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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다양성

irony, paradox의 시대 단 하나의 생존 전략

by THERISINGSUN Mar 29. 2025

불확실성이 유일한 확실성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등 그간 잘 나가던 거의 모든 분야에 위기감, 당혹감을 넘어 절망감까지 짙게 드리운 현 상황에서,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고 미래 전망까지 밝은 분야가 있다. 방산이다.


한국의 K9 자주포(自走砲)는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실시한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공동 8위에 랭크됐다. 미국은 2008년 첫 조사 이후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프랑스(89%, 미국 대비), 러시아(89%), 독일(88%), 영국(87%), 중국(86%), 이스라엘(84%), 한국·일본(82%), 이탈리아(79%), 인도(73%), 스페인(70%) 순이다. 우리나라는 K9 자주포 등이 포함된 화포 체계 분야에서 4위를 차지해 강세를 보였고, 국방 소프트웨어 분야, 드론 등 공중무인 분야에서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휴전상태의 예비 화약고, 자력 방위가 불가능해 대규모의 타국 군대가 주둔한 나라, 그것도 주둔을 허락하는 것이 아닌 부탁해야 하는 나라, 그래서 전시작전권도 갖지 못한 나라, 그리고 나라 이름 뒤에 저평가(discount)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붙는 나라가, 국방력, 무기 체계, 기술력 등의 수준이 종합적으로 반영 평가에서 세계 8위에 올랐다는 사실,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자체 개발 무기 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의외다.


한국 방산의 발전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분단 70년의 시간이다. 냉전 종식 후 전 세계가 지속적으로 군비를 감축했으나 분단 상태의 한국은 국방력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둘째,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면서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매년 예산의 10% 내외 국방비에 투입고 있다. 셋째, 미국, 러시아 등 방산 선진국들을 통한 기술 도입이다. 넷째, 우리 기업과 인재들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방산 선진국들이 우리에게 공개했던 기술들은 이미 당시 시장에서 보유 가치가 소멸된 재래식 기술들이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고 무기를 사주는 조건으로 필요 없는 기술들을 넘긴 것이다. 우리 기업과 인재들이 거기서 시작해 세계를 제패할 한국만의 최첨단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탁월한 제품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서방 자유주의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Transatlantic Alliance) 균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한 집단 방위 체제 붕괴,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된 EU의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에 대해서도 동유럽과 서유럽 간 의견차가 발생하고 있다. 대륙 간 분열을 넘어 지역 간 분열, 국가 간 분열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군비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자력 무장이다. 무기 체계는 단 기간에 자체 개발이 불가능하고, 수입해 구축할 경우 최대 수십 년간 유지보수 운용이 수반된다.


‘21세기 신제국주의의 도래’에서 썼듯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공고화된 서방 세계의 협력, 동맹, 공존의 결속 탈냉전으로 느슨해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19 사태 등 잇따른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와해됐다. 그 틈을 파고든 자국우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혼란과 공포를 자양분 삼아 자라난 포퓰리즘은 그들에게 권좌를 넘겼다. 이제 협력이 아닌 자력, 동맹이 아닌 자국, 공존이 아닌 독자 생존, 즉 자연 상태의 적자생존 시대가 돼가고 있다.


자연에서 생존의 최우선 전제이자 최고의 전략은 적응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 급변이라는 상수에 대응할 유일한 대안은 다양성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양성 역시 상수가 되어야 하고, 급변의 속도만큼, 아니 그 이상 빠르게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 단일성의 끝은 멸종이다.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돌연변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돌연변이가 다양성을 유지하는 결정적 요인이고, 그로 인해 생태계가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밝혀낼 필요조차 없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세상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난무하는 모순 덩어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원인 분단 70년이 우리에게 방산 경쟁력을 가져다주었다. 그 분단을 초래한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게 해 준, 혈맹이라고까지 부르던 미국이 우리 등 뒤에 총을 들이대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서방 세계의 한 축으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함께 치른 유럽에게도 이별을 통보했다. 2020~2024년간 유럽 내 NATO 회원국들이 수입한 무기의 64%는 미국산이었지만,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최대 1,258조 원이 투입되는 유럽 자력 무장을 선포했고, 거기엔 더 이상 미국의 이름이 없다. 한때 미국 덕분에 나라를 지켰고, 기술을 도입했지만, 이제 우리가 미국의 시장을 빼앗게 됐다.


