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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Jan 31. 2020

미움에는 이유가 없다

언니는 안녕하시다 (3)

언니는 안녕하시다

(3) 미움에는 이유가 없다              



 

대학 시절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는 회원 출석률이 경이로울 정도로 높았으나 동아리 고유 활동은 경악할 정도로 드물었다. 이유는 아마 모호한 정체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아리는 학교에서 인가받은 거의 유일한 문화비평동아리였다. 그러나 선배들 말에 따르면 90년대 말까지 꽤 진보적인 형태의 교지를 편찬했던 교지편집부가 동아리의 전신인 모양이었다. 교지 폐간 뒤 새로운 포지션을 획득했으나 문화비평이라는 광범위하고 모호한 테마에 도리어 발이 묶인 셈이었다. 학생회관 꼭대기 층에 꽤 큼직한 동아리실을 배정받았음에도 우리는 거기 모여 앉아 각자의 과제를 하는 데 매진했다.      


정체성만큼이나 모호한 활동의 관습들도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회의테이블에 모여 창작해온 시詩를 합평했다. 난데없이 왜 창작시인 건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써오라니까 쓰고, 비평하라니까 비평했다. 시에 대해 아는 것도 배운 것도 없으니 대개 비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맹렬히 재판한 뒤 불콰해진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 나가 학교 앞 술집에 파묻히곤 했다.           



P가 동아리에 들어온 것은 신입생 모집이 진즉 끝난 10월이었다.       


    

“시화전을 봤어요.”          



P가 말했다. 가을에 있었던 학교축제에서 우리 동아리는 시화전을 열었다. 동아리실 구석에 잔뜩 쌓여있던 이젤과 액자들의 쓸모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서로의 시를 실컷 물어뜯은 뒤 적절한 시어들(누구나 이해할 만큼 평범하거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무성의하고 허세 섞인 시어들)을 골라내 액자에 끼웠다. 시화전 장소는 학생회관 소강당 앞 로비였다. 반짝거리는 폴리싱 바닥과 조명 때문에 액자 속 시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P는 그것을 보았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시화전을 보고 동아리에 들어올 생각을 하신 건가요?”

“네.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시화전은 처음 봤거든요.”

“시비 거는 거야?”

“아니요.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P를 둘러싼 우리는 고민에 잠겼다. 신입회원은 반길 일이었으나 계기가 하필 시화전이라니.       

    


나는 사흘간의 축제 기간을 떠올렸다. 이젤을 세우고 액자를 설치하고 나자 우리는 일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떡볶이를 만들어 팔자. 선배 중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학생회관 입구 앞에 커다란 테이블을 끌어다놓은 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설치했다. 전화번호를 적은 수제전단지를 만들어 학과실, 동아리실, 건물 현관마다 붙이고 다녔다. 컵떡볶이 500원 쟁반떡볶이 1000원. 어묵과 파를 잔뜩 썰어 넣은 떡볶이는 불티나게 팔렸다. 축제 기간 내내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떡볶이를 끓이고 모자란 밀가루 떡을 공수해오고 건물 계단을 총총 오르내리며 떡볶이를 배달한 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시화전이라니. 우리의 난감한 얼굴과 전혀 무관한 태도로 P가 말했다.      



“생각보다 책이 없네요. 이런 동아리는 벽면 전부가 책장일 줄 알았는데.”

“봄에 동아리방 이사를 해서 그래요. 몇 년에 한 번씩 동아리방 배치가 바뀌거든요.”     


우리는 어느새 P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고 있었다.          



     





P는 어쩐지 불편한 사람이었다. P 자신은 늘 무해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는데, 그와 마주 앉아있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술렁거렸다. 우리는 초조한 기색으로 변명 같은 말들을 늘어놓을 때가 많았고, 간혹 화를 내듯 그의 질문을 찍어누르곤 했다.      


“비평동아리 치곤 폐쇄적인 분위기인 것 같아요.”

“우리는 더없이 친화적인 분위기인데.”

“토론날짜는 정해져 있나요?”

“토론 주제에 따라 다르지.”

“그건 비정기적이라는 뜻인가요? 그럼 주제나 일정은 어떻게 정해요?”

“너 무슨 과야? 왜 이렇게 따박따박 따져?”     


