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떤 악의도 없이
성인이 되면서 나는 틈틈이, 여러 곳에서 일했다.
대학 1학년 여름 일했던 곳은 한 상점가의 보세옷가게였다.
지하철역과 멀티영화관이 지척에 있어 늘 사람이 넘치는 곳이었다. 길게 뻗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상점들이 마주보고 있는 구조였는데, 취급 품목이 의류에 집중되어 있어 상점 간 경쟁이 심했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나는 사 개월쯤 일했다. 상점 휴무일 외에 쉬는 날이 없어 나는 그 해 여름을 온전히 옷가게에서 보냈다.
사장 부부는 작달막한 키에 체형이며 둥글넓적한 얼굴형까지 쏙 빼닮은 사람들이었다. 생김이나 차림새는 촌스러웠는데 어딘가 여유로운 촌스러움이랄까, 자신들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워 이런 모습을 고수한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적어도 ‘영 스트리트 패션’을 표방하고 있는 상점가 내에서는.
상점 사람들은 사장이든 직원이든 옷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다운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쇼윈도에 디피해둔 주력상품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너무 촌스러운 모습’은 당연히 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장 부부는 가게 상품과 전혀 상관없는 피케이 셔츠와 구식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가게를 운영하는 건 여사장으로(남자사장은 동대문에서 옷을 떼어오는 일을 했다) 자잘한 컬로 파마한 단발머리를 매일 똑같은 모양으로 반 묶음 했다. 인근을 통틀어 삼각김밥 머리에 등산할 때나 찰 법한 검은 전대를 허리에 감은 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평일 오전에는 재고 정리를 하거나 새로운 상품에 택을 달았다. 사이즈별로 옷걸이 작업한 상품을 한 아름씩 안아다 가게 안 행거를 채우고 개수를 세는 일이었다. 옷 먼지 때문에 눈과 기관지가 금세 부풀어 올랐다. 팔다리허리가 뻐근해지고 기침이 쏟아져 나올 때쯤 사장은 매점에 전화를 걸어 아이스커피와 토스트를 배달시켰다. 우리를 배려해서라기보다 그녀가 먹는 것을 좋아한 탓이었다.
매장에 있는 동안 사장은 끊임없이 군것질을 했다. 푸드트럭에서 파는 소금닭꼬치와 튀김 넣은 떡볶이, 상점가 배달 전문 매점의 치즈토스트와 맥반석계란, 지하철역 앞 노점상 감자핫도그와 순대볶음이 사장의 간식 목록이었다. 사장과 나, 또 다른 알바생은 가게 안쪽에서 야금야금 그것들을 먹었다. 사장은 손님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팥빙수를 사먹을 수 없다며 서러워하곤 했다. 식대와 간식비는 모두 사장 부담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일자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월급이 밀리는 일도 없었고 노동의 강도는 평범했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장이 종일 옆에 붙어 떠들어댔으나 그녀에겐 나름대로 말재주가 있었다(사장은 때로 자기 이야기에 심취해 손님 응대를 놓치기도 했다). 매출이 떨어져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소금닭꼬치를 씹으며 평온을 되찾는 사장을 보면 웃음이 났다. 여름방학이 끝난 뒤에도 나는 강의가 없는 금토일마다 옷가게로 출근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장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 까닭은.
사장은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야기는 대부분 남의 험담이었다.
시작은 다른 가게로 스카웃되어 떠난 전 직원 얘기였다. 걔 이후로 우리가 직원을 안 뽑잖아. 사장은 사뭇 분에 차 떠들어댔다. 전 직원이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출근해 창고에 토한 얘기며 손님이 많은 주말에 수시로 화장실에 가 이십분씩 돌아오지 않았다든가 하는 식의, 그야말로 험담에 불과했다.
“화장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마냥 참을 수도 없고.”
“그렇지. 그렇긴 한데 내가 서운해서 그래. 2호점 내면 걔한테 맡길 작정으로 일도 가르쳤거든. 새벽시장 데려가서 옷 사입하는 것도 가르치고, 우리 거래처 데려가서 선도 다 따주고. 그럼 최소한 가게 옮기기 전에 의논이라도 했어야지. 월급나간 다음 날부터 내리 무단결근하다가 그만두겠다고 문자 하나 보내는 건 아니지.”
