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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활성화

산소호흡기를 떼고 새 심장을 넣다

by THE RISING SUN

나주곰탕을 좋아한다. 맑은 국물은 시원하고, 잘 익은 깍두기는 시큼하다. 시원함과 시큼함이 입안에서 원투 펀치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사이엔 어김없이 담백함이 끼어든다. 고슬고슬 굴러다니는 밥알과 부드러운 수육 슬라이스가 만들어내는 씹힘의 조화도 좋다. 나주의 한 전통시장에 가면 나주곰탕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전통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전통시장의 방점은 시장이 아닌 ‘전통’에 있다. 전통시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정한 지역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전통적인 판매 방식과 상점의 형태를 유지’하는 시장이다. 우리만의 고유한 민속과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책이자 박물관이다. 그래서 보존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지역소멸을 막고 관광산업을 일으킬 열쇠이기도 하다.


‘유통업에 대하여’에서 전통시장 활성화와 관련해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투입된 예산이 수십조 원에 달한다고 썼다. 올해 온누리상품권 발행 목표액이 6조 원이다. 소비자를 전통시장 등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할인율은 명절, 행사기간 등에는 최대 35%, 평상시에는 5%가 적용된다. 올해에만 정부 예산으로 메꿔야 하는 금액이 최소 3천억 원이다.


그전에 먼저 추진했던 정책 방향은 ‘전통시장 현대화’였다. 전통시장이 쇠락하는 이유가 경쟁자인 대형마트에 비해 노후화됐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다음에 추진했던 정책이 ‘청년몰 만들기’였다. 청년 상인들을 육성해서 전통시장에 젊은 층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유치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결과는 다들 신통치 못했고 사실상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현금성 지원 정책인 온라인상품권이다. 그러는 사이 온라인 플랫폼 확산에 올라탄 이커머스가 유통 전반을 장악하면서, 기세를 올리던 대형마트도, 살려보려던 전통시장도 모두 쪼그라들고 있다.


현금성 지원 정책 필요하다. 하지만 마중물 같은 거다. 침체된 시장에 소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현재 온누리상품권의 역할은 소생의 기약이 없는 환자에게 마냥 연결해 두어야 하는 산소호흡기다. 전통시장 현대화, 청년몰 만들기 같은 정책들도 의미는 있었지만, 그뿐이다. 정책 실패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동일하다. 현실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분석,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의 부재다.


그간 전통시장에 쏟아부었던 예산 수십조 원, 지금은 흔적도 없는 그 예산 중에서 1조 원을 배정해 준다면 전국에 있는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추진해보고 싶은 정책이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는 2020년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나주시에는 현재 6개의 전통시장이 있고, 특산물은 나주배, 나주곰탕, 영산포홍어 등이 있다. 나주배는 온난화로 재배 가능지역이 북상하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나주시의 전략 상품을 나주곰탕과 영산포홍어로 지정하고, 전통시장 6개는 두 전략 상품을 특화한 2개로 통폐합한다. 인구소멸이 진행 중인 기초자치단체에 위치만 다른 전통시장 6개를 존치하며 산소호흡기처럼 연결했던 방만한 예산을 끊고, 그 대신 2개의 전통시장에 강력한 새 심장을 집어넣는 전략이다.


나주곰탕의 역사적 배경은 복합적이다. 나주는 기본적으로 광활한 곡창지대 한복판이다. 쌀농사를 많이 지으니 좋은 쌀이 풍부하고, 농사를 많이 지으니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를 많이 키웠고, 볏짚이 많이 나오니 소를 키우기 좋았다. 식민지 시대, 일제는 나주에 군수품으로 사용할 소고기 통조림 공장을 지어 운영했고 각종 부산물들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나주곰탕의 시작이다.


