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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제국주의의 도래

세계는 100년 전, 우리는 400년 전

by THERISINGSUN Mar 23. 2025

1970년대 데탕트를 거쳐,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20세기말 냉전은 종식됐다. 이데올로기의 전쟁이 끝난 것이다. 반세기 동안 속된 첨예했던 냉전의 끝에서, 싸울 대상도 목적도 사라진 세계는 잠시 숨을 고르며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만끽했다. 그렇게 20여 년 정도의 탈냉전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인간은 치열하게 싸워야만 하는 존재다. 너무 오랜 휴식은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 용납할 수도 없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졌다. 또 미국발이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이었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생명체들은 이성 끄고 온 에너지를 본성으로 몰았다. 그리고 신경에 바짝 날이 선 생존 본능의 안테나를 뽑아 올렸다. 당장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타주의, 인류애와 세계 평화 같은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층별로, 국가별로 분열이 시작됐고 철저한 힘의 논리,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신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100여 에 발생했던 세계경제대공황이 떠오른다. 미국발이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잠시 평화를 누리던 휴지기였다. 전장(戰場)이었던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온전하게 보존된 국토, 전쟁 물자를 공급하며 급성장을 이룬 경제, 그리고 승전국이 되어 모든 헤게모니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된 미국에서 폭발한 탐욕의 결과였다. 철저한 인재(人災)였다. 그때도 세계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고, 그 사이를 파고들어 집권한 독재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너무나 진부하지만, 소름이 돋을 만큼 정확하게 일치하는 패턴이다.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사실상 반복하면서도, 겉으로는 반복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본성을 살짝 가리는 이성의 역할이다. 원래는 총칼로 공격해 땅을 뺏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제국주의는 주무기(主武器)가 경제다. 수입과 수출을 통제하고, 관세를 부과한다. 또한 굳이 땅을 뺏지 않는다. 내 땅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고, 네 땅에 있는 자원과 발전소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렇다고 총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건 기본값이다. 훨씬 더 강하고 효과적인 무기들이 웃는 얼굴로 내미는 손 너머에 총도열해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아직도 400년 전을 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세계가 회귀한 100년 전의  배, 내용적으로는 몇 배가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후퇴다. 국경 밖은 힘의 논리가 득세하며 죽고 죽이는 싸움이 한창인데, 우리 지배층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더 갖겠다고 아귀다툼 중이다. 국력을 하나로 결집하고 외세와 싸워서 내 나라, 내 백성을 지키기도 벅찬 판국에, 내분(內紛)으로 다 소진해버리고 있다. 지금의 후퇴는 천추(千秋)의 한(恨)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의 100년은 속도에 있어서 그때의 100년과 비교할 수 없고, 그만큼의 전진을 놓아버리고 후퇴를 선택하며 치른 기회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제국주의가 도래 21세기의 세계로부터 400여 년 전 한반도, 조선에서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임진왜란 3년 둔 상황에서 서인(西人)들은 ‘정여립의 난’을 명분으로 정적인 동인(東人) 1천여 명을 희생시켰다. 국란에 함께 대처해야 할 지도층의 반 이상이 몰살됐고, 적은 무주공산이 되다시피 한 조선을 손쉽게 차지했다. 불과 30여 년 만에 발발한 정묘호란 앞에서도, 조선 조정은 사실상 ‘이괄의 난’을 부추겼다. 융기하는 외세의 침략을 막아야 할 관군은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나뉘어 싸우느라 몰살됐고, 국력은 바닥났다. 정묘호란 3년 전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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