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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하여

배울 것이 많은, 이로운 경쟁자

by THE RISING SUN

일본은 우리 바로 옆에 있다. 이웃이라기보다는 경쟁자다. 앞서 ‘외교는 의리가 아니다.’고 썼고, 또 ‘외교는 계산이다.’고 썼듯이, 어차피 모든 외국은 경쟁자이지만, 일본은 특별하다. 바로 옆에 있어서 그렇다. 보통 다른 나라에 대한 관점, 입장 등을 나타낼 때 알 지(知)자와 친할 친(親)자를 쓴다.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지한파’, ‘친한파’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지일파’라고는 해도 ‘친일파’라고는 하지 않는다.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면 안 된다.


우리 국민들 중에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그건 자유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지목해 ‘친일파’라고 하면 그것은 비난이고 모욕이다. 그래서 친일파인 사람들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잘못이라는 주관적 가치 판단을 하기 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나라들의 객관적 태도를 보자. 독일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했다. 또한 일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아직 일본을 용서하지 않고 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사라지진 않아도 덮을 수는 있지만, 그건 그들의 몫이다.


그러나 배척만 할 수도 배제할 수도 없다. 일본은 바로 옆에 있다. 또한 외교는 심플한 일대일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배울 점이란 게, 정확하게 우리의 빈자리 또는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이다. 배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손잡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은 우리의 경쟁자임이 분명하고, 당장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선의의 경쟁자는 아니더라도 보고 배울 점이 많은, 득이 되는 경쟁자임은 분명하다. 외교는 계산이다.


민족성이라는 표현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시대에 피지배국을 폄하하고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드는 데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민족에게 주어진 혈통, 지리, 기후와 같은 선천적 환경, 역사, 사회 문화와 같은 후천적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되고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터부시 하고 외면할 게 아니라, 인정할 건 인정하고 좋은 건 더 키우고 나쁜 건 고치면 된다.


일본은 누구인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 1982년)'이라는 명저가 있다. 일본은 협소하여 '축소', '정교', '완벽'을 지향하게 됐는데, 좁은 공간에서 깊은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다도(茶道) 철학과 다완(茶碗), 작지만 정교한 일본 정원, 작고 실용적인 일본 가옥과 다다미, 인위적으로 작게 만든 분재(盆栽), 작은 돌을 배치한 석정(石庭), 작지만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벚꽃, 반도체, 소형 전자기기 등을 예로 들었다. 또한 일본은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질서와 통제를 중시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수직적이고 집단적인 사회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1946년)'에서는, 국화(온화함)와 칼(군국주의)의 이중성, 체면을 중시하는 수치(shame)의 문화, 전통적 계급 질서를 중시하는 충성 문화로, '일본사회의 인간관계(나카네 지에, 1967년)'에서는 회사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릴 만큼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되며 조직 내 상하관계가 강한 다테 사회(수직적 관계)로, '일본 과거 그리고 현재(에드윈 오 라이샤워, 1946년)'에서는 우치(內집단)와 소토(外집단)의 구분이 명확해 폐쇄적이면서도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로, '풍토(와츠지 데쓰로, 1929년)'에서는 온난 다습한 기후를 가진 섬나라로서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개방적인 문화로, 마르틴 하이데거(1889년~1976년)는 무(無)와 여백(餘白)을 중시하는 문화로, 각각 일본을 묘사했다. 아마도 이러한 묘사들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가졌을, 우리가 일본에게 배울 것은 무엇인가.


먼저, 노벨상(The Nobel Prize)이다. 총 30회를 수상한 일본은 현재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과학상 25회, 문학상 3회, 평화상 2회다. 19세기 후반부터 근대 기초과학을 집중 육성한 결과 과학상은 미국, 영국에 이은 3위이고 특히 21세기 들어 수상 빈도수가 늘고 있다. 한편 20세기 초반, 놀라운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석연찮은 이유로 수상이 불발된 일본 과학자들이 여럿 있었고, 앞으로 수상이 거론되는 수많은 후보자들도 있다.


주목할 인물은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을 개발한 공로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이다. 학계와 관련이 없는 민간 연구원이라는 사실도 이례적이지만,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자로서 과학상을 수상한 첫 사례일 만큼 젊은 나이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 유일한 학사 출신이다. 바로 여기, 일본만이 갖고 있는 특성 속에 우리가 배워야할 것의 단서가 있을 것이다.


다음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다. 일본은 8회에 걸쳐 9명(2010년 공동 수상)이 수상했다. 8명이 수상한 미국, 5명이 수상한 영국을 제친 세계 1위이고, 대학별로는 동경대학교가 5명을 배출해 하버드대학교와 공동 1위이다. 또한, 일본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3회 수상했고, 이스라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울프상(Wolf Prize)을 8회 수상했다.


특정 상의 수상 여부가 우열의 전부가 아님은 분명하고, 따라서 그것만으로 무엇을 배울지 말지가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리와 무관한 재단을 만들고 상을 제정하고 대상을 선정해 수여하는 이유는 뭔가. 인류가 이루어낸 성취를 치하하고 격려하며, 또한 고양하여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취의 이유는 물론 개인에게 가장 크게 있겠지만, 그가 속하고 자란 사회와 국가에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그 뿌리와 열매를 함께 관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경쟁자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서, 내 나라, 우리 국민들이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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