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가시티

지방과 중앙 모두에게 긴급한 구조조정

by THE RISING SUN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라는 지표가 있다. 공식적으로 ‘재정수입의 자체 충당능력’이라고 설명하는데, 연간 써야 할 돈 중에서 얼마만큼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평균은 48.6%이고, 특·광역시 57.7%, 도(都) 36.6%, 시(市) 31.5%, 구(區) 28.1%, 군(郡) 17.2% 순이다. 특·광역시 중에서도 서울(74.0%), 세종(57.5%), 경기(55.1%)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50% 미만이다. 그리고 30%를 겨우 넘겼거나 미달하는 도, 시, 구, 군들은 사실상 재정적 파산 상태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한때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시가 2013년 파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이슈화가 됐었는데, 당시 기사들을 보면 광역 17개, 기초 226개 등 243개 우리 지방자치단체들 중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충당 못하는 곳이 절반이 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0여 년 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악화됐다. 2021년 89개였던 소멸위험 기초자치단체가 2023년 118개로 늘어났고, 2047년엔 157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정 자립도가 50% 미만, 30% 미만이면 나머지는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빚을 내거나,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럼 중앙정부의 상황은 어떤가. 긴축 재정을 천명했지만, 최근 5년간 나라살림의 적자는 500조 원이다. 이전 10년의 두 배가 넘는다. 원인은 심플하다. 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수입은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저출산·고령화, 사회적 인프라 노후화 등으로 각종 비용은 증가할 것이나, 성장 둔화로 수입 증가 요인은 없다.


수입이 부족하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현재 중앙정부 채무는 1160조 원으로 부채비율이 50%가 넘었다. 정부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인 74.7%보다 낮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118.7%), 일본(249.7%) 등을 제외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최상위권이고, 더 큰 문제는 OECD 국가들이 부채비율을 낮추는 추세인데 반해, 한국만 그것도 급격한 속도로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기축통화국 중 부채 증가폭 3위다.


다시 지방자치단체로 돌아가서, 대다수가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도 감당 못하고, 인구 감소로 소멸위험에까지 직면해 있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 않은 시점에 월급을 못주는 자치단체, 더 나아가 주민이 없는 자치단체가 등장할 것이다. 게다가 생명줄 역할을 하며 겨우 버티게 해주고 있는 중앙정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스스로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외부로부터의 산소, 수액 등의 공급이 곧 끊길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공급을 책임지는 주체도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수입은 줄고 지출이 늘어나면서 적자가 쌓이고, 적자폭이 계속 커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도 심플하다. 먼저 지출을 줄여야 한다. 수입을 늘리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그럼 지출은 어디서부터 줄여야 할까. 낭비성인 것, 투입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들부터 줄여나가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한 자리 수인 자치단체가 44개나 된다. 자립 능력이 10%도 안 되는 지방정부에 필요 재원의 90% 이상을 빚내서 지원하는 것은, 결코 지방정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까지도 결국 망하게 하는 일이다.


그럼 이렇게 원인도 심플하고 해법도 심플한 문제를 왜 해결하지 않고 있는가. 10년 이전부터 제기됐던 문제이고, 장차 우리 사회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심각한 문제인데 말이다. 그 원인도 역시 심플하다. 현 지방행정 체제 하에는 단체장 234석, 광역의원 872석, 기초의원 2988석 등 총 4,094개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누구를 공천할 것인지, 누가 당선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적 힘은 대통령, 국회의원 등 중앙 권력이 쥐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지방행정 체제를 개혁하는 권한도 대통령, 국회의원 등 중앙 권력이 가지고 있다. 더불어 현 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 향후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도 일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 따위야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연장, 그리고 확장에만 혈안이 돼있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이 줄어들고, 현재 지켜야 할 자리 또는 미래에 가야 할 자리가 사라지는 일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지방행정 개혁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놓고 생선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난센스다.


권한과 책임을 가진 자들이 나서건 말건 간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구조조정뿐이다. 기초자치단체를 없애고 광역자치단체만 존치한 상태에서, 수도권, 부울경(부산, 울산, 경상), 충청권, 전라권 등으로 통폐합을 해야 한다. 그럼 크게 5~7개 정도의 광역자치단체만 남는다. 미국이나 독일 등 진짜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내린 국가들이 운영하는 지방정부 수준의 규모가 되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는 인구수에 따라 통폐합한 후 인구 50만 명 내외의 자생력을 가진 중도시급 행정구로 변경해 광역자치단체에 편입시킨다. 실제로 인구 50만 명 이상일 경우 인구 10만 명 이하 보다 취업자 증가율이 13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게 하면 각 광역권의 인구수는 최소 500만 명 내외가 될 것이다. UN은 인구 천만 명이 넘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능한 뉴욕, 런던, 도쿄 같은 도시들을 메가시티로 규정했지만, 우리는 구조조정을 통해 출범한 광역도시들을 한국형 메가시티로 부르자. 메가시티가 되면 도시로서 자생력이 생긴다. 인구가 500만 명 정도 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는 기업들이 들어와 일자리가 창출된다.


또한 무엇보다도 현재 243개의 개별 기초자치단체로 운영됨으로 인해 투입되는 각종 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우선 정치, 행정 관련 비용이 사라지고, 도로, 철도, 공항 등 각종 사회적 인프라 건설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구가 모여 살게 될 각 메가시티의 거점 지역에만 인프라를 집중 건설하면 되기 때문이다. 각 기초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국비를 따내서 출렁다리 수백 개, 케이블카 수십 개를 만들고 다 같이 적자가 되어 망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소멸 위험의 근본 원인이면서 동시에 국가적 위기의 원인이기도 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지방에 일자리가 생기고, 생활하기 편리한 각종 인프라가 확충되면 수도권으로 떠나기보다는 잔류하려는 젊은 층이 늘어날 것이다. 거기에 보육과 교육, 주거, 사회보장 관련 정책들을 추가로 추진한다면 훨씬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국정과제의 탄생’에서 행정의 비효율과 예산의 낭비만 초래하는 사업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국정과제가 되는지 설명한 바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거기에 인사권으로 붙들려있는 중앙정부 조직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지방자치제도의 도입 이후 지방에서도 그런 폐단과 부조리가 복사판처럼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소통령이다. 자신의 임기동안 자신의 지역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들 입장에서 국비는 심리적으로 훨씬 더 눈먼 돈이고, 남의 돈이다. 그렇게 시정과제, 군정과제, 구정과제도 탄생하는 것이다.


지금의 지방자치단체는 공공기관과 함께 감히 정치인들의 양대 놀이터라고 규정하고 싶다. 권력을 놓고 다투고, 쟁취한 권력을 누리고, 그리고 중앙의 더 큰 권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 같은 것이다. 이렇게 부패하고 지극히 비효율적인 현재의 지방행정 체제를 전면 개혁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각 권역별로 자생력을 갖춘 메가시티를 건설하다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분권도 실현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신속한 대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6화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