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과 공직자다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 교사 11명, 일반인 43명 등 승객 30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4월 19일 오후 6시, 세월호 내부에서 한 여교사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녀는 1년 전 명문 사범대를 졸업하고 단원고에 처음 부임했다. 1학년 때 가르쳤던 아이들의 2학년 담임교사를 자청했고, 제주도로 첫 수학여행을 떠났었다.
그녀는 사고 당시 탈출이 쉬운 5층에 머물고 있었지만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4층 객실로 내려갔다. 오전 9시 15분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에게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는 40도 가까이 기울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배가 침몰해. 구명조끼 없어. 미안해. 사랑해’ 남자친구는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학생들을 챙겨야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 중앙부처의 공직자로 사고 당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딸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딸이 살아서 돌아오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맡은 책임을 다했으니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후 3일 만에야 진도에 내려간 아버지는 “수학여행 가 있는 동안 교재 연구를 못 하니까 미리 해야 한다며 주말에도 혼자 도서관에 가 있었던 딸이었다. 나도 공무원이고 딸도 공무원인데, 딸로서나 같은 공무원으로서나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녀의 빈소를 채운 것은 어린 학생들의 울음소리였다. 4월 20일 오후 교복 차림의 단원고 학생들이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들어섰다. 담임을 맡았던 생존 여학생들과 다른 반 학생들까지 50여 명이 그녀의 영정 앞에 섰다. 전날 시신으로 발견된 스승의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왔지만, 마지막 인사는 숨죽인 울음에 막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서럽게 우는 학생들 옆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한명 한명을 껴안으며 달랬다. “많이 무서웠지?” “얼마나 힘들었니?”
어머니도 교사였다. “저도 교사입니다. 딸이 어떤 심정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을지 이해됩니다. 외할아버지와 엄마에 이어 3대째 교사가 된 딸이 기특했습니다. 하지만 ‘내 딸이 먼저 빠져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 혼자 살아 나올 아이가 아니에요. 살아왔더라도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딸과 대화한다고 했다. “딸이 ‘엄마 나 잘했어?’라고 묻는 것 같아요. 매번 똑같이 대답합니다. ‘잘했어. 괜찮아. 정말 잘했어.’”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잠수사에 발견될 당시 그녀는 구명조끼도 없이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이었다. 생존한 학생들은 “5층에 머물던 선생님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빨리 나가’라고 소리친 것이 마지막 모습”이라고 말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녀는 3층 식당과 주방 사이에서 발견됐다. 빈소를 찾은 한 학부모는 “우리 딸이 살아있을 때 참 잘해주셨는데 지금은 하늘에서 잘 보살펴주고 계시겠죠. 선생님은 메이크업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학교 선도부원들한테 ‘사정이 있으니 화장을 해도 좀 이해해 달라’고 부탁해 주신 다정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생각하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누군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저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그런데, 또 이태원 압사 사고,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고가 일어났고,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무안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해외에서 최고층 빌딩을 짓고 최장 교량을 놓는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늘도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내려앉고 있다.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이다. 명백한 정부의 실패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다짐하고 싶다. 이제 다시는 그런 사고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전에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서 원천적으로 사고를 예방하고, 만에 하나 자연재해 등으로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단 한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또 만에 하나, 불가피하게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고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 체계를 갖추겠다고.
그리고 그토록 인간다운 한 인간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고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을, 신은 왜 허락하지 않는지. 또한 가장 공직자다운 한 공직자가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우리의 그릇됨을 바로잡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는 것을, 신은 왜 허락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결코 잊지 않겠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인간의 인간다움, 공직자의 공직자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