그가 재수를 해서 나와 동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학번이 깡패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는 P를 대했다. P는 월말에 창작시 합평이 잡혀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뻐했다. 저는 고교시절 내내 시를 썼어요. 돌연한 그의 고백에 마음이 무거워진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동기들은 갑자기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회의테이블 위로 문화비평론, 비평담집 따위가 심심찮게 굴러다녔다.           




결론적으로 그의 시는 엉망이었다.     




시를 대하는 그의 경건한 태도는 압도적이었으나 그가 써온 시는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선배들은 말을 더듬으며 어, 이거 어디서 본 듯한 표현인데, 저기, 이거는 시라기보다 그냥 일기에 가깝지 않냐,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이건 뭐랄까 너무 유치하다는 느낌이라. 그는 선배들이 하는 말을 맹렬히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너무 열심이다 보니 평소에는 개떼처럼 서로를 물어뜯던 선배들도 이성과 예의를 찾아 열심히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P로 인해 우리 동아리의 무언가가, 그러니까 티끌만큼 남아 있던 정체성이나 규칙 따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느꼈다.           



“학우님 글은 기대에 못 미치는 면이 있네요.”          



그는 날이 선 내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을 다쳤다거나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는 감정의 동요 없이 어떤 책을 참고하면 제게 도움이 될까요, 이건 사어입니까? 따위를 묻고 있었다. 선배들이 그에게 이런 저런 책의 목록을 일러주었다. 자신들도 분명 제목과 줄거리 정도만 훑어봤을 것이 분명한 책들이었다.      



그렇게 유순하던 P는 다른 사람 합평 시간이 되자 안색이 바뀌었다. 그는 신랄하고 예리하게, 듣도 보도 못한 인문학자와 철학자, 시인의 이름과 이론을 빌어 우리의 시를 비평했다. 그 중 가장 혹독했던 것은 내가 제출한 시로, 그는 사회운동가 이름까지 들먹이며 내 사고방식이 편협하고 사용 어휘의 수가 극도로 적고 시어들의 배치가 조화롭지 못하며, 세 편의 시가 자기복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일갈했다. 



나는 대꾸할 말이 없어 P를 힘껏 노려보기만 했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선배들이 짐짓 재밌어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적절한 변명 한 마디 못한 채 합평을 끝냈다. 나는 내내 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가 합평이 끝나고 모두가 술집으로 옮겨가느라 부산하던 때에 P를 불렀다. 가방에 클리어파일을 밀어 넣던 P가 나를 돌아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너 진짜 재수 없다.”          


공교롭게도 그 말은 동아리실을 공허하게 울렸다. 선배 하나가 동아리실 문을 열면서 다들 밖으로 빠져나가려 걸음을 멈춘 순간 내가 말을 뱉은 탓이었다. 앞서 나가려던 동기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먼저 가서 자리 잡고들 있어. 그렇게 말한 선배 언니가 사람들을 밖으로 쭉쭉 밀어내더니 동아리실 문을 닫았다.           


동아리실에는 P와 나, 닫아놓은 철문에 등을 기댄 언니 셋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온 언니가 내 편이리라고 믿었다. 뭔가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마주한 언니의 눈은 지독하게 싸늘했다.          



“온도, 말해 봐.”     


언니가 말했다.     


“P의 뭐가 싫은지, 뭐가 재수 없는지 정확히 말해. 이유 중에 합당한 게 하나라도 있으면 넘어가줄게.”

“그건 언니도 알잖아요.”

“난 몰라. 그리고 P도 모르지.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 기회는 딱 한 번만 줄 거야.”      



“P가 들어온 이후로 우리 동아리가 이상해졌잖아요. P는 잘난 척이 너무 심하고 제멋대로고 애초에 우리 동아리 회원도 아니었는데 자꾸 일정을 쥐락펴락하고 사람들을 무시, 아니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도 들고, 선배들도 저나 제 동기들이랑 P를 다르게 대하는 것 같고, 붙임성, 이 나쁜 건 아니지만 아니 그냥 저랑 사이가 나쁜 거지만, 저기, P는 시도 못쓰는데 말이 많고……”     



주절주절 말을 잇다보니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움. 끔찍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 말들은 하면 할수록 내가 졸렬하고 비열해지는 말들이었다. 나는 언니는 물론 P의 발끝조차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멋대로 울음이 터졌다.      



