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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정신

육체노동은 현장이고, 국민은 현장에 있다

by THERISINGSUN Mar 02. 2025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했던 시절, 1년 동안 극한의 육체노동을 한 적이 있다.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삽질을 했고, 영하 10도 아래의 혹한 속에서 평균 30kg이 넘는 등짐을 지고 산을 올라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정신은 살을 에는 한겨울의 날 선 바람 같기도 하고 한여름 강렬한 태양의 아찔함 같기도 했는데, 맑다 못해 텅 빈 느낌이었다. 어떤 잡념도 없었고 그저 묵묵히 그날그날 주어진 임무에 집중했다.


밥은 맛있다 못해 달기까지 했다. 반찬 투정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일과가 끝나고 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들었다. 불면증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았고 새벽이 되면 눈을 뜸과 동시에 일어났다. 아침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온몸에 생기가 돌았고, 정신은 깨끗했다. 그 시절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육체가 학대를 당하면 정신은 휴식을 얻는구나.’, 젊음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건강한 육체는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는 것이구나.’, 그리고 ‘땀 흘리는 정직한 노동은 숭고한 것이구나.’


육체노동의 가치를 매일, 매 순간 몸으로 경험했지만, 평생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세계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직업의 귀천이 확고하다. AI와 로봇기술의 발달로 인간 육체노동의 상당 부분이 기계화되겠지만, 그래도 육체로 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고, 정신으로 하는 일과는 구분될 것이다.


육체노동이 정신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폄하되는 전통은 오랜 역사를 가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이상적인 삶은 철학, 정치, 예술 등을 탐구하는 것으로 육체노동은 노예나 하층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고귀한 삶을 추구할 수 없다. 시민(엘리트)은 정치와 사색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로마는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여 많은 노예를 확보했는데, 귀족은 정치와 군사 활동에 집중하고, 농업, 건설, 가사 등의 노동은 노예에게 맡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신분제(성직자·귀족·평민·농노)가 확립됐다. 종교, 정치, 전쟁은 성직자와 귀족이, 상업과 수공업은 평민이 담당했으며, 육체노동은 농노나 하층민의 몫이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도 성리학적 질서 안에서 정신노동(文)이 육체노동(武, 商, 工)보다 우위에 있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학문과 예술을 익히고 소인은 노동에 종사한다.”라고 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이념이자 신분제의 근간이었다.


18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기계화가 확산되면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격차가 더 벌이지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대량생산 체제가 확립되자 사무직, 전문직의 화이트칼라와 생산직, 노동직의 블루칼라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는 완전히 격리됐다.


우리 공직사회에서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는 확고하다. 그 차이는 거의 신분제라 불릴만하다. 본질적으로 육체노동이 필요한 직군에 소방, 경찰이 있다. 불을 끄고 국민을 구조하는 일, 범죄자를 잡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소방사, 순경으로 입직하는 간부 이하의 하위직들이 담당한다. 그런 힘들고 위험한 육체노동의 구간을 건너뛰고 싶다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 간부후보생시험에 합격하거나 변호사 같은 자격을 갖고 있으면 소방위, 경위 등 바로 간부로 입직할 수 있다.


일반 행정직군에서도 9급, 7급 공채로 입직하면 몸으로 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일의 층위가 있기 마련이다. 자료를 복사하고 물건을 나르는 일, 운전을 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들이다. 그런 육체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면 5급 공채(考試)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5급부터는 보고서만 작성하면 되고, 그 어떤 육체노동도 하지 않는다. 육체노동에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도 포함된다.


우리 공직사회의 육체노동 하대(下待)는 그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천시(賤視)라고 쓰고 싶지만, 그건 그분들의 수고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피했다. 다들 가능하면 시험을 봐서 처음부터 육체노동을 건너뛰려 하고, 그게 어려우면 어떻게든 빨리 승진을 해서 벗어나려 한다. 인지상정이다. 누구나 더 편하고 더 안전한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현장에 있고, 국민을 대면하는 일은 모두 육체노동이다. 불을 끄고 국민을 구조하는 일, 범죄자를 잡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 민원인을 만나고 민원현장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모두 육체노동이고, 모두가 기피하고, 그래서 하위직들이 담당한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단지 다를 뿐 우열이 없는 나라들이 있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특히 독일에서는 중세 길드(Guild)로부터 기술직을 인정하는 전통이 확립됐고 숙련된 전문가를 마이스터(Meister)로 예우하게 됐다. 또한 이론중심의 대학과 실습중심의 직업학교로 이원화된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육체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고 필요시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무엇보다도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직업은 신의 소명’이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확산되면서 육체와 정신을 가리지 않고 노동 자체를 신성시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하위직 공직자들 담당하는 일과 독일에서 마이스터로 존중받는 고숙련 기술직들이 담당하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같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 육체노동에 해당하는 업무들이 존중받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무엇보다 국민을 직접 대면하여, 국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일,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이다. 공직이라는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하대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건 국민에 대한 무례다.


또한, 그 일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에 대한 보상과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들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승진하지 못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적성에 맞고, 더 잘할 수 있어서 하는 공직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렵다면 상대적으로 편하고 안전한 일을 하는 이들보다 더 높은 보상과 처우를 보장받아야 한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 아닌가. 공직자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들은 그 어떤 공직자들보다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에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우열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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