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
경제 발전,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구체적으로는 연평균 10%를 넘는 급성장, 고성장이다. 국가도, 국민도 그대로다. 오히려 인력, 기술력, 자본력 등 여러 가지 여건들은 훨씬 좋아졌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안 되는가. “가난한 집일 때는 행복했는데 부잣집이 되고 나서 왜 불행해졌지?”했던, ‘가난한 집과 부잣집’에서 품었던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기저효과다. 꼴찌에서 중위권으로 가는 것,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상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가는 것은 더 다르다.
둘째,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 부잣집 상황이 됐다. 쌀독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에는, “내 자식 밥 굶길까 봐 눈에 뵈는 게 없었다.”고, 그 시절 부모님들은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럴 자식이 없고, 아예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그때는 방 한 칸이라도 내 가족 따뜻하게 누일 수 있고, 반찬을 떠나 내 가족에게 흰쌀밥 세끼 먹일 수 있으면 족했다. 그때는 상대적 박탈감,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들이 발병할 틈이 없었다. 당장 배를 채우기 위해, 땀을 흘려 일할 때에는, 내가 일해서 쌀독에 ‘쏴’하고 쌀 채워지는 소리 들을 때에는,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볼 때에는, 통장에 다만 얼마라도 적금을 넣을 수 있을 때에는, 그것만으로도 행복으로 충만했었다.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냐고. 그 시절을 겪은 분들이 지금 대부분 살아계신다. 우리 부모 세대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는 그런 나라들이 아직 많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연평균 10%를 웃도는 급성장, 고성장의 시대가 없었다면, 이 최첨단의 시대에 아직 하룻밤 잠자리와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들의 얘기가 우리 것이 되었을 수도 있다.
셋째, 우리의 단계가 올라가고 위치가 바뀜에 따라, 필연적으로 외부환경도 변했다. 꼴찌일 때 경쟁자와 상위권일 때 경쟁자의 수준은 다르다. 또한 강력한 상위권 경쟁자들은 우리를 견제한다. 더욱이 그간 세계는 초경쟁 시장으로 바뀌었다.
넷째, 분야가 달라졌다. 급성장, 고성장을 하던 당시 우리의 주력산업은 제조업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건강한 노동력이 풍부했고, 값이 싸서 경쟁력이 있었다. 지금은 경제 활동이 가능한 생산가능인구 자체가 줄었고, 그나마도 땀 흘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더 이상 노동력의 값이 싸지도 않다. 그리고 기술력은 경쟁국들에 비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가격이 싸지도 않고 품질이 좋지도 않은 제품이 시장에서 팔릴 리는 만무하다. 우리의 주력이었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
최상위권에 랭크된 경제 강국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면서, 최첨단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것이다. 인구가 5천만 명에서 1억 명 사이인 규모의 국가가 최첨단 기술만으로 시장을 꾸려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제조업과 기술산업, 그리고 서비스업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술산업이 초경쟁력을 유지하며 세계시장을 선도한다. 그 기술력은 또한 낙수효과로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기술산업과 제조업이 일궈낸 자본력이 내수시장을 풍성하게 하고, 여유와 활력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각종 서비스업들이 당연히 성장할 것이고, 물질적 분야의 성장은 문화, 예술 등 정신적 분야의 분야도 성장도 견인할 것이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의 발전 뒤엔 인문학이 있다는 말처럼, 정신 분야는 다시 물질 분야를 이끌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세계 최상위권 랭커들이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 무기가 하나도 없다. AI, 우주, 로봇, 바이오, 에너지 등 최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중 몇 가지에서는 제조업 시대의 습관, ‘패스트 팔로워’의 행태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또 몇 가지에서는 아예 쫓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앞에서 끌어줄 첨단기술도 없고, 밑에서 받쳐줄 제조업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곱게 자랐다 보니 이제 와서 거친 세상에서 싸울 헝그리 정신도 없다. 높은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데 버틸 능력이 없고 안전하게 내려갈 힘도 남아있지 않다면, 남은 건 추락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겐 제조업의 시대만 있었을까. 최첨단의 시대, 퍼스트 무버의 시대는 없었을까. 있었다. 제철 기술이 최첨단을 달리고, 조선 기술이 최첨단을 달리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는 제철을 산업의 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반도체가 최첨단을 달리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는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렸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도 한때는”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섯째, 지금 우리에겐 그때 있었던 지도자들이 없다. 먼저 그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없다.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해서 방향성을 제시해 줄 그런 정치가들이 없다. 오로지 권력의 획득, 유지, 연장을 위한 밥그릇 다툼, 진흙탕 싸움뿐이다. 절대반지에 미쳐 핏줄이 낭자한 그들의 혈안(血眼)에는 국가의 미래, 국민의 행복 따위가 비칠 여유 공간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국익에 전혀 반하는 일들도 마다치 않는다. 그렇게 우리 부모 세대들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것들을,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태워버리고, 종국에는 자신들까지도 함께 태워버릴 욕망의 불구덩이에, 다만 화력을 더할 뿐인 장작으로 이용하고 있다.
다음은 경제 지도자들이 없다. 조선소도, 조선소를 지을 돈도 없으면서 달랑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 장 들고 당시 해양대국 영국을 찾아가 설득했던 그런 기업인이 지금은 없다. 일신의 영달에 부족할 것이 없었음에도 온갖 비난과 굴욕을 감내하면서 “식민지 배상금은 조상의 피의 대가이므로, 제철소가 실패하면 오른쪽으로 돌아 나아가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외쳤던, 그런 기업인이 지금은 없다. 오직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뿐인 상황에서 모두가 반대하자 사재를 다 털어서 반도체 공장을 지었던, 그런 기업인이 우리에겐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애국심, 그래서 자신의 안위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는 희생과 헌신으로, 총칼을 겨누던 적들까지도 숙연하게 만들었던 그런 지도자들이 지금 우리에겐 없다.
이제 기저효과는 없다. 헝그리 정신도 없다. 강력한 경쟁자들은 더 사나워졌고 견제도 심해졌다. 그간 우리를 먹여 살리던 제조업 기반은 무너지고 있고 최첨단 분야에서 감히 우리의 자리는 없다. ‘시장의 종류’에서 내수와 해외 시장 사이 공간의 벽이 무너졌고, 현재와 미래 시장 사이 시간의 벽이 무너졌다고 썼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무력화된 온라인의 위력이 어떻게 우리 영화시장에서 극장을 몰아내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장악하게 만들었는지 썼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돼버린 상황에서, 내수시장에서의 식사 한 끼, 커피 한잔에 대한 결제금액이 어떻게 해외로 빠져나가는지 썼다.
어쩌면 역순으로 가면 다시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길을 열어야 한다.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정확한 현실 판단과 확실한 미래 대안 제시가 가능한 현철함, 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리더십,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고 철저히 자신은 돌보지 않는,희생과 헌신으로 적들까지도 길을 열게 만들 그런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그러면 그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그가 보이는 모범을 본받아,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에너지와 응원에 힘입어, 기업들을 포함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힘을 낼 것이다. 이제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 기초과학을 키우고 다방면으로 훌륭한 인재들을 육성해야 한다. 기저효과는 아니더라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헝그리 정신은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이면 된다. 그렇게 제조업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 문화와 예술의 경쟁력도 더 높여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다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