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아사우라 Nov 25. 2020

7. 거리두기

테리지노가 사는 집

                                                                                                                                                                                                                                                                                                                                                                   

                                                                                                                               

나는 호출기 그러니까 삐삐를 사용해본 세대이다. 친한 친구와 숫자로 암호를 정해서 떡볶이집에 있다면  55282 (떡볶이 빨리) 전화 통화를 하고 싶으면 797982821(친구친구빨리빨리 뒤에 1은 베스트 프렌드를 의미) 이렇게 숫자로 암호를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비밀스러운 일상이었고, 음성 메시지와 노래 선물은 사춘기 시절 나에게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삶의 이유였다.  그 작은 기계는 차갑지 않았다. 되려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동안 전화와 문자 기능에 충실한 핸드폰을 사용했다. 그저 필요했다.


나는 지금 스마트폰을 쓴다. 처음엔 이 기계를 만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이 기계는 나에 대한 정보를 매일같이 요구하고 나의 생활 전반을 컨트롤하면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생활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고 있다. 이 기계에 대한 의존도는 커져만 가는데 내게는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이 차가운 기계가 이제는 살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휴대폰이 생기면서 기능을 완전히 분리했다. 새로운 휴대폰에는 특정한 앱을 다운로드해 두지 않았다. 예전 휴대폰으로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먹을거리를 주문하고, 책을 주문하고, SNS 업로드를 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 앱을 누르지 않는다. 그 속에 정처 없이 떠돌며 머무르지 않는다. 자유로워졌다.





육아에 있어서 여러 가지 확고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스마트폰은 나의 아주 확고한 육아관중에  하나이다. 스마트폰은 아이가 대학 진학 전까지는 사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일련에 과정 중에 나도 스마트폰을 포기해야 한다면 함께 그 길을 걸어갈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다. 지금도 아이가 나의 이런 육아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관계와  아이의 생활습관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아이가 대부분이 다 가지고 있는 그 작고 재미난 세계에서 홀로 빠져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지금 50개월 5세다. 아이가 어릴 적 아주 잠시 공동육아 비슷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아이는 친구들의 집에서 여러 가지 영상을 접했다. 내 아이만을 위해 영상을 끄자고 할 수는 없었다. 모이면 엄마들도 밥을 먹어야 했고, 아이들을 떼어놓기에는 영상만큼 좋은 게 없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길 원했고... 그때, 나는 과감히 홀로 외로운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함께 육아하던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시기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라곤 함께 육아하던 사람들뿐이었고,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내 아이를 티브이 앞에 둘 수 없었다. 작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아이를 두고 순대곱창을 먹을 수는 없었다.


현재 아이 곁엔 늘 책이 있다. 언제나 스스로 곁에 둔다.


아이는 책으로 컸다. 물론 미디어를 아예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DVD나 다큐 정도고, 보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미디어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주 편안하고 재밌게 즐기면서 딱 그 자리에서 마무리된다. 지혜롭게 미디어와 잘 보조를 맞추어 육아를 해나가는 분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 강하고 재미나고 자극적인 미디어보다 내가 더 재밌게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자신 말이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엔 미디어보다 강한 무언가가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미디어를 아이 곁에서 거리를 두었다. 아이의 유창한 영어실력에 미디어의 도움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미디어와 적정거리를 잘 유지하며 그 안에서 찾아낸 아이의 반짝이는 순간들은 앞으로 아이와 스마트폰 관계에 있어서 내게 보내주는 청신호 같았다. 그렇다면 나부터 먼저 스마트폰과 서서히 멀어지면서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빠와 내가 티브이를 보지 않는 습관을 들인 것처럼 -


그렇게 요즘 나는 스마트폰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다행히도 잘 되어가고 있고,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언론은 사람들의 부정 본능, 즉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을 이용한다고 팩트풀니스에서 한스로슬링은 말했다. 그런 언론들이 엄청나게 쏟아내는 인터넷 뉴스를 멀리하면서 확실히 뇌가 좀 더 싱그러워진 느낌이다. 그나마 좀 더 한 박자 쉬며 생각할 수 있는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품으면서 말이다.



너무나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조금 불편한 삶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느껴지는 것은-


불편함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고, 그 작은 행복 속에 무한한 세계가 있다.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6. 토피넛, 그리고 미니멀라이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