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보다 비본질, 목적보다 수단, 내용보다 형식
역사는 투쟁이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국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 계약이다(홉스).”, “역사는 문명의 충돌이다(헌팅턴).”, “역사는 투쟁의 과정이며 그 결과는 다른 집단들을 희생시킨 어떤 집단들이 성취한다(E. H. 카).”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마르크스, 엥겔스).”,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마르크스).”, “역사는 무장한 민중과 무장하지 않은 민중 사이의 투쟁이다(레닌).”, “역사의 본질은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이다(랑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사상과 이념 간의 투쟁이다(크로체).”
투쟁은 때로 경쟁이고 또한 싸움이다. 개인도 투쟁하고 경쟁하고 그리고 싸운다. 인간의 본능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고, 이성은 개선과 근원을 향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남고 후손을 남기기 위해 적과 경쟁한다. 또 더 나은 것, 더 근본적인 것을 얻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을 향한 투쟁을 한다. 싸움은 인간 본연이고 본질이다. 그래서 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다. 문학, 미술, 음악, 영화, 게임이 고전으로 향유되고 또 재생산된다. 생명체인 인간의 본능에는 생존을 본질로 하는 싸움에 대한 지향이 각인되어 있는데, 이성이 그 욕망을 씻기고 꾸며서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전쟁, 스포츠, 정치는 상황에 따른 싸움의 다른 모습이다. 전쟁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퇴출 수순이고 스포츠는 유례가 없을 만큼 꽃 피우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종목별 세계선수권과 권역선수권, 그리고 국가별 프로 리그와 아마추어 생활체육까지, 스포츠가 없는 세상은 상상이 불가능하다. 또한 싸움은 상대방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게임을 통해 가상의 적과 싸울 수 있고, 영화, 뮤지컬, 연극, 문학 등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전쟁, 스포츠, 정치 중에서, 아마도 제일 먼저 있었던 것은 정치였을 것이다. 한 명이 두 명이 되는 순간, 공동체가 되는 순간부터 정치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는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최후의 두 명이 남을 때에도 정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 공동체를 구성하는, 또한 우리 공동체가 생산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의 축적이자 집약이다. 무의식이기에 의도나 수식 따위는 배제되고, 기름기도 싹 빠진 실체만 남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순서를 정하고 있다면 그건 진짜인 거다. 실제로 정치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공표한 정치인들이 하는 정치도 그렇고, 가정, 직장, 학교, 동호회 등 우리가 몸담고 있는 두 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든 공동체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도 그렇다.
정치는 거대한 산업이다.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우리 정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또한 정치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데, 국회, 광역의회, 기초의회의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의 공고화 또는 연장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일자리들을 계속 늘린다. 정치가 만든 공공기관, 공기업, 재단, 협회 등이 전국에 적어도 수만 개는 될 것이다. 거기에 이들로 인해 생업을 유지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시총 1위 기업은 삼성전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정치의 나라다.
증거는 또 있다.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4년마다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르고 수시로 재보궐 선거를 치른다.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정치라는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절차고, 주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자들이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다만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다. 선거는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 선거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런 선거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유지되는 일자리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1년 365일 투쟁과 경쟁, 그리고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거의 나라다.
정치는 거대한 언론사다. 매일매일 수많은 뉴스들을 자체 제작하고 전파한다. 진짜와 가짜, 과장과 은엄폐가 혼재된 뉴스들이다. 그 뉴스들이 또한 세상을 압도한다. 당장 텔레비전을 켜면 채널 자체가 뉴스를 메인 콘텐츠로 하는 게 여러 개 있고, 다른 채널들도 대부분 황금시간대에 뉴스를 편성한다. 그리고 모든 뉴스는 정치로 시작하고, 정치가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신문이 정치로 시작하고, 지면의 거의 반을 정치가 차지한다. 그 외에도 라디오의 수많은 시사프로그램들, 인터넷매체들이 있고, 특히 최근엔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만들어낸 시장의 규모와 위상이 엄청나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사라지면, 우리 눈과 귀를 붙잡고 있던 그 수많은 뉴스들이 사라지면, 어쩌면 사회적 공황장애가 올지도 모른다.
정치는 거대한 기획사다. 수많은 국민적 스타들을 배출해 낸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실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많다. 그들은 불의를 정의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욕망을 희생으로, 사익을 공익으로, 거만을 겸손으로 감쪽같이 연기한다. 국민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코미디언들도 많다.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고 진지한 얘기들을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대단한 재주다. 가수들도 많다. 그들의 앨범은 국가, 국민과 관련된 주제들로 채워지는데, 일 년 365일, 전국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치는 거대한 제작사다. 영화, 드라마, 예능, 쇼 등 돈이 되는 건 뭐든지 만든다. 보유하고 있는 배우, 코미디언, 가수들을 총출동시켜서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든다. 한때 인기가 최고였더라도 시들면 바로 퇴출시킨다. 그리고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 연습생 풀에서 신인들을 발굴해 출연시킨다.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하다. 기획서, 시나리오들은 늘 쌓여있는데, 좀 진부하다 싶으면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정치는 구조상 두 파트로 나뉜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 그 한 파트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 나머지 파트이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 싸움은 두 개의 국면으로 진행된다. 전자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과 후자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다. 전자는 본질, 목적, 내용이고, 후자는 비본질, 수단, 형식이다. 어쩌면 전자는 이성의 영역이고 후자는 본능의 영역이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정치를 추구하고 또 향유한다. 그런데 본질과 비본질, 목적과 수단, 내용과 형식의 상호 간에 주객의 전도(顚倒)가 일어났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에 대한 추구는 오간 데 없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의 향유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좋은 기업을 만들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정치가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 세금으로 스스로 일자리를 찍어내고, 좋은 기삿거리가 되어야 할 정치가 온갖 가짜뉴스들을 생산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배출해야 할 정치가 사리사욕을 연기로 감추는 사기꾼들을 양산하고,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정치가 고작 눈요깃거리와 가십거리만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전도된 주객을 다시 뒤집어서 원래의 위치에 돌려놔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라는 정치의 효용이 온전히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그걸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하고,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고, 그리고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