‘경쟁력’에서 썼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나만 갖고 있을 때, 그걸 경쟁력이라고 한다. 거기에 역사, 전통 같은 시간이 더해지면 경쟁력은 더 차별화되고 가치는 더 커진다. 경쟁자가 모방하는 순간 경쟁력은 소멸되는데, 시간은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곰탕 분야에서 나주곰탕이 가지는 자연적, 인문적 차별성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주곰탕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나주로 불러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나주곰탕이 호불호가 없는 대중적 음식임을 고려한다면 제일 중요한 요소는 교통이다. 전국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을 접근성이다. 따라서 ‘나주곰탕 전통시장’은 나주버스터미널과 나주역이 가까운 ‘나주목사고을시장’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과 그 주변에는 나주곰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보고, 먹고, 놀고, 구매하는, 그렇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먼저 나주곰탕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질 좋은 한우다. 시장과 가까운 곳에 한우 축산 농가, 소들이 뛰어노는 목초지 등을 배치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나주곰탕의 주재료인 한우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우가 나주평야에서 거둬들인 볏짚으로 쓴 쇠죽을 먹는 모습도 재현할 것이다. 특히 축산 농가의 경우 최첨단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 청결하고 안전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다음은 고기를 삶아서 써는 과정, 국물을 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과정은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무 장작으로 불을 땔 수는 없으니 가스를 사용하더라도 솥은 가마솥이어여 한다. 국물에 들어가는 재료들과 손질하는 과정도 레시피가 유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개한다. 다른 종류의 국밥, 곰탕과는 다른 나주곰탕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과정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시장의 중앙대로 주변에 있는 대형 식당 몇 곳만 재현하고, 나머지 식당들은 개성 있는 맛을 유지하며 장사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만 한우의 도축, 발골, 정형 등의 과정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강원도 횡성군에 한우를 특화한 ‘한우 전통시장’을 만들고, 한우 육류 제품의 생산 과정에 대한 체험 공간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주곰탕의 주재료인 쌀에 대해서도 체험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경기도 이천시에 ‘우리쌀 전통시장’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국가적 관점에서 국가대표급 콘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되, 동시에 지역별 안배를 조율해야 한다. 각 콘텐트별로 가장 경쟁력있는 지역을 선정해 지역색을 부각한다. 단 중복은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중복은 곧 차별화된 경쟁력의 상실이고, 공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주곰탕 전통시장’ 주변에 도축장과 한우 육가공 공장들을 배치할 것이다. 다크투어리즘을 위한 일제강점기 소고기 통조림 공장도 재현한다. 곰탕, 수육 등 밀키트 제조 공정을 공개하고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그간 정부가 수십조 원을 투입하고도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로 현실 오판과 미래 예측 실패를 제시했다. 시설 현대화로는 대형마트를 이길 수도 차별화할 수도 없다. 지방소멸로 젊은 층이 다 떠나가고 소비력이 급감하는데, 청년 상인들이라고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결국 온누리상품권이라는 산소호흡기만 남은 것이다.


그럼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측이 전제된 정책은 무엇인가. 나주곰탕의 예와 같이, 우선 기초자치단체별로 한 곳 내지는 두 곳으로 전통시장을 통폐합해서 예산이든 소비력이든 몰아줘야 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자연적, 인문적 특성을 반영한 킬러 콘텐트를 집중 육성한다. 구조조정을 한 후에 그 지역만의 고유성이 반영된 콘텐트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장착시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일반적인 전통시장의 기능은 기존대로 유지해야 한다.


나주곰탕과 같은 지역별 주요 콘텐트로는 전북 임실의 치즈, 강원 춘천의 닭갈비, 경기 여주 도자기, 충남 금산 인삼, 충북 보은 대추, 경북 안동 간고등어, 경남 산청 곶감 등이 있다. 단 지역별 콘텐트를 지정할 때, 앞서 언급한 중복 문제와 함께 온난화로 경쟁력이 사라진 나주배가 처한 불가피한 환경 요인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시장 주변으로 관련 분야를 모아야 한다. 일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이고, 원소스 멀티 유즈 방식일 수도 있다. 집적으로 인해 각종 물류비용 절감, 협업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자생력과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에서 썼듯이 전국에 찍어내듯 똑같은 케이블카 수십 개, 출렁다리 수백 개를 만들어서 초기 막대한 국비에 가뜩이나 낮은 자립도의 지방비까지 투입하고, 매년 관리 비용까지 지출하면서도 결국 적자가 돼서 다 같이 망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고유성을 살릴 수 있게 체험형 전통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체험’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은 제공할 수 없는 오로지 전통시장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다. 전혀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고, 경쟁자들과 중복될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해외 여행객 대상 관광 상품도 될 수 있다. 중앙과 지방이 윈윈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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