“그건 너무했네요.”
“그렇지?”
내가 동의하자 사장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다프네 또 저러고 있네.”
사장이 돌연 맞은편 가게를 보며 혀를 찼다. 차 한 대가 다닐 법한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가게들이라 쇼윈도는 물론 서로의 가게 내부까지 환히 보였다. 우리가 매장을 꽉 채운 행거에 옷을 진열해놓고 파는 전형적인 보세옷 가게였다면 맞은편 매장 <다프네>는 고급 숙녀복 판매점이었다. 행거가 최소한으로 배치되어 홀이 넓고 밝았다. 쇼윈도에 수십 개의 조명을 설치해두고 높낮이가 달리 배치된 마네킹에 사장과 직원이 주기적으로 테마를 바꿔 스타일링했다.
사람들 시선이 집중될 정도로 다프네의 쇼윈도는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그 날도 다프네 사장이 쇼윈도 끝에 있는 마네킹에 재킷과 패턴블라우스, 페도라를 이것저것 대보고 있었다.
“다프네 남편 본 적 있지? 그 사람이 옛날에 복싱을 했거든. 술 마시고 크게 싸움을 해서 그만둔 뒤로 줄곧 백수로 살아. 밤에 데리러 오는 덩치 큰 남자.”
“아, 본 적 있어요. 두 분이 되게 사이 좋아 보이던데요.”
“그렇지. 그런 사람들이 남 보기엔 꼭 그래.”
의미심장한 말투였다. 나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다프네 사장을 바라보았다. 반품할 옷을 가득 담은 대봉을 어깨에 짊어진 채 가게를 나서는 남자를 본 일은 몇 번이고 있었다. 그에게 바짝 붙어 서서 쉬지 않고 얘기하는 다프네 사장은 어디에 저런 체력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두 사람은 종종 큰 소리로 떠들었고, 마감 준비로 번잡스러운 이쪽 매장에까지 그들의 웃음소리가 울리곤 했다.
“그 사람, 손버릇이 영 나빠.”
“도둑질을 해요?”
“그쪽 말고 이쪽.”
사장이 훅훅, 잽을 날리는 모션을 해보였다. 다프네 사장 눈에 띌까 봐 상체를 행거 뒤로 반쯤 숨긴 채였다.
“저 집 옷이 비싼데도 장사 엄청 잘 되잖아? 여기 말고 강남고속터미널에도 쬐끄만 가게가 하나 더 있어. 다프네 여동생이 하는데 실제로는 분점이나 마찬가지지. 돈도 많이 벌고 자리도 잡았는데 딱 하나, 남자 손찌검하는 버릇을 못 고쳤대.”
“때린다고요?”
“엄청. 그래서 다프네가 한여름에도 반팔을 못 입어. 어깻죽지랑 팔다리가 죄다 멍투성이거든. 저번에는 목을 조르고 난리를 쳐서 여기 턱 아래 시커먼 줄이 두 개나 그어졌더랬지. 얼마나 세게 졸랐는지 석 달이 지나도 없어지질 않더라고, 자국이.”
마르고 팔다리가 긴 다프네 사장은 긴 옷에 복잡한 무늬가 들어간 머플러를 목에 감고 있었다. 사장이 얘기하기 전에는 그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매장 에어컨은 과도하게 낮은 온도로 설정되어 있었다. 나와 다른 알바생만 해도 얇은 카디건을 상비해두고 입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프네 사장은,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다프네 사장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놀랐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듯도 했다. 집에서 폭력적인 남자가 공동체에서는 더없이 선하고 좋은 인상을 연기한다는. 밖에서 표출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집 안에서 터뜨린다고 했던가. 나는 새삼 두려워져 몸을 떨었다.
“웬만하면 다프네랑 말 섞지 마. 남자 쪽은 더더욱.”
사장이 단호한 어투로 경고했다. 마침 들어온 손님이 검고 긴 셔츠가 있냐고 물어와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뚝을 살폈다. 에어컨 냉기에 닭살이 돋은 팔뚝에는 멍은커녕 어떤 흉터도 없었다.
