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산불, 재선충병, 그리고 자급율 18%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산림 선진국에서 실증된 명확한 방안은 임도(林道)를 늘리고, 산불에 강한 수종(樹種)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임도는 환경단체의 반대 때문에 늘릴 수 없고, 수종은 우리나라의 자연적, 사회문화적 여건상 소나무가 적합하기 때문에 교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이 다 타버린 후에는 무슨 환경을 보호할 것이며, 기후변화로 아열대화 되고 있는 한반도를 언제까지 재선충이 다 갉아먹고 있는 침엽수로 덮어 둘 것인가.
봄이 되면 매년 산불이 일어난다. 횟수도, 면적도 늘어나고 있고,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산불 피해가 늘어나는 추세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 LA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남부캘리포니아 산불’이 났었다. 사망, 부상, 실종 등 인명 피해가 약 100여 명, 재산 피해가 약 400조 원이다. 피해 면적은 231.38 km²로 우리나라의 웬만한 기초자치단체 크기이고,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와 비슷하다. 최초 발화 원인은 불명이지만, 그처럼 거대한 재앙으로 키운 원인은 기후위기였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영향이기 때문에 우리도 별 수 없이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 정부는 최근, 2022년 산불, 2023년 산사태 등 그간 산림 재난들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근본적인 대책을 담은 법률을 제정했다고 발표했다. 법을 만들었다는 얘기에 혹시나 해서 들여다봤더니 역시나였다. 대책이라는 것들은 계획 수립, 예방, 교육, 조사, 복구 같은, 대부분이 기존의 법, 조직, 예산으로 가능한 것들이고, 만약 아니라면 그동안 이런 기본의 기본인 것들도 하지 않으면서 1개의 본청과, 그 아래 11개의 소속기관, 5개의 공공기관은 도대체 뭐 하고 있었는지 직무유기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률의 핵심은 역시 따로 있었다. 이미, 당연히 하고 있었어야 할 일들을 장황하게 쭉 나열한 뒤, 제일 마지막에는 떡하니 공공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숨어있었다. 본청 포함 이미 운영 중인 17개의 기관으로는 부족해서 공공기관을 하나 더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산불, 산사태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원인은 관련 조직, 인력,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7개 기관의 조직, 인력, 예산은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썼다. 중앙행정기관이 왜 그토록 공공기관을 만들려고 하는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딴 주머니, 귀찮은 일 처리해 주는 하청업체, 퇴직 후 낙하산으로 내려갈 자리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다. 법률에는 추가로 조직과 예산을 늘릴 수 있는 근거가 될 조항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고, 해외 출장이나 연수를 갈 수 있는 조항도 깨알같이 규정되어 있었다.
‘국정과제의 탄생’에서 썼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국정과제라는 허울 좋은 간판이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어져서 정교하게 포장되는지, 그래서 얼마나 행정력을 낭비하는지. 또한 ‘세월호와 전문직위제’에서 썼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부는 어떻게 판에 박힌 뻔한 대책들을 내놓고, 역시 그것들이 행정력 낭비로 귀결되는지. ‘정부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 정부 실패의 근본적 원인들에 대해 썼고, ‘탁상행정과 핑퐁행정을 끝내다’와 ‘정부업무평가’에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했다.
반세기 전 우리나라는 ‘국토녹화’를 기치로 내걸고 전화(戰火)가 휩쓸고 간 민둥산에 1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국토의 63%가 숲이 됐다. 산림 면적 비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핀란드, 스웨덴,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올라섰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산림 성공 사례였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된 성공의 추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첫째,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숲이지만 필요한 목재의 82%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32%의 숲으로 거의 자급하는 독일과 비교된다. 독일은 연간 목재 생산량이 6803만㎡지만 우리는 16분의 1인 420만㎡에 불과하다. 또한 독일은 산림 종사자 110만 명이 매출액 224조 원을 올리는 반면, 우리는 61만 명에 수입 포함 160조 원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목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독일은 50%에 이르지만 우리는 13.9%에 불과하다. 숲과 나무에 경제성이 없다는 것은 곧 지속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둘째, 우리나라의 수종의 약 50%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소나무는 재선충병의 확산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발견된 재선충병은 그간 전국에서 최소 수천만 그루의 소나무를 고사시켰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고 치료법은 없다. 감염된 소나무는 죽는다. 우리보다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현재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학계에서는 대안으로 수종 다양화를 제시하지만 정부는 우리의 자연, 사회문화적 여건상 소나무를 교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37.9%, 전문가의 39.3%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다는데, 정부는 그걸 핑계로 매년 방제 예산만 1천억 원씩을 투입하면서 버티고 있다. 급속하게 아열대화가 진행 중인 한반도를 재선충이 다 갉아먹고 있는 침엽수로 언제까지 덮어 둘 것인가.
셋째, 우리나라의 산림 정책이 아직 이념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에 그걸 주도했던 나라들에서조차 사라진 이념의 망령은 어쩌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살아남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명분을 앞세운 이념 전쟁은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진행 중이지만 특히 환경 분야는 격전지 중 하나다. 덕분에 단위면적당 임도 길이는 독일이 50m, 일본은 24m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m에 불과하다. 임도는 산불 확산 억제 및 진화뿐만 아니라, 산림자원 활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산림 선진국일수록 임도가 발달된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념이 환경을 지키겠다면서 환경을 다 망치고 있다.
독일은 전통적인 산림 강국이고 여전히 그러하다. 반세기 전 우리나라 국토녹화 사업의 성공 뒤에도 독일의 산림 전문가와 기술,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 독일은 그때도, 또 지금도 지속적으로 숲을 가꾸고 활용하고 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때 조성에서 끝나버렸다. 독일이 수백 년 동안 성공적인 산림 강국의 지위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일관되게 이어지며 정착된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을 모토로 하는 정책과 문화다. 둘째, 충분한 인력과 예산의 투입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쓸데없는 공무원 자리 늘리기나 허공에 뿌려버리는 돈이 아니다. 몇 배의 경제적 가치로 돌아오는 투자다. 셋째, 광범위한 면적의 숲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한 산림 분야 최첨단 기술의 개발과 활용이다.
우리도 이제 산림 정책의 대전환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먼저 정확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급속한 기후변화로 한반도가 아열대화되고 있고, 그로 인해 소나무 재선충병, 참나무 시들음병이 창궐하고 있다. 역시 같은 이유로 산불 빈도와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반도 자연 여건에 소나무, 참나무가 최적이고, 우리 국민들이 소나무를 좋아한다는 핑계를 반복하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임도를 확대할 수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 것인가. 그러면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법을 제정하고 조직, 예산 늘리고, 공공기관을 만들면서 뭐라도 하는 척 시늉만 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우선 수종을 바꿔야 한다. 이미 변한, 그리고 앞으로 변할 기후와 식생에 적합한 수종이어야 한다. 또한 목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경제성 있는 수종이어야 한다. 조림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베어서 활용하고 빈자리에는 다시 나무를 심는 지속 가능한 선순환이 자리 잡아야 한다. 기왕이면 병충해에 강하고 산불에도 강한 수종이어야 한다. 그리고 나무를 심을 때부터 충분한 임도를 계산해야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숲은 육성하기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임산물을 제공하고, 휴양림, 트래킹 등 관광 상품이 되면서 1차 산업, 3차 산업의 기능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제일 가치 있는 기능이다. 숲은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가장 효과적인 탄소중립 대안이다. 늦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다만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