“사과해.”     



언니가 말했고. 나는 P에게 사과했다.           


      






언니는 동아리뒤풀이 장소와 다른 술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정말 너무해요. 언니가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 있어요?”           



그래. 당시 나는 저 말을 했다. 해버렸다. 지금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듣고 싶지 않아하는, 경계선을 함부로 뛰어넘는 그 무례한 말들을 쏟아내던 시절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언니는 내 원망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무감하고 무표정하고 그러면서도 중재가 필요한 자리엔 꼭 나타나는 그런 사람.       


   

“내가 12살에 영국에 가 살았단 얘기 했었지? 거기서 대충 7년쯤 살고, 대학을 이쪽으로 진학했다고.”

“우리 중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거기서 내가 어땠을 거 같아?”     


언니는 예쁘고 정확하고 어쩐지 날렵한 인상을 주는 고급만년필 같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도 그랬겠지. 누구나 좋아하고 동경하면서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물어왔겠지. 그러나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 나이 또래 애들은 그냥 럭비선수 몸에 원숭이 뇌를 이식해놓은 수준이라고 보면 돼. 거기 작고 깡마른 유색인종 여자애를 던져놓으면 어떻게 되겠어? 내 주위는 늘 아수라장이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멸시의 말을 다 들었지.”     



어느 날 선생은 언니를 괴롭히는 애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고 했다. 다섯 명의 남자아이와 한 명의 여자아이였다. 선생은 텅 빈 교실에 아이를 한 명씩 들어오게 해 언니와 마주 세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자, 타미. 이제 말해봐. 이 애의 어떤 점이 그렇게 싫으니?’          



[걔는 너무 노래요]

[넌 뺨이 빨갛고 목덜미가 회색이구나]

[말도 잘 못하잖아요]

[그럼 너는 말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괴롭혀야 한다는 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였니, 타미?]

[못생겼어요]

[네가 딱히 매력적이라고는 나도 말 못하겠다] 

[쟤는 눈동자가 개처럼 새까매요]

[네 눈도 고양이 눈 색이야]

[내 말을 무시했어요]

[신사답지 못하긴]          



“애들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소리치다 나갔어.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내게 사과했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 그게 좋은 방법이었는지. 애들은 말하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겠지만, 그걸 온전히 듣고 있어야 하는 나는? 그 일 이후로 멸시는 계속됐지만 두드러진 괴롭힘은 없었어. 자신의 치졸한 부분을 낱낱이 고백하는 사람도, 그걸 필터링 없이 전부 뒤집어써야 하는 사람도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던 거야.”      


“하지만 그거랑 이건 달라요. 저는 인종차별을 한 것도, P를 멸시한 것도 아니에요.”      



“미움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적당한 이유만 있으면 누구든 미워하고 혐오해도 괜찮다는 거야?”


“그렇게 거창한 얘기가 아니잖아요.”


“하나도 다르지 않아. 미움은 원래 가장 사소한 데서 시작되는 거야.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미움은 끝이 없어. 이유도 필요 없지. 쟤는 건방지고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망치고 어쩌고 하는 잡다한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끝없이 증식되는 게 미움이야. 그리고 그딴 건, 우리 동아리에 필요 없어.”        


  

언니가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평온한 숨소리로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지만 잔을 잡고 있는 손등에 힘줄이 힘껏 불거져 있었다.           



“나는 네가, 그런 애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런 애가 어떤 앤데요?”

“미움과 혐오를 정당화시키려는 사람. 말하자면.”           


언니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비겁한 인간.”               








나는 새벽에 P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야 할 말을 아무것도 마련해두지 못한 채, 언니와 헤어지자마자 충동적으로 건 전화였다.      


“신경쓰지 마. 나는 전부터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 너는 좀 이상하다고, 어울리기 힘들다고 다들 그랬어.”    


 

나를 위로할 셈이었는지 P가 먼저 말했다. 나는 드문드문 택시가 서 있는 검은 도로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소리쳤다. 유치하고 촌스러운 말들이었으나 적어도 동아리실에서 뱉어낸 말만큼 부끄러운 말들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P와 통화했고 목이 쉴 만큼 소리를 질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런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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