청바지 가게 사장이 찾아온 건 알바생 때문이었다. 상점가 초입에 위치한 청바지 가게는 저렴한 상품을 종류별로 쌓아놓고 파는 창고형 매장으로 일이 힘들기로 유명했다(라고 다른 알바생이 일러주었다). 청바지 가게 사장은 이번에 새로 뽑은 직원이 여기서 일했던 사람이라며 이름 하나를 댔다.
“여기서 반 년간 주말 알바 했다더라고. 어떻게, 쓸 만한 이야?”
“아유, 안 돼요, 안 돼, 왜 하필 그런 애를.”
사장이 망설임 없이 손사레를 쳤다.
“걔가 제 시간에 출근한 이력이 없어요, 아주. 잔꾀는 얼마나 부리는지 일 시켜놓으면 다 했다고 와도 불안하다니까. 성격은 좀 괄괄해? 한 달에 두 번은 손님이랑 크게 붙어서 일하다 말고 뛰쳐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그래?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이상하네.”
“걔가 그렇다니까요? 처음 일 시킬 땐 세상에 그렇게 싹싹한 애가 없어요. 말귀도 잘 알아듣고 행동 빠르고. 근데 사장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잘못한 거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눈이 확 돌아서 덤벼요. 내가 진즉에 그만두게 하려던 걸 해코지당할까 봐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니까요. 잠깐 알바로는 괜찮아도 직원으로는 큰일 나요. 무슨 꼴을 당하려고.”
“듣고 보니 면접 보러 와서는 가게 쓱 둘러보는 눈이 심상찮긴 했지. 일하겠다는 사람이 네일도 요란하게 해 붙이고 묻는 말에 따박따박 한 마디도 밀리는 법이 없더라고.”
나는 좀 질린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아니, 면접 보러 온 사람이 그럼 묻는 말에 따박따박 대답을 하지 뭘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러고도 한참을 이마를 맞댄 채 떠들었다. 나는 카운터 옆에서 스팀기로 셔츠를 다리고 있던 터라 그들의 숙덕거림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청바지 가게 사장이 혀를 내두르며 돌아가고 나서야 나는 다림질을 끝낸 셔츠를 가져다 가게 전면에 걸었다. 내 표정이 유난했는지 사장이 졸래졸래 쫓아와 말을 이었다.
“꼭 그것만은 아니어서 그래.”
“뭐가요?”
“바지사장한테 내가 말 못한 게 있어. 괜히 흉본 게 아니라니까.”
사장이 목을 쭉 빼 밖을 살피는 시늉을 했다. 청바지 가게 사장은 애진즉 사라진 뒤였다.
“걔가 파파가 있어.”
“아빠는 다들 있죠.”
“아빠 말고 파파. 파파 몰라? 이거.”
사장이 새끼손가락을 경박스럽게 흔들어보였다.
“한 번은 쪼글쪼글한 늙은이가 와서 애 궁둥이를 툭 치는 거야. 걔가 돌아보고는 파파! 이러면서 늙은이 목을 끌어안잖아? 내가 옆에서 얼마나 놀랐게. 둘이 저기 앞 횡단보도에서 한참을 시시덕대더라고. 뭐하나 싶어 쳐다봤더니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이만큼 꺼내서 걔 주머니에 넣어주는 거야.”
“설마요.”
“어느 때는 늙은이가 가게 앞에 차를 딱 대놓고 기다려. 진짜 아빠면 왜 가게 앞에서 두 시간, 세 시간을 기다리겠어. 매번 가게로 찾아와서만 만나는데 둘이 부비작대는 게 아유, 얼마나 흉하던지. 내가 요즘 애들 옷은 팔아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 게 힘들더라고. 사람이 정직해야지 왜 그런 돈을 받아서 살아. 늙은이가 꼭 밖에서 애랑 밥 먹고 커피 먹고 헤어질 때마다 주머니에 만 원짜리를 한 줌씩 찔러주고. 내가 다 남우세스러워서 원.”
나는 다프네 사장 얘기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우울해졌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다지만 왜 이곳 사람들은 유난히 일그러져 있을까. 그간 사장에게 들은 타인의 삶은 대개 그런 식으로 어딘가 찜찜하고 궁핍했다.
