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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시즘

by THERISINGSUN Mar 31. 2025

고작 5년이다. 당선증을 받아 들 때, 취임식 연단을 올라갈 때, 단 한 번이라도 내놓을 때와 내려올 때를 생각했다면 럴 수 있었을까. 퇴임한 권력자들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여러 가지 뒷말들이 무성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물론 정점이기에 오픈되는 자리고, 정적에 의해 공격받는 자리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당사자는 축출, 피살, 투옥, 자살, 탄핵 등을 겪고, 가족과 측근들도 그에 못지않은 어려움들을 겪는다. 영광 찬란했던 만큼 무색한 몰락다. 우리 권력의 역사에서 당사자와 가족, 측근들이 온전하게 보전된 사례는 없다.


집무실로 들어가는 긴 복도에는 역대 권력자들의 초상이 걸려있다. 매일 아침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 긴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더욱이 요즘은 5년이랄 수도 없다. 2년만 지나면 레임덕이 오고, 국내외 정세에서 비롯된 각종 해저드와 부비트랩들이 임기 내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매일매일이, 매 순간이 백척간두다. 그 자리가 예리한 권력의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길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냉철한 이성의 빛을 단 한순간도 꺼뜨려서는 안 되고, 눈앞을 가리는 권력에 달려든 부나방들을 내쫓고, 불편하고 아프더라도 직언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판과 실책을 반복하는 걸 보면,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걸 보면, 원인은 그동안 흘러가지도, 바뀌지도 않았던 그것에 있는 것이다.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의 권력을 행동으로 표출한다. 평소 강한 권력욕의 소유자는 욕구를 억누른다. 사람들이 그런 사람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아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높은 지위에 오르면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다. 행동을 표출하면서부터는 차츰 자기를 과신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부하들이 상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위계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주관적으로 과대평가한다. 필요한 역량은 키우지 않고 직관에만 의존한다. 이런 경향은 지위가 높을수록 심화되고, 객관적 상황 판단과 타인의 협력 등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문제의 합리적 해결요원해진다.


권력의 실체는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의 뇌는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쾌감을 자극하는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을 분출한다. 마약을 했을 때와 같은 기제다. 행사가 반복될수록 권력은 오로지 더 큰 권력, 더 큰 쾌감을 향해 폭주하게  되고, 종국적으로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의 단계로 접어든다. 마약에 중독된 것과 동일한 상태다.


실제로 권력을 경험한 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목표를 설정한다. 처음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지위가 올라가고 권력을 체감하면서부터는 권력 자체가 목표가 된다. 수단과 목적, 비본질과 본질, 형식과 내용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고 연장하고 확장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권력은 두뇌를 마비시키고 중독된 권력자는 취하는 것이다.


UC 버클리의 심리학과 교수인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는 자신의 전공과 함께 생물진화론, 동양철학 등 연계 학문 분야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권력의 역설> 이론을 정립했다. 단순히 이론이라기보다는 수십 년 동안 관찰하고 실험한 수많은 사례들을 연구한 결과 도출해 낸 실증이다.


먼저, 권력을 손에 쥐면 공감 능력이 낮아진다. 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의 과제와 목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면서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게 둔화되는 것이다. 특히 타인의 슬픔, 고통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신경학적으로도 권력은 공감과 관련된 뇌의 활동을 약화시킨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유를 돕는 ‘거울 뉴런 시스템’을 통해 작동하는데, 권력을 갖게 되면 거울 뉴런의 활성화가 감소되어 타인의 감정에 대한 신경 반응이 약화된다.


또한 권력을 갖게 되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특권을 정당화하는 인지적 편향이 강해진다. 자신은 더 우월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자기 행동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만들어 사회적 규범에 덜 따르고 더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한다. 이는 인간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멀어지게 해서 타인과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권력자는 자신과 타인의 경험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지 않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타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객체화에 도달한다.


이런 현상은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서로 전혀 안면이 없는 처음 만나는 관계의 사람들로 피실험군을 구성했다. 나이, 성별, 경력이나 신체적 조건 등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임의로 리더의 역할과 수동적으로 따르는 역할을 구분했다. 실험 과정에서 리더는 자신의 주장을 근거 없이 고집하고, 따르는 이들의 어려움에 무신경한 반응을 보이면서, 공감 능력의 둔화, 특권 의식, 타인에 대한 객체화 등 권력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리더를 뽑고 권력을 부여했으나, 리더십은 붕괴되고 공동체는 멸종의 위기에 직면한다.


