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양자컴퓨터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를 압도하는

by THE RISING SUN

세계 과학계의 화두는 단연 양자컴퓨터다.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이, 최근 그리고 당분간 가장 핫한 이슈들이지만, 양자컴퓨터는 이들을 압도한다.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이 각각 히말라야 산맥의 8,000m급 14좌 중 하나라면 양자컴퓨터는 단번에 이들 모두를 삼키고도 남는 최대 깊이 10,929m의 마리아나 해구다.


양자컴퓨터는 한마디로 기존 컴퓨터보다 획기적으로 빠른 컴퓨터다. 예를 들면, 구글은 2024년 12월, 자사가 개발한 양자칩 윌로우(Willow)를 공개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10의 25 제곱 년, 즉 10,000,000,000,000,000,000,000,000(10자, 10셉틸리언)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5분 만에 해냈다. 그래서 양자컴퓨팅 기술은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 모든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것이다. 슈퍼컴퓨터보다 30조 배 빠른 연산속도로 초빅데이터 학습 및 추론(AI), 동역학 시뮬레이션 및 모델링(우주), 휴머노이드 개발(로봇), 신약 개발(바이오), 신소재 연구 및 배터리 개발(에너지) 등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신세계를 활짝 열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25년을 ‘세계 양자 과학 기술의 해’로 지정했는데, 주요 선진국들과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쟁을 시작했다. 양자컴퓨팅의 대표 기업인 구글과 IBM을 보유한 미국은 2009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수립했고, 2018년 ‘국가양자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2019~2023 회계연도에만 5조 4천억 원을 투입했다. 중국은 2006년 ‘국가중장기과학기술 발전계획요강’에 양자분야를 포함시킨 것을 시작으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고 14차(2021~2025년) 5개년 계획에서 21조 6천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2017년 ‘양자과학기술의 새로운 추진 방책’, 2020년 ‘양자기술 이노베이션 전략’, 2023년 '양자 미래산업 창출 전략'을 각각 수립했다. 유럽연합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도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글로벌 R&D 전략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 모든 부문에서 주요 12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글로벌 R&D 전략지도는 피인용 상위 10% 논문, 미국·일본·유럽연합 특허출원 수, 전문가 정성평가 등을 토대로 100점 만점 표준화 점수를 산출해 작성했는데, 100점인 미국을 기준으로 중국 35.0점, 독일 28.6점, 일본 24.5점, 영국 24.0점을 기록했고, 한국은 2.3점이었다.


우리 정부는 2024년에서야 양자기술산업법을 시행하였고, 2025년을 ‘대한민국 양자 산업화의 원년’으로 삼아 관련 예산 1,980억 원을 편성했다. 꼴찌가 출발도 제일 늦고 투자 규모도 제일 작다. 양자역학은 100년 전에 탄생했고 본격적인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은 30년 전에 시작됐는데, 우리는 30년 가까이 손 놓고 있다가 이제 겨우 출발선에 들어선 것이다. 20년 전, 10년 전에라도 누군가 나서서 주도했더라면 적어도 꼴찌는 면했을 것이다. 아니 지금이라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5년간 4배의 투자금 22조를 쏟아 붙는 걸 보고 뭐든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제야 양자과학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양자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켜서 2035년까지 3조 원을 투입한다는데, 이래서야 언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언제 R&D 진행해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는가.


우리는 이제 따라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 누군가는 어떻게 세상에 없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이론을 정립하며, 다시 그걸 발전시켜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인가. 이론물리학, 기초과학의 힘이다.


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5차 솔베이 회의가 열렸다. 솔베이 회의는 벨기에의 기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1838~1922)가 설립한 국제솔베이협회가 개최하는 세계적인 물리학 및 화학 학회이다. 5차 회의 참석자 기념사진은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정모> 또는 <지상 최강의 정모>로 유명한데, 참석자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이다. 또한 두 수상자인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이 유명한데,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se not play dice.).”고 하자, 보어는 “신이 주사위로 뭘 하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Stop telling God what to do with his dice.).”고 응수했다.