치즈토스트를 배달해주는 매점 언니는 삼십대 중반으로 상체가 다 울림통이 아닐까 싶을 만큼 목소리가 크고 우렁찬 사람이었다. 넓은 어깨와 달리 다리가 얇고 긴 데다 테니스복 같은 짧고 파란 천 치마를 즐겨 입어 눈에 띄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음료수나 샌드위치 같은 걸 들고 상점가를 수십 번씩 오가곤 했다. 사장은 그녀가 고교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상점가 끝자락에 있는 나이트클럽 양아치에게 걸린 가장 나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공부를 곧잘 해 부모가 일찌감치 서울로 보냈으나 애가 생기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화가 난 부모가 아직까지도 일 년에 두 번은 매점을 뒤집어엎으러 온다고 했다. 여차저차 빚내서 콧구멍만한 매점을 하나 내긴 했는데 남자가 도망갔지.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혀를 쯧쯧 찼다.
비닐, 이라 불리는 젊은 남자는 매주 수요일에 상점가에 왔다. 끌채에 호수에 따라 크기가 다른 비닐봉지를 잔뜩 싣고 와 주문한 물량만큼 내려주고 가곤 했다. 우리는 3, 5, 7호 봉투를 각각 백 개씩 받아썼다. 남자는 말을 조금 더듬었으나 키가 훌쩍 크고 팔이 단단했다. 원래는 저이 아버지가 하던 일인데 뺑소니 사고로 반신불수가 됐다지 뭐야. 사장이 비닐을 행거 끝에 매달며 말했다. 겨우 범인을 잡고 보니까 고등학생들이 차 훔쳐서 술 먹고 운전하다 그런 거래. 보상은 한 푼도 못 받았지 엄마는 도망갔지 집에 반신불수 아버지는 누워 있지. 아들이 하는 수 없이 일 물려받아서 하는 거래. 쯧쯧 사장이 혀를 찼다.
“언니, 내가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요.”
알바생이 창고에 같이 가자고 불러냈을 때 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나를 언니라고 불렀지만 사실 우리는 동갑이었고,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간호학원에 등록해 시험 준비를 하며 일을 하는 그녀가 나보다 훨씬 선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첫 만남에서 그녀는 내 생일을 묻고는 팔 개월 언니네, 하더니 이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그러나 내가 긴장한 건 그 때문은 아니었고.
“사장하고 너무 많이 얘기하지 마요.”
그녀가 노랗게 탈색한 긴 머리를 훌훌 넘기더니 검은 고무줄로 꽉 올려 묶었다. 일하면서 들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커다란 대봉을 꺼내 선반 위의 옷들을 쓸어 넣기 시작했다. 가게 창고는 건물 지하에 있었고, 백열등 하나가 덜렁 달려있는 그야말로 콘크리트 상자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먼지가 폭포처럼 솟아오르는 창고에서 도매처에 반품할 옷들을 골라내 대봉투에 넣었다.
“사장 이 거리에서 유명해요. 머리채 뜯긴 적도 내가 아는 것만 세 번은 될 걸요. 다프네 사장은 물론이고 거기 직원들이 우리랑 눈맞춤도 안 하죠? 왜일 거 같아요?”
나는 다프네 사장의 긴팔 셔츠와 요란한 문양의 스카프를 떠올렸다.
“다프네 남자사장, 전문대이긴 해도 의류학과 나왔어요. 무슨 얘긴지 알아요?”
“갑자기 학교는 왜?”
“복싱 같은 거 한 적 없다고요. 그냥 전공대로 창업한 사입자 출신 사장이에요.”
뭐?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폭력사건에 휘말려 복싱을 포기한 뒤 술과 여자에 빠져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자가 아니라?
“다프네 여자사장이 원래 동대문에서 도매했었어요. 사입자랑 거래하다 연애하고, 둘이 자기 가게 차린 거죠. 보면 둘 다 가게에 애정이 철철 넘치잖아요. 다프네랑 우리랑 원래 사이좋았어요. 가끔 같이 회식도 하고. 근데 사장이 자꾸 헛소문을 퍼뜨리니까 대판 붙고 절연. 뭐, 그런 거죠.”
