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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종류

보이지 않는 시장, 보이지 않는 경쟁자

by THE RISING SUN

생존을 위해서는 자급자족을 하거나 거래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개인도, 국가도 자급자족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거래는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시장에는 공간적으로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이 있고, 시간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시장과 미래에 창출될 시장이 있다.


첫째, 현재 존재하는 내수시장이다. 수익적 관점에서 그 안에서의 경쟁은 개인, 기업 등 경제 주체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가에게는 제로섬 게임이다. 다만 다른 관점에서는 국가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내수시장 안의 경쟁 과정에서 해외시장에 나가 싸울 국가대표 선수들이 육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심판으로서 공정한 경기가 진행되도록 해야 하고, 또한 감독으로서 어떤 실력을 키우고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둘째, 미래에 창출될 내수시장이다.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아니다. 건강한 경제라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 정상이다. 앞서 언급한 현재 존재하는 내수시장에서, 국가가 그 역할을 다하고 개인,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또한 그 역할을 다한다면 새로운 시장은 계속 창출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고 소비가 뒤따를 것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미래의 창출될 내수시장이란, 그 사이즈를 키우는 것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인구를 늘릴 수 있으면 제일 좋다. ‘1억 내수론’이라는 게 있다. 한 국가의 인구가 1억 명 정도 되어야 국내 수요만으로 시장을 유지하고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인구경제학 이론인데, 인구가 적어도 구매력에 높으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해외에서 소비력을 끌어오는 방법도 있다. 관광산업을 활성화해서 외국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면 된다.


셋째, 현재 존재하는 해외시장이다. 초격차, 무한경쟁, 자국우선주의 같은 개념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살벌한 시장이다. 개인, 기업, 국가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총격돌하는, 마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경쟁 상태가 상시 유지되는 시장이다. 특히 국가에게 내수시장은 제로섬 게임이지만, 해외시장은 치킨 게임이다. 외시장은 초격차로 대변되듯 시장 상황이 수시로 급변한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가 여기저기서 잇따라 등판하기 때문에, 사실상 세계에는 현재 존재하는 시장과 미래에 창출되는 시장이 공존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미래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접근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그렇다면 이제 미래에 창출될 해외시장이다. 네 번째, 마지막 시장이다. 그런데 문득 시장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의 종류를 구분하고, 그에 따른 단계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점점,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무의미해지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현재와 미래 시장 사이 시간의 벽이 무너지는 수준을 넘어 내수와 해외시장 사이 공간의 벽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은 처음부터 가장 난도가 높은 4단계, 미래에 창출될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은 반드시 그래야 하고, 시장에서의 거래를 생각하는 개인이라면 마찬가지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은 새롭게 창출된 해외시장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현재 존재하는 내수시장이 되었고, 우리의 소비력을 넘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최근 한국의 극장 시장 규모는 1조 2603억 원, OTT 시장 규모는 2조 719억 원이다. 한때 12만 원하던 CGV 주가는 5천 원대까지 떨어졌다. 더 화가 나는 건 OTT 세계 1위 기업의 최근 2년간 비영어권 1위 콘텐츠가 모두 한국 콘텐츠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우리 영화를 우리가 보는데, 해외기업에 돈을 내는 것이다. 우리 문화, 우리 역량, 우리 열정이 들어간 영화로 해외기업이 전 세계에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국가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오래전 얘기다. 매년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이민자 수는 평균 2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여행객은 곧 3천만 명에 달한다.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쓴 돈은 곧 40조 원이 된다. 나간 만큼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큼 내수시장이 줄어드는 것인데, 매년 커지는 관광수지 적자 폭을 볼 때 상황은 암울하다.


또한 해외직구 규모도 매년 증가하면서 최근 8조 원이 됐다. 역시 내수시장이 그만큼 준 것이다. 쿠팡에 이어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 2위, 3위를 차지한 중국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912만 명)와 테무(823만 명)의 연간 결제금액은 4조 3천억 원에 달하며 직전 연도 대비 85% 증가했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식사 한 끼, 커피 한잔에 대해 결제를 해도 재료비, 인건비, 로열티, 배달비 등 상당액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시장에서 내수와 해외,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사라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장벽은 낮아지다 못해 사라질 것이다. 벽이 사라졌는데, 내가 나가지 못하면 남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 집 마당은 금세 남의 차지가 될 것이다. 시차(時差)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장에 맞춰 기획하고 개발해서 시장에 제품을 내놓으면, 그때는 이미 누군가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내놨거나, 시장 자체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정부가 온누리상품권 찍어서, 전통시장, 소상공인 지원하고 있다고 홍보자료 배포할 때가 아니다.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가장 소극적인 최소한의 기능에 불과하다. 우리 경제 주체들끼리 경쟁하는 내수시장에서 이쪽 수요 뺏어서 저쪽으로 옮기는 조삼모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도 연간 수천억 원씩 쏟아부으면서 한다는 게 고작 그거다. 그리고 매년 여기저기서 경쟁하듯 커져가는 적자 폭 산출해서 발표하는, 그런 일이나 하라고 인건비 100조 원씩 주는 거 아니다. 내수와 해외,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사라진 시장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는 이제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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