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 좋은 정책을 찾아내는 시스템
우리 민족은 급하고 화끈하다. 뭐든 빨리빨리 하고 강렬한 것을 좋아한다.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을 ‘흥’이라고도 하고, ‘신명’이라고도 한다. 거기서 시작해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풍류’, ‘한’, ‘멋’으로까지 나가기도 한다. 민족성이라는 표현은 종종 터부시된다. 제국주의 시대에 피지배국을 폄하하고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드는 데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민족에게 주어진 혈통, 지리, 기후와 같은 선천적 환경, 역사, 사회 문화와 같은 후천적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어떤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될 것이다.
내재된 민족성은 밖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반세기만의 경제성장, 케이팝을 필두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우리 문화와 예술, 또한 우리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가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그 어떤 민족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하나가 되는데, 그런 모습들이 그렇다.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빠르고 강렬한 정치를 선호한다. 순간의 전 국민적 열기로 그간 이름도 없었던 신진 정치인을 단숨에 대통령의 자리까지 밀어 올린다. 그리고 실망하면 바로 지지를 거둬들인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5천만 명이 모두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5천만 명이 모두 지도자가 될 수는 없고, 5천만 명의 의견이 모두 정책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선거를 한다. 선거는 불가피하고 다른 대안은 없다. 우리가 매번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외치면서도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투표소에 나가 도장을 찍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어김없이 가장 표를 많이 받은 후보자가 선택된다. 또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그가 내세운 공약들이 정책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경우 5년,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은 각 4년을 임기로 한다. 당사자가 속이려고 작정을 했든 우리가 잘못 봤든 간에 한번 뽑으면 임기는 유지된다. 그들을 뽑기 위해 들어간 비용, 소비된 국가적 에너지, 또한 그들이 임기 동안 직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비용 등은 대의민주주의라는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 사용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치자.
그럼 잘못 뽑아놓은 자들이 지도자랍시고 온갖 엉뚱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고, 제대로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해 사고가 터지고 또 뒷수습을 하고, 그렇게 낭비한 국가적 에너지, 허공에 뿌려버린 국민 세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제자리를 유지하기는커녕 한참 뒤로 가버린 국가경쟁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좋다. 그런 것들은 어떻게든 만회하면 된다 치고, 아깝게 잃어버린 숱한 국민들의 생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고, 그가 내세운 공약들이 정책이 되는 과정은 사실상 도박이다. 요행을 바라고 운에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고. 지도자도, 그가 추진할 정책들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그의 학력, 경험, 정치 경력,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공개되는 저서, 인터뷰, 연설, 토론 등을 통해 충분히 검증하지 않느냐. 또한 그는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거대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느냐. 그리고 그가 추진할 정책들은 모두 그러한 배경에서 안정적으로 검토되고, 또한 그가 임명할 국무위원들과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전문적으로 추진되지 않겠는가.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랬었는지. 뒤를 돌아보라고 되묻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우리는 급하고 화끈하다. 그래서 급하고 화끈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 전개가 드라마틱하다. 지도자의 인생도 그렇고, 선거의 과정도 그렇다. 우여곡절이 있고 스펙터클하며 감동이 있다. 그런 걸 스토리가 있다, 서사가 있다고도 표현한다. 보수든 진보든 양 극단에 치우친 그런 스타일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중도를 향한 외연 확장에 나선다. 집토끼를 확보한 후 산토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다 그렇지 않냐고 할 수 있다. 맞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런 성향이 상대적으로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진보정권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을 추진했었다. 기본적으로 진보는 이상적이다.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눈은 이상을 봐야 한다. 그러니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오로지 이론일 뿐인 진보학자의 주장을 현실로 끌고 들어와서 정책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눈이 하늘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발이 공중에 붕 떠버린 격이다. 국민들의 소득을 증대시켜서 소비를 진작하고 내수를 키우는 선순환 논리는 매우 바람직하다. 바람직할 것도 없다. 그건 누구나 아는 아주 기초적인 경제 논리다. 문제를 넣으면 답이 나오는 공식 같은 거다.
그럼 국민들의 소득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가. 사실 핵심은 이 부분이다. 역시 우리가 다 아는 기초적인 경제 논리대로라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가, 자영업자들이 만드는데, 그러려면 기업이 잘되고 자영업이 잘 돼야 한다. 정부는 전략분야를 선정해서 R&D에 집중투자하고 필요한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국내기업을 키우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해외기업도 유치해야 한다. 자영업이 활성화되도록 금융, 세재혜택을 지원하고 해외 관광객도 많이 유치해야 한다.
