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최근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 인건비로 지출한 금액이 연간 100조 원을 넘었다. 2025년 한 해 정부 예산 총액 677조 원의 최소 7분이 1 이상이 투입된다는 얘기다. 인건비 외에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6분의 1에 달할 수도 있다. 당장 공무원·군인 연금의 연간 적자도 10조 원을 넘었다. 그리고 매년 증가하는 적자 폭은 1조 원을 넘어섰다.
유지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든 그 이상의 수익을 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기본적으로 수익적 업무를 하지 않는다. 또한 공공기관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위해 초기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거나 수익이 나지 않는 공공성 높은 사업 분야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썼다. 결국 모두 수익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2년간 공공기관 당기순손실액은 17조 2천억 원이다. 거기에 지방공공기관 손실액 4조 6천억 원은 별도이고, 공공기관 총부채 800조 원도 별도다.
아무리 수익적 업무를 하지 않고, 손실 여부를 떠나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을 담당한다고 해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해 보자. 공공부문의 지출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적자가 늘고 그 증가 폭이 매년 커진다는 것도 또한 일이 많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첫째, 대한민국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국가소멸 얘기까지 나온다. 둘째,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는 진작 끝났다. 경제 성장률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셋째, 상당수의 업무가 전산화, 자동화됐다. 한때 모든 문서의 작성과 수치의 계산을 수기로 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컴퓨터로, 전산시스템으로 처리하고 있다. 심지어 각종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고 각종 자료의 수집·정리·분석은 AI의 도움까지 받는다. 이런 이유로 민간에서는 인간이 직접 처리할 업무가 줄어들고 있고, 그래서 일자리도 급속하게 줄어든다고 하는데, 공공부문은 매년 급속도로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인구도 줄고, 경제 성장도 멈췄지만 행정, 안전, 복지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각종 공공 서비스 수요가 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공공 서비스 품질은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단 이건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 상황을 보자. 최근 몇 년 사이 공공 서비스 품질이 크게 개선됐는가. 행정 서비스는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안전은 크게 하락했다고 봐야 한다. 대형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후진국형이고, 사전에 충분히 막았어야 할 것들이다.
복지의 경우엔 급격한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서비스 수요가 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수요가 늘었으니 일자리를 늘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거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일이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그냥 빨아들이기만 하는 블랙홀이다. 그렇다면 마냥 늘릴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구조조정해서 채워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업무가 자동화되고 있다. 인구는 줄고 있고 경제 성장은 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코리아피크는 진작 지났고 더 이상 성장 동력은 없다고 말한다.
지출이 증가하고, 적자폭은 커지고 있다. 돈이 나올 곳은 줄어들고 들어갈 곳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법을 만들고 조직을 늘리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것이 돈 나올 곳을 늘리는 일이라면 환영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돈 먹는 하마들이다. ‘숲과 나무’에서 관련 업무를 추진하는 기관들이 이미 17개나 있는데, 또 공공기관을 만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썼다.
○○연구원, ○○교육원, ○○기술연구원, ○○기술진흥원, ○○진흥재단, ○○정보원, ○○정보진흥원, ○○기술개발원, ○○정보연구원, ○○정보교육원 등이 있다. ○○에 동일한 단어가 들어가는 공공기관들의 이름이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업무의 내용상 기관 하나로 통폐합해도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위한 공공성 높은 사업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모든 조직은 고유한 존재 목적이 있다. 사업 영역이다. 그리고 그런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지원하는 부서들이 있다. 주(主)는 사업이고 지원은 종(從)이다. 그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상식이다. 그래서 지원 부서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보통 기획, 인사, 재무, 총무, 홍보 같은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역시 조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주종 관계의 전복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사업 부서는 지원 부서에 끌려 다닌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가장 강렬하게 일어나는 조직이 정부, 공공부문이다. 사업의 방향을 그 사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업 부서가 결정하지 못하고, 인사, 예산 등의 업무를 관리할 뿐인 지원 부서가 결정한다. 당연히 사업은 실패하고 그 조직은 망한다.
앞서 언급한 ○○이 들어가는 10개의 공공기관에는 연봉이 최소 수억 원에 달하는 기관장들이 10명이 있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없고, 임명권자와 연결된 정치력만 있는 낙하산들이다. 역시 연봉이 억대인 낙하산 상임감사들이 또한 최소 10명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은 뒷전이고 사내 정치와 행사, 의전이 메인이 된다. 단언컨대 기관에게 주어진 역량의 최소 50% 이상이 지원 영역에서 소진된다. 10개 기관을 1개로 통폐합하고 다시 50%를 정리하면, 국민 세금으로 힘들게 마련한, 지금 쏟아붓고 있는 국력의 20분의 1만 가지고도 해당 분야의 사업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는 10개를 1개로 통폐합하기는커녕 지금 12번째, 13번째를 또 만들고 있다. 조직의 본질인 사업은 오간데 없고, 주요 의사결정은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낙하산들, 인사와 예산을 손에 쥔 지원 부서들이 한다. 그렇게 계속 적자를 내고 사업이 망하는데도 불구하고 조직을 계속 키워가고 있다.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수입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서서 이 상황을 끊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바로 주인 없는 눈먼 돈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와 행정, 그리고 정부의 일관되고도 지속적인 행태다. 자리 늘리고 보수 올리고. 그리고 공무원들은 거기에 편승하며 자신들의 이권을 챙긴다. 영혼이 없다는 지적은 분명 비판이지만 동시에 면죄부다.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비만 중독이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중독이다.
대한민국의 국가행정조직은 행정각부 19부 20청, 대통령 직속 6개 기관, 국무총리 직속 10개 기관, 중앙행정기관 소속 24개 본부, 독립중앙행정기관 2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81개 기관이다. 또한 기획재정부 지정 공공기관 331개, 인사혁신처 지정 공직유관단체 1,490개가 있는데, 중복되는 272개를 제외하면 총 1,549개의 공공기관 내지는 공직유관단체가 있다.
그리고 17개 광역자치단체, 226개 기초자치단체들이 있고, 그 산하에 1,259개의 지방공공기관들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일부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열악해 국고보조금이 없이는 사실상 파산 상태이고, 지방공공기관들은 매년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공공기관을 추가로 설립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치의 나라, 선거의 나라, 정부의 나라, 행정의 나라, 의전(儀典)의 나라다. 의전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이다. 분명 행사에는 본질적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질은 사라지고 의전만 남는다. 의전은 목적과 수단, 본질과 비본질, 내용과 형식 등 주종 관계가 전복된 우리 공공부문 부조리의 총체다. 불필요한 일에 쏟아붓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 해결하느라 또 쏟아붓고, 그렇게 아깝게 허공으로 뿌려버리는 국력을 아껴서 국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경제발전에 투자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