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위해 마음에 남겨 두기로 해

너의 찰나

by 마이아사우라



아이와 오랜만에 미술관에 갔다.

올해 처음이다.

코로나로 잔뜩 웅크려있던 몸을 아주 조심조심 살살 움직이고 있다.

아이가 일 년 동안 손꼽아 기다린 공연 두 개도 예매해두고 나니, 올 한 해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하루 종일 공룡처럼 울부짖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음악 앞에서 차분해지는 모습 아니지 그림과 음악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나서기 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술관에서 그림을 그려도 되냐는 아이 물음에 가서 여쭈어봐야 하겠지만, 가능할 것 같다며 나서는 기분에 흠집을 내지 않기로 해본다.


각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 선다.

아이는 말, 나는 쓸쓸해 보이는 그림 앞에



나는 모든 계절마다 쓸쓸할 수 있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쓸쓸해한다.

어제는 그림 앞에서 그렇게 했다.



한참을 앉아 그림을 그리고 보던 아이가 엉덩이를 뗀다.

묻고 싶었다.

그림은 어땠는지 기분이 어떤지.

그러나 한 박자 쉰다.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 먼저 묻는다.

말로 풀어내기 쉽지 않다. 쓸쓸했어 그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풀어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에 남겨두기로 한다.

나도 못하는데.. 쉽지 않은데...

아이에게 원하는 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생각은 생각 안에 머무를 때 좀 더 낭만적이라고 느껴져서이다.



우리의 가을이었다.

우리만의 가을이었던 순간이었다.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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