 인조 대의 기찰정치의 원형이다.
덕분에 세종 대의 화양연화는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