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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고등학교

경쟁이 아닌 놀이, 성공보다는 행복

by THE RISING SUN

학부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작은 부품회사를 설립했다. 늘 국내보다는 세계 시장에, 현재보다는 미래 시장에 시선을 두었고, 그래서 영업이익의 3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또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직원들에게는 늘 업계 최고 대우, 최고 복지를 제공했다. 직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직원의 가족을 소중하게 여겼다. 젊은 나이에 자산가가 됐다. 성공이라면 성공이랄 수도 있는 지금, 나를 낳아준 대한민국, 오늘도 나와 같이 치열하게 하루를 사는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학교를 만들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웬만한 기계에는 다 들어가야 하는 정밀 부품이다. 세계 시장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며 1위를 지키고 있다. 기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회사가 사라질 일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경쟁력은 없다. 경쟁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뿐이다. 그래서 회사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개발을 다소 급진적인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다.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직접 여는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의 리더십은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 각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파트장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그중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달성하고, 동시에 동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이사가 최고 경영자가 된다. 최고 경영자의 임기는 보장되지만 중간에 특별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교체될 수도 있다. 물론 이사회에는 외부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그들의 의사도 각종 결정에 반영된다. 경영 체제 전환 후 회사 실적은 더 좋아졌다.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유는 인재 경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이 한 나라를 살릴 수 있고, 세계를 위기에서 구할 수도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우선 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먼저 학생들을 내 아이들이라고 생각했고, 다음은 우리 회사의 직원이 될 인재들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 한 명을 보석처럼, 보물처럼 여겼다. 학교를 짓고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내 아이 공부방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우리 직원들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세계 최고의 고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교사진이다. 나와 같이 학생들을 자기 아이들처럼 가르칠 교사, 뛰어난 인품과 실력으로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또한 학생들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줄 교사가 필요했다. 교사들은 나와 교육 철학을 같이 하는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또한 나의 스승이어야 했다.


교사진을 구성하는 데는 1년 정도 소요됐다.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 채용 공고를 띄웠기 때문이다. 우리 고등학교는 2학년 때부터 전 과목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첫째,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영어 강의가 가능해야 했다. 둘째, 전 가족이 학교 근처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어야 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할 수 있다. 교사 가족에겐 물론 아파트가 제공된다. 셋째, 교사의 인품이다. 수차례의 대화, 식사, 여행 등을 함께 하며 사람에 대한, 교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철학을 공유한 후에 결정했다. 넷째, 담당할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실력이다. 인품과 실력이 검증되어 채용이 확정되면 개별 연구실 등 대학 부교수급 대우가 보장된다.


학교의 입지도 중요하다. 고등학교 시기는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립한 성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간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고 사고하는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서 성장하는 시기다. 그래서 정규 과목 외에도 가능한 모든 분야를 체험할 수 있는, 다른 의미에서의 인생 공부를 할 수 환경이 필요했다. 산과 들과 강이 바로 옆에 있고, 바다는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광역시급 대도시와 공항, KTX역이 차로 30분 거리 안에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해주려다 보니 나 개인이 마련한 자금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처럼 육영사업에 뜻이 있는 자산가, 기업가들을 모아 재단을 설립했다. 많은 분들이 나서주었다. 평생 모은 거액을 쾌척하면서도 오히려 고마워했다. 재단 자산의 원활한 흐름과 증식을 위해 펀드를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성공한 자산가, 기업가가 되어 후배들을 돌봐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버텨야 했다.


우리 고등학교는 세계 최고의 학교를 지향한다. 그래서 행정적으로는 미국과 영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국제학교다. 우리 교육부의 인가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성격상 자율형사립고가 되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 전쟁의 대상이 되어 폐지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교육이 불가능하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가 폐지 위기에 몰렸던 일, 대표적 명문학교인 전주 상산고가 늘 자율형사립고 폐지 대상에 오르는 일, 막무가내식 의대 정원 확대 추진으로 의학 교육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 일 등이 오직 우리 아이들의 미래만을 생각해야 할 교육 정책이 얼마나 정치에 휘둘리는지, 얼마나 불안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뿐만 아니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게 되면 불필요한 각종 행정 규제에 묶여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학생이 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2학년까지 정규 과정을 끝내 고졸 검정고시를 치른다. 그리고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국내외 대학, 학과 등을 정하고 최적화된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들이 하는 조례, 훈시 같은 것을 하지 않는 대신 매주 월요일 오전 ‘명사 초청 특강’을 실시한다. 사회적 존경을 받는 지도자, 각종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 직업인 등이 강사로 섭외된다. 공부를 하는 궁극적 목표를 스스로 찾게 하고, 가능한 모든 직업에 대한 실체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특정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학생들은 해당 강사의 회사나 사무실에서 주말 인턴십을 하며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주말에는 인턴십과 함께 몇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생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분야를 결정한다. 체육, 음악, 미술 등 예체능 심화 학습 기회가 제공되고, 이공계 분야는 실험, 연구, 논문 작성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업무협약을 체결한 인접 광역시의 건설회사, 농업회사, 식당, 편의점,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일정 양의 아르바이트 시간도 채워야 한다. 3년간 지원되는 총액 내에서 1년에 국내 1회, 해외 1회 여행도 가능하고, 1년에 한 번씩은 기초 군사훈련도 받는다. 고등학생은 정신과 육체가 성숙한 예비 성인인 점,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대학, 전공의 결정을 앞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가능한 모든 경험, 배움,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매일 정규 수업 시작 전 30분 동안 각자가 선택한 운동을 하고, 점심 식사 후 수업 전 30분 동안은 낮잠을 잔다.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오히려 다양한 여유를 주고자 함이다. 고등학교 시기는 집중해야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주고자 한다. 인생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최대한 놀이에 가깝게 하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거기에 집중하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성공보다는 행복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우리 학교와 학생의 관계는 졸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해도 학교는 늘 든든하게 학생의 뒤에 있다. 성공의 소식이 들리면 함께 기뻐하고, 때로 어려움에 처하면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우리 학생들은 세계 전역으로, 모든 분야에 진출해서, 기업인으로, 학자로, 예술가로, 스포츠인으로, 정치가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 성공한 전문 직업인이 되어 학교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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