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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아사우라 Nov 18. 2020

6. 토피넛, 그리고 미니멀라이프

테리지노가 사는 집



미니멀라이프가 한참 붐을 이루며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올 때도 나는 그저 '아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지금 살고 있는 생활패턴에 딱히 불만도 없었고, 미니멀로 살아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려 도처에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서 소중해진 사물들도 많다. 그래서 그것들을 버리는 건 뭔가 나의 추억과 감정마저 쓰레기통으로 가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항상 망설여졌다.

그렇게 만족하다가 망설이다가를 오가며 살던 나는 복병을 만났다. 바로 아이
아이가 태어나자 사물은 의미를 부여할 새도 소중해질 새도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물건을 줄이는 대신 좀 더 넓은 집으로의 이사를 택했다.
놀라운 건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제야 '미니멀'이라는 단어에 깊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쇼핑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기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며 일단 물건을 사지 않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해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냐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예상대로 실패했다.

결국 쇼핑을 포기하지 못하고 기존의 물건들을 버리고 나누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것을 사들이는 속도와 비슷해서 달라지는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미니멀은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했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맞지 않으면 입을 수 없다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 새벽을 만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졌다. 무엇이든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나는 쇼핑을 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청소시간을 몇 배 이상 늘리는 물건들에 현기증이 일었다.
물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청소를 하는 그 위대한 노동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나는 필요함을 넘어서는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이제는 사지 않는 편안함과 버릴 때의 홀가분함을 알아가고 있다.



아이의 장난감은 사주지 않은지  되었지만 아가 때부터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여전히 우리 집엔 함께하고 있다. 그중에서 아이와 하루에 하나씩 골라 소중한 기억바구니라는 곳에 넣어주고 있다. 소중한 기억바구니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버리는 중간자 역할이다.  그리고 기억바구니로 가기 , 장난감 혹은 물건과의 추억을 아이와 나눈다. 처음에는 나를 닮아서인지 추억이 깃든 사물과의 이별을  힘들어하더니, 이제는 슬픈 척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내일은   넣어야 하는지 고심하는 얼굴에는 살짝 웃음기까지 인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기억바구니에   없었던 물건이 오늘은 보란 듯이 들어앉아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소비에도 영향이 간다. 기억 바구니에 가는 사물들이 많을수록 동물들이 아파한다고 설명해 두었기 때문이다.(동물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는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염려한다)  사고자 하는 물건이 언젠가 기억바구니에 담겼던 경험이 있는지 살핀다.
아이는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역시 하루에 20 정도 시간을 들여 서랍   , 책장 한켠 등등을 매일같이 정리하고 있다.(버리고 나누고 있다.)

타인의 시선이 무척이나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리고 다른 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들고, 생김새에 관심을 두었었다. 내가 신경 쓰던 부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무엇을   행복한지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타인도 내게 그런 관심을 보내주길 내심 바라는 요즘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도 말하듯이
누군가의 시선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만을 소유하는 -
내겐 정말 쉽지 않았는데 해나가고 있다.

아, 그런데 여전히 예전 버릇을 못 버리고 사치하는 유일한 품목이 있다.  책.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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