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엉뚱한 외양간 고쳐서 자랑하다
정부는 2014년 7월 전문직위제 전면 시행을 발표했다.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3개월 만이었다. 사고 초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제 역할을 못해 피해를 키웠는데, 그 이유가 정기적으로 보직을 교체하는 순환보직제로 인해 재난안전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환보직제는 공직자와 민간업자의 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특정 보직에 일정기간 이상 근무하지 않게 하는 제도다. 이런 인사 관행이 일반화되어 1년에서 2년 정도를 근무하면 자리를 옮기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순환보직제로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재난안전 전문가가 양성될 수 없었고, 그래서 사고 초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필요한 대응을 신속하게 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앞으로는 재난안전 전문가가 양성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근무하게 하는 전문직위제를 시행하겠다는 논리다.
전문직위는 ‘공직 내 전문성이 필요한 직위’를, 전문관은 ‘해당 전문직위의 직무수행요건(경력, 교육훈련, 자격증, 어학능력)등을 갖춘 인력을 의미한다. 현재 전문직위제는 전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까지 확대됐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운영 성과를 홍보했다. 전문직위제를 운영하는 기관이 몇 프로 증가했다. 어떤 어떤 직위들이 새롭게 추가됐다. 전문관들에 지급하는 수당을 최대 얼마까지 늘렸다.
“순환보직 관행을 타파하고, 장기간 근무하며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는 각 부처의 주요 정책분야 직위를 전문직위군으로 묶어 운영하면서, 운영실태 점검 및 개선사항 발굴을 통해 제도의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등 공직 전문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전문직위제가 공직사회에 안착하여 공무원의 책임 있는 업무 수행, 정부 역량 강화에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공직 전문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앞으로도 국민눈높이에 맞춘 공직사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실효성 있는 제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관민유착이었다. 소관부처 출신들이 퇴직 후 해운업계에 재취업했고 이권과 대가가 오고 갔다. 사고 6년 전인 2008년, 정부는 고가의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분으로 20년이었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완화했다. 이로 인해 2012년 이미 선령이 18년에 달했던 일본 퇴역 여객선이 세월호로 취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안전관리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위법에도 눈을 감았다. 세월호는 화물을 과다하게 실었고, 그 화물을 규정대로 고박하지도 않았다. 과적한 노후선박이 급하게 회전하자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과적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렸고 복원력을 잃은 세월호는 그대로 기울어 침몰했다. 그 배에는 아름다운 봄날, 아름다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 325명과 교사들 14명, 그리고 일반인 137명이 타고 있었다.
관민 유착으로 사고가 터졌다며 물이 고여 썩는 것을 예방하겠다고 순환보직제를 도입하고, 전문가가 없어 사고가 터졌다며 전문가를 양성하겠다고 전문직위제를 도입한다. 관민 유착과 전문가 부재가 동시에 영향을 미쳐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집 앞 개울에 썩은 물이 내려와 악취가 진동을 하면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썩게 만드는 근원을 찾아 없애야 한다. 대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전문직위제가 몇 프로 확대되고, 어떤 어떤 직위가 새롭게 포함되고, 전문관 수당이 늘어나면, 그러면 공직 전문성이 제고되고 역량이 강화되고 경쟁력이 높아지는가.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분명히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요행이다. 우연이나 누군가의 양심에 기대는 것이다.
현재 각 부처의 전문직위제 운영 실태는 이렇다. 정부가 적극 장려하고, 얼마나 확대됐는지 점검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기관이 얼마나 전문적인지, 역량이 높은 지를 평가하겠다고 한다. 전문관이 정말 필요한 업무인지, 전문관으로 지정하면 전문성이 정말 올라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확대해야 한다. 기관평가를 받는 장관은 지시를 하고, 국장과 과장은 담당하는 업무들이 전문직위어야 하는 논리를 만든다. 그리고 데려오고 싶은 직원, 떠나려고 하는데 붙잡고 싶은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제시하며 딜을 한다. 전문관이 되면 월 최대 40만 원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승진과 관련된 근무성적평가에서 가점도 받는다.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야무진 직원들은 전문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면서 전문관이 되고, 묵묵히 일만 하는 직원들은 전문성이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전문관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하는 일이 늘 이런 식이다. 이게 터지면 이걸로 막고, 저게 터지면 저걸로 막는다. 막는 게 아니고 막는 시늉을 하는 거다.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눈앞에 적당한 곳을 막는다. 제일 잘 보이는 그럴듯한 곳이다. 그러다 이거 저거 다 걸리면 스텝이 꼬이는데, 그때는 또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고 시간이 어서 흘러서 잊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대책은 대책으로 끝나고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껍데기일 뿐인 대책을 부풀리고 포장해서 홍보한다. 그리고 매년 막대한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불가피하게 문제가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안전망을 만들겠다. 또한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국민을 호도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그런 정책들은 폐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