21세기 신제국주의의 시대에 관세 전쟁의 틈바구니에 낀 수출 주도 경제의 나라에게 구원처럼 다가온 기회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첫째,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거래에서 온전히 우리 이익을 챙길 수 있을 만큼 미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최대 흑자 교역국이고 우리나라에 28,500명을 파병 중인 나라다. 둘째, EU는 ‘바이 유러피안(유럽산 구매)’을 천명했다. 특히 1,258조 원 중 EU가 직접 투입하는 236조 원은 ‘유럽산 한정’ 방침을 명확히 했다. 셋째, 우리 정부의 헛발질, 자중지란, ‘오버’다. 실제로 방산 업계에선 “정부 노력에는 감사하지만 실제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강점은 좋은 성능의 무기를 저렴하게,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웬만한 무기 체계를 다 운용하고 있고 양산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직접 운용하는 무기를 직접 생산하다 보니 성능, 가격, 신속성까지 다른 경쟁국들이 갖지 못한 삼박자를 갖추게 된 것이다. 최근엔 폴란드의 주문에 대해 석 달 만에 배송까지 끝낸 적이 있다. 다른 나라는 3년이 걸릴 일이었다. 같은 시기 노르웨이와의 계약은 NATO의 견제로 불발됐지만, 한국산 무기에 대한 유럽의 신뢰도와 만족감은 크게 상승하고 있다.


무기는 단순히 판매로 끝나지 않는다. 매우 특수한 시장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최적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한번 판매하면 최대 30년 동안 운용하게 되며, 그에 따른 유지보수 비용이 판매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무기 체계 도입을 추진하는 모든 국가들은 수입과 자체 개발 중에서 저울질한다. 수입을 선택하는 이유는 첫째, 기술적 장벽, 둘째, 교역 관계, 셋째, 비용 문제 등이다. 자체 개발을 선택하는 이유는 첫째, 외교적 자율성 확보, 둘째, 국내산업의 활성화 및 부가가치 창출, 셋째, 장기적인 비용 절감 등이다.


우리가 방산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자체 개발보다 유리한 수입 조건을 내밀면 된다. 월등한 기술력, 적절한 기술 이전(offset) 등 원활한 교역 관계 유지, 저렴한 판매 가격 및 유지보수 비용이다. 그리고 굳이 자체 개발을 하지 않아도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국내산업 활성화 및 수출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동시에 가장 부족한 것은 국방과학기술 8위인 우리 앞의 경쟁국들에 비해 열세 기술력이다. 방산 핵심 소재 10종의 국산화율은 21%에 불과하고 FA-50, KF-21과 같은 미래 수출 주력제품의 엔진은 100% 미국산이다.


향후 방산 트렌드는 AI와 무인화다. 관련 기술들은 지휘통제체계(C4ISR), 자율무기시스템(AWS), 국방 사이버 보안 등에 적용되며 군사 전략과 작전 방식에 대변혁을 가져오고 있고, 전투기, 로켓, 미사일, 드론 등 무기 개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합성지능센터(Joint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를 설립해 AI 기술을 군사 작전에 적용하고 무인전투기(XQ-58A 발키리), 무인지상차량(UGV), 무인해상시스템(USV) 등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은 ‘군민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을 통해 민간 AI 기술을 군사 분야에 도입해 무인전투기, 무인잠수함, AI 기반 지휘통제 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특히 다수의 소형 드론이 협력해 목표를 공격하거나 정찰하는 기술인 스웜 드론(Drone Swarm)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AI와 무인 기술을 활용한 정밀 타격 및 방어 시스템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하르피(Harpy)와 같은 자율 공격 드론, AI 기반의 무인지상차량(UGV) 및 전투 로봇, 아이언 돔(Iron Dome) 같은 AI 기반 방어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불확실성은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모순 시대에 의도치 않게 방산 분야 경쟁력을 갖게 된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양성의 위력이고, 동시에 앞으로 다양성을 더 키워야만 하는 절박함에 대한 실증이다. 한국은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자력 무장 트렌드는 유럽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벌써 캐나다, 중동 등도 무기 체계 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한번 판매하면 유지보수 기간인 최대 30년 동안 우리 고객이 되는 것이고, 이후 다음 단계로 또 연결될 것이다. 우리가 반세기 동안 매년 수조 원씩 투입해 가며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고 있는 이유다.


앞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언급했다. 미국의 개입, 유럽의 경쟁력, 정부의 오판이다. 이 세 가지 걸림돌을 무사히 뛰어넘고 AI, 무인화 등 국방과학기술의 첨단화를 이룩할 수만 있다면, 방산은 우리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류의 과학문명을 한 단계씩 끌어올린 건 언제나 전쟁이었다. 또한 퀀텀 점프를 한 새 기술이 등장하는 순간 그 이전 기술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분야 중 하나가 방산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AI 시스템과 로봇들만 싸우는 전투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엔진을 자체 개발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고, 최근엔 세계 7번째 로켓엔진 개발국이 되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방산만으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방산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바로 튀어나갈 수 있는 다음 선수, 그리고 그다음 선수가 계속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은 전문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첨단화를 추구하고,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레이더를 넓게 펴서 다양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첨단화와 다양화는 상호 충돌하는 개념이다. 트렌드의 급변 속에서 잘못하면 우왕좌왕하다 죽도 밥도 안될 수 있다.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양성을 더 다양하게 계속 늘려야 한다. 방산은 의도치 않게 찾아왔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전략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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