이 신의 주사위가 바로 양자(量子, Quantum)다. 우리가 아는 원자(原子)보다도 훨씬 더 작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단위다. 양자의 개념은 빛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도입됐는데, 당초 입자라고 생각했던 빛이 동시에 파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총을 기둥 뒤에 있는 목표를 향해 쏘면 기둥에 가려진 목표는 총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인 격발음은 듣는다. 총알은 입자이고 격발음은 파동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물질은 대부분 입자이거나 파동, 둘 중에 하나인데,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것이다. 빛과 같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최소단위에,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막스 보른(1882~1970)이 양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양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에 속해있다. 보는 행위에는 대상에 빛이 닿는 과정이 포함되는데, 양자는 너무 민감해서 빛이 닿는 순간 튕겨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린다. 즉 대상을 확인하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 영향을 미쳐서 대상의 상태가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대상의 상태에 대해 단정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상태가 중첩된 확률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하는 것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가 수행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중첩된 확률’ 이론은 덴마크의 이론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 등의 주도로 ‘코펜하겐 해석’으로 정립됐고,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우주란 확률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인과율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어 아인슈타인 논쟁’이 촉발됐던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중첩(Superposition)을 기술로 현실화한 것이다. 통상의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2진법 연산의 디지털 비트(bit) 체계로 작동한다. 정보의 입력, 계산, 출력 과정에서 수많은 ‘Yes’ 또는 ‘No’를 반복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도 마찬가지이고,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가속기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슈퍼컴퓨터 성능 개선도 한계에 봉착했다. 현대 컴퓨터 발전의 토대가 된 ‘무어의 법칙’은 늦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집적도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인데, 현재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원자 수준인 3 나노미터(10만 분의 1mm)까지 작아진 상태이고, 그에 따라 트랜지스터들을 연결하는 미세회로도 더 이상 가늘게 만들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에 비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중첩되어 확률에 따라 정해지는 큐비트(qubit) 체계로 작동한다. 마치 동전이 회전하는 것처럼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고, 그 결과 모든 변수를 한꺼번에 놓고 계산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보다 30조 배 빠른 이유다.


물리학은 사물과 현상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시대적으로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으로 나뉘는데, 고전물리학은 17세기 뉴턴이 완성한 고전 역학과 19세기 맥스웰이 완성한 고전 전자기이론을 기반으로 완성됐다. 고전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별개이며 어떤 관찰자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각각의 절대적인 기준을 갖는다. 물질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에너지와도 별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새롭게 발견된 현상들이 고전물리학으로 설명되지 못했다. 이론물리학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졌고 20세기 초반에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광속(光速)의 일정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은 통합되어 시공간이 될 수 있는데,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시간의 흐름, 공간의 측정이 상대적으로 달라져 시간 지연, 길이 수축이 일어날 수 있고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이 가능하다. 바로 현대물리학의 시작이다. 그리고 다시 인과율과 확정성을 전제로 하는 상대성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시세계의 중첩된 확률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등장한 것이다.


인류는 이처럼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일련의 관찰, 의문, 탐구, 증명들로 이론물리학과 기초과학의 역사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에 한참 비껴 서있다. 실용은 이론이 전제됐을 때만 가능한 것인데, 그간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론과학을 외면하고, 당장 물건을 만들 수 있고, 당장 돈이 되는 실용과학에 몰두했던 것이다. 과학은 서양이 주도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과학분야 노벨상을 25회나 수상한 일본의 성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이공계 두뇌들이 실용과학인 의학으로 몰리는 현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중슬릿 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나 ‘보어 아인슈타인 논쟁’ 같은 것들이 무슨 관심거리가 되겠는가.


앞서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정부는 공공성, 즉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인데 막대한 초기 비용이 투입되거나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 민간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기관을 설립해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 바 있다. 양자컴퓨팅 분야가 바로 그런 사업이다. 막대한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데 수익을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만 하는 사업이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민간은 철저하게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공계 두뇌들이 의대로 몰리는 것을 막을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정부가 있고 국민 세금을 걷는 거 아닌가. 정부는 기초과학,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 연구하는 학자들이 의대생, 의사들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 경제와 국민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매우 중요한 분야인데 왜 손 놓고 있는 것인가. 앞서 ‘세금에 대하여’, ‘국정과제의 탄생’, ‘지방자치제도’ 등에서 국민의 세금이 어떻게 터무니없이, 얼마나 큰 규모로 낭비되고 있는지 지적한 바 있다.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론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9화패스트 팔로어와 퍼스트 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