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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과 핑퐁행정을 끝내다

국가 행정갈등 전담기구 설치

by THE RISING SUN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는 행정의 주체가 3개다. 중앙행정기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그런데 기름칠한 것처럼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3개의 톱니바퀴가 불협화음을 내며 삐거덕 거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급기야 이빨이 부러져 톱니바퀴들이 망가진다. 나랏일을 믿고 뛰어든 기업은 그 사이에 껴서 파산하고 국민은 피해자가 되고 고질 민원인이 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국가가 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 전국에서 유치를 신청한다. 기업들이 유입되고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요되는 예산은 상당 부분 국비로 지원되기 때문에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다. 국회의원, 단체장 등 정치인들에게는 최대 치적이 되고, 주민들에게는 일자리가 생기면서 다양한 경제 유발 효과가 발생하는 만큼 여러모로 호재가 된다.


2008년 한 광역자치단체가 대규모 산업단지 유치에 성공했다. 시너지를 위한 연관 산업들이 활성화되어 있고 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좋아 물류 여건도 최적인 한 기초자치단체에 부지가 지정됐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산업단지 조성에는 필연적으로 그 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들을 처리할 시설의 설치가 수반되는데,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와 인접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자녀들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도 바로 옆에 있었다. 주민들은 산업단지 공사 현장 출입구를 막고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매일 시위를 하고 소관부처, 관할 도청과 군청에 집단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산업단지 개발 관련 상위계획, 하위계획을 각각 결정하는 중앙부처, 도청은 법률적, 정책적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민원이 접수되더라도 이미 확정되어 공표된 합법적인 사업에 대해 사실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민원은 산업단지가 실제 자리하게 되는 지역 군청에 집중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며 재선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 같아지자, 군수는 군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산업단지 조성 공사와 관련해 온갖 트집을 잡아서 진출입로 도로점용, 공유재산 활용, 용수 활용 등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공사가 중단된 몇 달 동안 관계기관들과 주민대책위 간 협상이 진행됐다. 산업단지 조성을 더 지연시킬 수는 없으니 공사를 재개하되 폐기물처리시설 공사는 별도 조치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폐기물처리시설 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PF 대출까지 받아 700억 원을 투입한 사업이 무기한 중단됨에 따라 매월 이자만 부담하면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가가 시행하고 광역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사업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중앙부처와 도청은 사실상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었다. 업체가 군청, 주민대책위와 직접 접촉해서 무슨 보상을 하든, 기부채납을 하든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대책위가 폐기물처리시설 입지 변경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대안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업체는 군청을 상대로 각종 인허가를 하게 해 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5년 여가 소요됐고, 그간 이자 등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결국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공사를 재개하려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공사를 중단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도청이 승인했던 공사기간 4년이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업체는 도청에 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승인할 경우 주민들의 민원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한 도청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업체는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영세했으면 진작 파산했을 것을, 나름 중견기업으로 다른 현장에서 손실을 만회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공중분해 될 상황이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간 완공된 산업단지에 입주한 수백 개의 기업들은 단지 내 폐기물처리시설이 없어 30km 떨어진 곳까지 오고 가며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었다. 입주기업들이 매달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물류비용만 해도 엄청났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고,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합법적인 사업이다. 그리고 산업단지는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유치하고자 하는 경쟁의 대상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째 중앙부처, 도청이 법률적, 정책적 사안에 집중하느라 실제 산업단지가 입지 하게 될 군청의 입장, 특히 혐오시설인 폐기물처리시설 관련 갈등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둘째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면서 그 이전처럼 일사불란한 행정은 불가능하게 됐다. 군수는 장관이나 도지사보다는 투표권을 가진 주민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셋째 갈등이 발생했을 때 서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른바 핑퐁을 쳤다. 중앙부처는 “법률적, 정책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외면했고, 도청은 “산업단지가 입지 할 군청이 처리할 일이지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회피했다. 결국 군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해야 할 마지막 주체인 군청이 다음 선거를 치러야 하는 군수의 지휘를 받아 유일한 대안인 공사 중단 조치를 한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결과다. 산업단지 입지를 정하고, 폐기물처리시설의 위치를 지정할 때 실제 자리하게 될 정책 현장인 군과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행정의 결과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서로 나섰다면 어땠을까. 폐기물처리시설 업체가 파산에 내몰리는 일도, 산업단지에 입주한 수백 개의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 가며 30km 떨어진 곳까지 오가야 하는 일도, 선량한 국민들이 고질 민원인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불가피하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국가 행정갈등 전담기구를 설치하겠다. 지방자치제도로 인해 3개로 나뉜 행정의 주체들이 관련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사업 확정 전 계획 수립 단계에서 ‘행정갈등 영향평가’를 받게 해서 법률적, 정책적 검토만이 아니라 발생 가능한 제반 걸림돌들을 사전에 확인하게 하겠다. 또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3개의 행정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책임을 지고, 그래서 다시는 나랏일을 믿고 뛰어든 기업과 정부에 삶을 맡긴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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