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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유토피아

그 나라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었다

by THE RISING SUN

“실제로 나라는 망해가고 있었다. 나라의 미래는 아이들이다. 국가는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발견하게 해 주고, 그것이 꿈이 되게 해 주고, 그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한 아이가 잘 자라서 건강하고 행복한 한 사람의 국민이 되는 것을 바라볼 자격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책임과 의무다. 그것이 교육이다. 그리고 그 이뤄진 꿈, 직업은 종류를 불문하고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 만인만색,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같이 꿈이 의사일 수가 있는가. 국가는 환자와 의사로만 구성되는 병원이 아니다. 국가는 인구수만큼의 다양성으로 구성된다. 그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었다.”



가족은 4명이다. 맞벌이 부부와 두 아이들, 5살이 된 딸과 3살이 된 아들이다. 딸은 올해부터 5~6세 아이들을 전담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아들은 3~4세 아이들을 전담하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두 아이들 모두 부부가 1년씩 번갈아가며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2년 동안 집에서 키웠다. 그 기간에도 일주일에 3회, 각 5시간씩 ‘유아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떠한 어려움도 없고,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해주고 있어, 아직 30대 중반인 부부는 아이를 한두 명 정도 더 가질 계획을 갖고 있다.


그 나라에서 보육,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진다. 3세부터는 3~4세 어린이집, 5~6세 어린이집, 7세 초등학교 입학으로 이어지면서 18세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별도의 사교육비는 필요하지 않다. 모든 교육은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모든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사교육은 없다.


3~4세 어린이집의 교육은 감성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낸다. 어린이집에는 정기적으로 아동심리학자, 행동심리학자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방문해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5~6세 어린이집의 교육은 지성발달, 그리고 친구들과의 사회성 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시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3세부터 6세까지 4년 동안 보육, 교육 정책에 대한 국가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감성발달, 지성발달, 사회성 발달에 어떠한 결핍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가능한 모든 종류의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고, 모든 프로그램은 그 철학에 따라 운영된다.


아이의 성장 과정과 발달상황에 대해서는 아이와 전문가, 부모와 전문가, 그리고 아이, 부모, 전문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 확인, 공유가 이루어진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부분, 아이와 부모의 의견이 다른 부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그렇게 6세까지 제일 중요한 목표는 아이의 적성을 찾는 것이다. 글자, 숫자 등 학습은 적성을 찾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만 진행된다.


한때 그 나라에는 사교육 광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모든 부모의 목적은 아이를 의대에 보내는 것이었다. 부모가 사랑해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대 다니는 자녀를 얻기 위해 결혼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 나라에는 4세 고시, 7세 고시가 있었다. 1차로 4살이 되면, 유명 영어, 수학 학원에 들어가는데,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2차는 7살에 치른다.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8세였던 당시, 입학 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강화 교육을 받는 유명 학원 레벨 테스트다. 각 레벨 테스트를 준비하는 족집게 과외시장은 별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엔 높은 교육열이 국가 경제 발전과 국위 선양에 큰 도움이 됐었다. 식민지 시기와 내전을 겪고 변변찮은 자원도 없는 나라에게 믿을 거라곤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인력, 정부운영을 위한 행정인력,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학술·연구인력 등이 빠르게 양성됐고, 그 힘으로 그 나라는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선진국이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먹고살만해진, 삶의 여유가 생긴 때였던 거 같다. 그즈음부터 아이들도, 부모도 모두 꿈이 의사가 됐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다. 사회적 인정, 높은 수익을 담보하는 자격증이 딸린 전문직으로서의 의사다. 그래서 단순히 의대를 갈 성적이 나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 높은 순위의 의대를 가야 하고, 더 높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해야 하고,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더 편하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병원의 위치는 의사라면 누구나 원하는, 환자들도 몰리는 그 지역이어야 한다.


의대를 가고, 의사가 되는 것은 단순히 전공을 정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와 부모, 가족 전체가 매달리는 일생의 꿈이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척도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벼슬이고 금메달이고 면류관이다. 그래서 사실상 거기에 목숨을 건다. 그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인생에도 자아성취, 노후준비 같은 건 없다. 오직 아이를 의대생 만드는 일에 몰빵이다.


아이가 2살, 3살이 되면서부터 사교육을 시작하고, 4살이 되면 유명 학원에 들어간다. 그런 학원들은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성적이 높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이 모여 있는 곳, 결과적으로 의대에 많은 학생들을 집어넣는 학교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의 집값이 제일 비싸다. 그 나라는 또 유독 부동산에 집착는데, 부동산은 교육을 따라갔다. 그 나라의 경제는 교육이 선도했다. 그런데 교육이 왜곡되어 있다 보니 부동산에도, 경제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 아이들과 부모들이 겪는 정신적인 문제들, 거기서 파생된 직간접적인 사회 문제들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었다. ‘사교육 망국론’으로, 나라가 망할 거라는 얘기까지 나었다.


