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 대형마트 법정관리, 그게 다가 아니다
최근 대형마트 업계 3위 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유통업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슈의 연원은 3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 등 전통시장과 관련해 쏟아부은 예산은 직간접적으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데, 그 계기가 대형마트였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대형마트는 대기업의 자본력과 유통망을 등에 업고 2000년 전후 전국으로 세를 확장했다. 백화점처럼 깨끗한 쇼핑 환경을 갖추고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새로운 형식의 마켓은 소비자를 빨아들였다.
게다가 야심 차게 한반도에 상륙했던 월마트, 까르푸 같은 글로벌 유통 강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상황에서, 역으로 중국, 동남아 등 해외로까지 진출하면서 한국형 대형마트의 경쟁력은 학계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대형마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추가하며 주택가까지 파고들었다. 대형마트의 제국은 해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전통시장은 급격하게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10년 한 통계를 보면 전통시장이 200여 개 사라진 반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은 각각 400개와 800개를 훌쩍 넘어섰다. 전통시장은 ‘서민’을 상징한다. 국가 예산과 정책의 헤게모니를 쥔 정치인들은 반드시 전통시장에서 김밥, 떡볶이, 순대 먹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곱게 자란 한 여성 정치인이 순대를 못 먹어서 홍보물 제작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전통시장엔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전통시장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전통시장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다. 경제성을 따지기 이전에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전통시장 활성화’는 완결이 없는, 영원히 진행 상태인 정책이 될 것이다. 실패한 정책이지만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유예하면서 계속 예산을 투입하는 형국이다.
그간 전통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투입된 예산은 주로 전통시장 시설 정비에 사용됐다. 이른바 ‘전통시장 현대화’로 대부분이 아케이드 설치, 주차장 신설, 점포 개보수, 노후간판 교체 등 쇼핑의 편의성을 제고하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투입됐다.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론적으로 실패다. 시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다. 시장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대형마트와의 전쟁에서 전통시장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전통이다. 현대화, 쇼핑의 편의성으로 대형마트를 이길 수 있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뿐만이 아니다. 전통시장은 전국 시군구 단위에 집중되어 있다. 청년들은 대도시로 떠나고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대부분의 시군구에는 지방소멸 경고등이 켜졌다. 그나마 남은 소비력도 KTX, 자가용 등 교통여건 개선으로 인근 대도시로 흡수되고, 마지막 소비력은 편의점, 온라인, 배달 등으로 분산됐다. 이렇게 유통과 소비가 다변화되고 그 흐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현대화하고 쇼핑 편의성을 제고해서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보겠다고, 우리 정치는 전국의 모든 전통시장에 예산을 쏟아부었다. 현대화하려던 전통시장의 상당수는 지금 슬럼화 됐다. 막대한 국민 세금도, 지방을 살리겠다는 정치인들의 구호도 모두 공중으로 날아갔다.
또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려면 청년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우선 청년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청년 상인들이 들어와야 한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고, 채택됐다. 점포를 현대식으로 꾸미고 청년들을 교육시키고 자립할 때까지 자금을 지원하느라, 개별 사업마다 수십억 원씩이 투입됐다. 그러나 정부 예산으로 운영비,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2년의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의 청년 가게가 문을 닫았고, 청년들은 떠났다. 투입된 예산이야 뭐 그럴 수도 있고, 실패도 경험이라면 경험이지만, 소중한 젊음의 시간 2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전통시장도 살아날 수 있겠구나”, “여기서 내 꿈을 펼쳐야지” 하면서 품었던,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의 대가로 돌아온 깊은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딱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정부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었고, 동반성장위원회는 대형마트에 밀려 고전하던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도입했다. 월 2회 문을 닫아야 했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대형마트에 족쇄를 채워 빈 공간을 열었지만, 전통시장의 반사이익은 없었다. 유통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이커머스 공룡들이 그 빈 공간을 그대로 먹어치웠던 것이다. 규제의 대상이 된 대형마트와 SSM 수백 개가 문을 닫았다. 과잉투자와 손실, 국력 낭비의 악순환이다.
10여 년 전,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도입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과업, 외식업 등에 대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골목상권, 중소기업의 반사이익은 없었다. 수혜 대상인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지정 이전 2년 평균 4.7%에서 이후 3.8%로 오히려 감소했다. 정부 규제로 국내업체들이 내준 제과업, 외식업 시장은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업체들이 빠르게 장악했다.