옷이 가득 담긴 대봉을 야무지게 잡아 묶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언니,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 그 언니랑 친해서 지금도 계속 만나거든요. 언니네 부모가 이혼해 따로 살아요. 부모가 영 험악하게 헤어졌는지 아빠 소리만 나와도 엄마가 발작을 해서 언니가 아빠랑 밖에서 몰래 만나는 거예요. 돈뭉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긴 개뿔, 하는 일이 일용직이라 돈 생길 때마다 언니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주러 오는 건데 그런 지저분한 소리를 해대고.”
“거짓말이라고? 그럼 그게 다 거짓말한 거라고?”
“내 얘기, 뭐 들은 거 없어요? 이전에 알바했던 남자애한테는 내가 애 가져서 고등학교 퇴학당한 날라리라고 했다던데. 걔가 군대가기 전에 펑펑 울면서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다 이해한다고.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들은 얘기는 조금 달랐다. 고교 시절 일진이었던 그녀가 후배를 하나 잡아다 팼는데, 걔가 하필 시사프로그램 담당피디 고명딸이었다고. 피디가 학교폭력실태고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펄펄 뛰는 바람에 학교에서 서둘러 그녀를 퇴학시켰다는 얘기였다. 걔가 맘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니까 나도 과거 안 따지고 진짜 내 딸처럼 조카처럼 데리고 있는 거야. 사장은 짐짓 자랑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했었다.
“나도 언니 얘기랍시고 들은 거 있거든요. 근데 말 안 할게요. 들어봤자 서로 기함만 할 테니까. 그러니까 언니, 사장이 옆에 와서 떠들면 어느 집 개가 짖는구나 하고 말아요. 언니가 하염없이 들어주니까 신나서 더 떠드는 거예요, 그 사장.”
“……왜?”
당혹스럽고, 무서웠다. 내가 우뚝 굳어 있는 동안 그녀는 재빠르게 대봉을 하나 둘 채우더니 순식간에 일을 끝내고 목장갑을 벗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거야?
“심심해서요.”
문 앞까지 끌어놓은 대봉들을 발로 툭툭 치며 그녀가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렇대요. 전에 내가 화가 나서 따졌더니 남자사장이 그러더라고요. 망상증환자라고 생각하고 참고 일해주면 안되겠냐고. 와이프한테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매일매일이 똑같으니 너무 무료해서, 심심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그녀가 지하계단을 올라가며 소매와 옆구리께를 팡팡 털었다. 그녀의 걸음마다 부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정신이 든 나는 허둥지둥 전기를 끄고 창고 자물쇠를 걸었다. 가게로 들어가다 말고 나는 맞은편 다프네를 살폈다. 쇼윈도의 옷들은 빈틈없이 화려했다. 가게 안쪽, 부드러운 재질의 희고 긴 셔츠를 입은 다프네 사장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다.
나는 행거에 있는 옷들을 정리하며 이쪽 사장을 흘끔거렸다.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아 튀긴 고구마를 오독오독 씹고 있는 사장을, 그녀의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돌연 등이 오싹해왔다. 남자사장은 악의 없이 한 짓이니 이해해달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떤 악의도 없이 만들어진 소문이라니.
어떤 목적도 없이, 한 줌의 악의도 없이 타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그것이 단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행위라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장이 손을 까딱거렸다. 이리로 오라는 표시였다. 내가 곁에 가서 서면 그녀는 또 누군가의 추문을 떠들어대겠지. 쯧쯧 혀를 차면서 가끔은 안쓰럽다는 듯 말끝을 어물거리면서 자신이 지어낸 타인의 불행에 심취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대겠지. 나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바쁘게 지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숨차게 전하고 있을 나의 불행은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종류의 파렴치한 인간이 되어 그녀 곁을 망령처럼 떠돌게 될까.
나는 마감 시간까지 그녀의 곁에 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사장이 아닌 남자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더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자사장은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날까지 일한 나의 일당을 계산해 계좌에 넣어주었다. 다음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 일해달라거나 책임감 없는 태도를 나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사장이 떠들어댔을, 나도 몰랐던 나의 불행한 사건들 때문일 거라 확신했다. 이후 나는 종종 그 상점가에 들렀으나 가게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따지거나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혐오를 억누르며 나는 확신했다.
사장은 계속, 평생을 그렇게 살 것이다.
정성들여 베를 짜듯 소문을 지어내며. 결코 어떤 악의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