더욱이 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쪼개져서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국력을 소진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행태만 반복했다. 진보는 공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면서 정권만 잡으면 특목고를 폐지했으나, 정작 자신들의 자녀는 특목고에 보내거나 해외로 유학 보낸 일이 들통 나 망신을 당했다. 또한 보수는 잘나고 똑똑한 이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하며 차별적 우월의식을 드러냈다. 국가백년지대계는 오간데 없고, 당장 눈앞의 선거를 이길 국민갈라치기만 있었다. 국가가 백 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나라는 망해가고 있었다. 나라의 미래는 아이들이다. 국가는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발견하게 해 주고, 그것이 꿈이 되게 해 주고, 그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한 아이가 잘 자라서 건강하고 행복한 한 명의 국민이 되는 것을 볼 자격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책임과 의무다. 그것이 교육이다. 그리고 그 이뤄진 꿈, 직업은 종류를 불문하고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 만인만색,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같이 꿈이 의사일 수가 있는가. 국가는 환자와 의사로만 구성되는 병원이 아니다. 국가는 인구수만큼의 다양성으로 구성된다. 그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었다.


그런데 의대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헛꿈을 꾸는 몽유병 환자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중얼거리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걷던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마치 거대한 좀비 무리처럼 흘러가던 그때, 천 길 낭떠러지의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그 행진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세상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유토피아, 파랑새가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파랑새는 꿈이다.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유토피아다.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온통 짙은 잿빛이던 산과 들이 초록색으로 변했고, 여기저기서 만 가지 색, 만 가지 모양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어딘가 한 곳을 향해 몰려가던 한 덩어리의 그들은 좀비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희망의 빛, 얼굴에서는 생명의 빛이 발산됐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도 총천연색으로 변했다.


각자는 검고 작은 덩어리였고, 그게 모인 전체는 검고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이 각자의 색과 모양을 회복하고, 자기만의 빛을 발산하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만 가지 색이 뿌려진 팔레트 같았고, 만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룬 무지개 같았다.


꿈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파랑색 페인트로는 파랑새를 만들 수 없다. 나라를 병원으로 만들어놓고 의대를 가지 말라고 한들, 그걸 들어줄 사람은 없다. 그는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의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그는 외상외과 등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제일 먼저 의사, 간호사 등 인력이 늘어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가장 의사의 본질에 부합하는 분야, 육체적,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분야인 만큼, 그 나라의 모든 의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했다. 그러자 지원자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근무 환경이 개선됐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여유 있게 근무하고, 사회적 존경까지 받게 되자, 외과의 인기는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를 제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닥터 헬기 등 고가의 장비들도 아낌없이 지원됐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우선시됐다.


다음은 이공계의 의대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했다. 전 세계가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이니셔티브를 선점하기 위해 전면전을 치르는 상황에서, 그 나라는 과학자의 씨가 마를 지경이 됐었다. 그는 의대를 제외한 이공계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각 분야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뤄내면 의사가 되는 것 이상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음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가장 높은 존중과 대우를 받는, 인류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과학기술의 성취를 이뤄내면 그에 합당한 존중과 대우를 받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무슨 직업이든 충분한 보상과 처우를 받도록 하였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룰 경우 역시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 누구나 궁극적으로 바라는 성공의 척도가 특정 직업이 아니고, 각각의 분야에서의 성취가 되도록 바꿔놓은 것이다. 원래 그래야 했던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을, 정상의 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렇게 되자 국민들의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특정 직업을 갖는 게 성공이 아니고, 어떤 분야든 거기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것이 성공인 세상이 되자, 내 아이가,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모두가 2살 때부터 의대를 향해 총진격하는 것이 아니라,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발견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의 교육 분야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이, 부모, 전문가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실 이 부분이 공교육이 다 품을 수 없는 부분이고, 사교육으로의 이탈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과학적 근거와 아이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설득하고, 필요시 아이와 부모가 원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아이에게 맞는 분야를 다시 찾는 과정이 반복된다. 시간이 흐르고, 성공한 케이스들이 축적되면서 시스템은 차츰 완벽해졌다.


한편 그는 세계의 언어가 영어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감안해 제2의 공용어로 영어를 지정하고 어린이집의 공동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모국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가 없듯이, 영어를 못하는 아이는 없도록 했다. 다만 아이들의 언어능력 발달에 지장이 없도록, 개인차에 따라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단계별로 치밀하게 설계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는 공동 프로그램 중심이지만, 역시 어린이집에서 진행했던 취향과 특기를 찾는 과정도 병행된다. 중학교부터는 분야가 나뉘고, 고등학교는 더 세분화된다. 학업인지 기술인지 나누고, 외국어, 과학, 체육 등으로 나눈다. 물론 분야의 확정이란 없다. 언제든 바꿀 수 있고, 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은 국가가 지원한다. 그리고 대학교는 기술을 연마할 것인지, 학문적 연구를 할 것인지로 나뉜다. 이후로는 어떤 분야든 석사, 박사 등 고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기본적으로 꿈의 성취를 이루는 방향에 부합한다면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그 나라는 유토피아가 됐다.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파랑새가 사는 그 유토피아다. 국민 모두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그래서 행복한 나라다. 꿈은 모두 다르지만, 모든 꿈이 성공인 나라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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