케이스들이 축적되면 가설이 되고, 가설이 입증되면 이론이 성립된다. 이론에 연구와 실험이 추가되고, 예외가 나타나지 않으면 법칙의 반열에 오른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국제정치학과 교수인 브라이언 클라스(Brian Klaas)는 정치학, 진화생물학, 행동경제학 등 탄탄한 학문적 토대를 기반으로 EU, NATO, 각종 NGO 등 국제 정치 무대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론과 실재를 종합해 <민주주의의 역설> 이론을 정립했고, 세계 전역의 최고 권력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백 건의 인터뷰를 통해 검증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대리자를 선출하고 권력을 맡기는 시스템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또한, 어둠의 삼원(The Dark Triad)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해로운 성향의 세 가지 성격으로, 성격심리학자 델로이 폴허스(D. L. Paulhus)와 케빈 월리엄스(K. M. Willinams)가 2002년 제시다. 첫 번 나르시시즘적 페르소나로, 자기애적 과대망상, 타인의 존경과 관심 갈망, 인지적 편향과 모략을 활용한 부정적 피드백 방어 등을, 두 번째는 마키아벨리즘 페르소나로, 자기 이익을 위한 타인 착취, 타인에 대한 교묘한 비하와 조종, 도덕성이 아닌 자신의 이해관계 우선시, 위선, 배신, 중상모략, 매사 냉소적인 태도 등을, 세 번째는 사이코패시즘적 페르소나로, 도덕심, 윤리심, 후회 등의 결여, 변덕스럽고 충동적이며 무책임함, 자신의 악행에 대한 합리화와 문제의식 결여 등을 각각 특징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이 세 가지 해악적 성격을 정치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절대로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되는 이 세 부류들이 현실에서는 대체로 쉽사리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다. 첫째,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이들은 권력을 뼛속까지 갈망한다. 넘치다 못해 표출되는 자신감은 능력과 리더십으로 비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둘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마키아벨리스트들이다. 이들은 권력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먹으로 칼을, 칼로 총을 이길 순 없다. 셋째, 본색을 숨기는 사이코패스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해롭지 않거나, 심지어 선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데 능란하다. 자신이 믿거나 원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말이나 행동으로 호감을 산다.


선거는 이런 특성들이 빛을 발하는 완벽한 무대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에 대한 과신(過信) 성향에서 비롯된 허세, 야망, 사기, 허풍, 뻔뻔함이지만, 국가와 국민을 이끌 정치적 역량으로, 마키아벨리즘은 영악, 음흉, 비열, 잔인, 불의지만, 최고 권좌를 감당할 수 있는 권력의지로, 사이코패시즘이 그렇게 완벽하게 둔갑시켜 대중을 속다. 권력을 잡은 들이 부패하는 게 아니라, 애초 부패한 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권력을 잡으면 안 되는, 권력에 가장 취약한 자들이 가장 용이하게 권력을 잡는 아이러니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리콴유,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은 최소 4선 이상을 하며 장기 집권한 정치 지도자들이다. 짧게는 12년에서부터 길게는 31년까지 최고 권에 있었다. 모두 적법한 선거를 거친 정당한 권력이었고, 의회까지 장악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만 권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히 일부 중에서도 극히 일부다. 사실상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같은 이들이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권력이라는 절대 반지를 마다할 인간은 없다. 절대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부패하지 않을 인간은 없다. 그건 권력이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에 적극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성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과도 적극적으로 부합한다. 권력에는 최고의 부와 최고의 명예까지 인간이 성공의 척도로 규정하는 모든 것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권력을 가지려는 것, 가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것은 순리다. 임기를 연장하고 연장하다가 사실상 종신 집권을 추진하는 이유, 연정을 맺었다가 깨는 이유, 책임총리제를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는 이유, 권력기구들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상 독립을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는 이유,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가 다시 만드는 이유가 다 그래서 그런 거다. 그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는 인간의 말을 믿으면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당위라고 믿는 것이 항상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당위일수록, 아주 무거운 당위일수록 더더욱, 반드시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완벽한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그건 당위니까, 내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는 정치인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는 것은, 요행의 요행의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직무유기다. 권력을 절대로 잡아서는 안 되는 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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