한편 전통시장 등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온누리상품권 제도 도입도 16년 차가 됐다. 최근 연간 발행 규모는 약 6조 원이다. 설연휴 등을 제외한 최저 할인율 5%만 적용해도 정부 예산으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3천억 원에 달한다. 이 비용만 하더라도 역대 수조 원이 투입된 것이다. 전통시장과 자영업자들을 살리려면 대형마트와 겹치지 않는 그들만의 시장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렇게 단순히 기존 시장을 나눌뿐인 규제나 시혜적 조치 일변도의 제로섬 게임, 조삼모사에 불과한 정책들만 폈던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라는 이름만 멋진 조직까지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적 불문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총각축장이 됐다. 무역 자유화의 트렌드, 국가 간 상호 맞물려 있는 이권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을 보호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념과 명분에 치우친 아무런 실효성도 없는 헛발질 정책들로 경쟁력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발목을 모조리 묶어놓는 바람에,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우리 시장을 해외기업들은 웃으면서 점령했다.
유통업체 매출 중 대형마트의 비중은 2020년 17.9%에서 해마다 감소했고, 최근 11.9%까지 떨어졌다. 반면에 같은 기간 온라인 유통업체의 비중은 46.5%에서 50.6%로 증가했다. 대형마트 1위부터 3위까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다 더해도 이커머스 업계 1위 한 업체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소중한 기회의 10년은 다 날아갔다. 수십조 원의 재원도 다 날아갔다. 그간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새로운 물결을 예측해 대비하기는커녕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이념적 명분론에 불과한 온갖 규제들만 남발했다. 그 규제들로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묶어놓고 해외기업들에게 우리 시장을 다 내줬다.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들이 온라인 시장을 잠식했고, 해외 자본이 토종 배달 서비스 플랫폼을 집어삼켰다. 그러는 사이 한때 제국의 칭호까지 받았던 우리 유통기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지고 있고, 우리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거나, 해외기업들에게 수수료를 납부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권력 획득을 위한 정쟁, 실용 없는 명분론에 매몰된 조선 지배층이 임진왜란을 앞두고 기축옥사를 일으켜 동인 천여 명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란을 함께 이겨내야 할 지도층의 반 이상을 날려버린 것, 정묘호란을 앞두고 이괄의 난을 일으키고 진압하느라 북방을 지켜야 할 병력과 군비의 대부분을 날려버린 것, 일제병탄을 앞두고 개혁과 근대화를 향한 내적 역량의 결집이랄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을 외세를 끌어들여 진압해 버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10년 동안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우리 전통시장에 대해 어차피 대형마트와 차별화가 안 되는 시설 현대화가 아닌, ‘전통’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오직 우리 전통시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서, 그래서 내수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끌어들이는, 대형마트와 무관한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면 어땠을까.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처럼 아무런 실효성도 없는 예송논쟁 같은 이념적 규제의 남발이 아니라, 대기업이 세계 온라인 유통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해외 브랜드와 자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줬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왜 피자헛,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들을 키워내지 못하는가. 그리고 우리 관광산업을 크게 발전시켜서 해외 소비자들을 많이 유치하고, 그래서 내수의 부족함을 채웠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중이 높다. 최근 몇 가지 통계를 종합해 보면 20%를 넘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세 번째로 높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6%, 7% 정도라고 한다. 통계상 비임금 근로자로 계산하는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거의 국민 4명 중에 1명이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셈이다. 그리고 자영업의 생존율은 1년 66%, 3년 44%, 5년 23%이다. 5년까지 버티는 자영업자가 4분의 1도 안 되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됐다면 문을 닫았을 리가 없으니 4분의 3에게는 빚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자영업자도, 모두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다시 전통시장으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정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만 그건 망하는 길이다. 당장 눈앞의 선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크게 생색이 나는 방식으로 정책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예산을 투입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궁극적 목적은, 정책 대상이 실력을 갖고, 그 힘이 실체적 쓰여서, 실질적인 이익이 남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선순환의 사이클을 완성해서 자생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전통시장 활성화’의 완성이다.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서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이 이러한 실력, 실용, 실리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의 대상이 되어 먹잇감으로 지목되면 다만 이용당하는 정쟁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이제 바꿔야 한다. 정치, 명분 같은 것들은 배척하고 철저하게 실력, 실용, 실리에 부합하는 정책 수립, 예산 투입이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