진보정권은 일단 대대적으로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고,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그리고 한 일이 최저임금 올리기였다. 자영업자들의 수입은 그대로인데 최저임금이 오르자, 어쩔 수없이 직원,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소득을 늘려주겠다더니 아예 일자리를 뺏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다는 게 ‘국립대 빈 강의실 불 끄기’, ‘금연구역 지킴이’, ‘산불 감시’,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같은 일자리 만들고, 공무원 15만 명 늘린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법인세를 인하해 해외기업과 유턴기업들을 유치하는 상황에서 법인세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 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각종 규제들을 시행했다. 제일 우스꽝스러웠던 게 탈원전 정책이었다. 원전 불모지였던 나라에서 우리 기업들이 30년을 힘들게 구축한 원전 생태계를 단 몇 년 만에 망가뜨려놓고 해외에 나가서 원전 세일즈를 하는 꼴이라니. 하루아침에 애국하던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숱한 양질의 일자리들이 사라져 버렸다. 원전 관련 인력들이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핵심기술이 유출됐고, 신입생은 줄고 자퇴생이 급증한 각 대학의 원자력학과들은 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이건 다 떠나서 정부 신뢰의 문제다. 30년을 꾸준히 성장해 온 특정 분야를 그 어떤 출구전략을 수립할 기회와 시간도 주지 않고 반강제로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은 행정도 정책도 아니다. 폭력이다. 탈원전이 세계적 추세고 정말 필요했다면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니다. AI, 양자컴퓨팅 등으로 주요 미래 전략산업의 전력수요가 급증하자 별 수 없이 탈원전을 선언했던 나라들도 다시 원전건설로 선회하고 있다. 탈원전의 이유가 안전성이었다면, 우리의 훌륭한 기술력으로 한국형 SMR(소형모듈원전) 같은 걸 개발해서 역발상으로 안전한 원전 시장을 새롭게 창출할 생각은 왜 못했는지.
그렇게 그저 빛 좋은 이상에 불과한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을 정책으로 밀어붙여서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다 날려버리고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고,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고,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진보정권이 추진한 그런 다분히 이상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사실 검토 단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시됐었다. 국가적, 국민적으로 너무 영향력이 큰 정책들이고 이론으로만 정립된 상태이니만큼 착수가 두세 달쯤 늦어지더라도 안전하게 가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은 배제됐고, 그런 의견을 냈던 전문가들은 이후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급하고 화끈하게 추진된 정책들의 결과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우리가 충분히 검증했다고 생각하는 지도자의 실체, 그 지도자가 추진한 정책들의 실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게 왜 도박인지, 왜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운에 맡기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학력, 경험, 정치 경력,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공개되는 저서, 인터뷰, 연설, 토론 등을 통한 검증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또한 그가 속한 오래된 정당, 그의 내각에 참여할 국무위원과 전문가들은,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정책의 검토와 수립, 그리고 추진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의 급하고 화끈한 성향은 그 자체로 긍정, 부정을 가릴 수 없다. 굳이 의견을 피력하자면 장단점들이 고루 있을 것이다. 유례없는 급격한 경제성장, 문화와 예술 전반의 한류열풍, 위기에 강한 국민적 단합 같은 것들은 돋보이는 장점이다. 그런데 정치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면밀히 살펴보고 꼼꼼하게 검증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놓칠 수 있다. 사실 현재의 정치 체계와 선거 제도도 인물과 공약을 제대로 검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고, 또한 좋은 정책이 국민을 위해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요행 좋은 지도자가 선택되고 운 좋게 좋은 정책 시행되는, 그런 위험한 도박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정치인들을 양성하는 시스템, 그중에서 좋은 정치인들을 걸러내는 시스템,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좋은 정치인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 한 명의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또 경험하고 있다. 좋은 지도자를 갖고 싶다.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둘 일이 없는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지만, 늘 든든한 그런 마음이고 싶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세계가 모두 부러워하는 그런 지도자를 갖고 싶다.
그러고 보면 600여 년 전 정도전이 그토록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왕위는 세습되는 자리이니 인품이 훌륭하고 역량이 뛰어난 임금이 매번 나온다는 것은 담보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덕과 실력을 가진 선비들이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하고, 다시 그들이 상호 경쟁과 견제 속에서 성장하고 검증받는 시간을 거쳐서, 그중 제일 뛰어난 자를 재상에 임명해야 한다. 정치는 재상이 신하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다만 임금은 재상을 임명하고 정책을 승인하는 권한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