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출근길

두 번째 출근길 : 자기 대화

by 진언


마음을 향해 귀 기울이셨나요?
이제 마음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입니다.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지금은 6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에요. 역 플랫폼에서 용산역 급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하루가 시작되는 게 실감 나네요. 낭랑하고 구수한 멜로디가 급행열차의 도착을 알리고 있어요. 이제 전철에 오를 시간입니다.


오늘은 <나를 만나는 출근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나를 만나는 출근길이 '자기 대화'에서 시작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자기 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자기 대화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면, 굉장히 쉬운 두 단어의 조합이에요. ‘자기’와 ‘대화’만큼 익숙한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러나 함께 묶여 당당히 서 있는 자태는 우리를 주저하게 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으실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린 하루에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마주하고 있잖아요. 수많은 연구는 우리가 하루에 5만 개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말해요. 흔히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라고 말하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인 셈이죠. 그러다 보니 이를 자기 대화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자기 대화는 지겹게 하고 있다고 말이죠. 여기에서 우린 '대화'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화(對話)란 마주하여(對) 이야기를 주고받는(話)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그럼, 우리가 하는 생각은 대화일까요. 아닐 거예요. 대화는 상호성의 원칙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대체로 우리의 생각은 홀연히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집니다. 잠시 둔덕에 걸려 멈추긴 해도, 우리가 먼저 불러 세워 찬찬히 들여다본 적은 없을 거예요. 마주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주고받지도 않죠. 생각은, 맑은 하늘에 간간이 자리한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가 흘러가 사라지고 맙니다.


자기 대화란
자신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화란 무엇일까요. 과거 한 상사는 대화를 하자며 직원을 본인의 방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처음엔 직원의 생각을 물어요. 이에 직원이 한 마디 하면, 그 후엔 그의 시간이 펼쳐집니다. 소회는 대체로 1시간 이상 이어집니다.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거나 시계에 고정되죠. 한 후배는 이를 방패가 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수십 개의 화살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기분 말이에요. 그는 대화라 말했지만, 우리는 독백이라 칭했어요. 물론 속으로만요. 대화는 주고받을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결국은 진심이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마음에 닿으려는 진심 말이에요. 자기 대화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자신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9년 전 찾아온 불안장애는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게 했습니다. 폐부를 할퀴던 말, 보잘것없는 듯 쳐다보던 차가운 시선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모두 저였습니다. 저를 옭아매던 공포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저였던 것이죠. 저를 달래야 했어요. 사과해야 했어요. 그러려면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감정이 툭툭 튀어나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웠어요. 허겁지겁 사람을 찾아 곁에 두었죠. 하지만 알잖아요. 결국 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마음의 문을 두드렸어요. 마음이 전해주는 말들을 그대로 노트에 적었죠. 이상해도 적었어요. 이유도 묻지 않았어요. 왕의 황금률을 받아 적는 사관처럼 묵묵히 적었습니다. 오랫동안요. 덕분에 지금은 마음에 노크 없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믿고 기다려주는 가상의 인물에게
마음을 터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이제 궁금하실 거예요. 자기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자, 이름만 생각해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존재가 있나요. 나의 이야기를 왜곡 없이 들어줄, 그런 사람 말이죠.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배우 김혜자 님을 떠올려 보세요. 그녀가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묻고 있네요. ‘지금, 어때요?‘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있어요. 자, 지금이에요.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꺼내보세요. 아무도 재촉하지 않아요. 날 믿고 기다려주는 가상의 인물에게 마음을 터놓으세요. 그러면 됩니다. 시작이에요. 저는 어느 날, 제 안의 도덕적 목소리인 '초자아'를 앞에 앉혀 본 적도 있어요. 상대가 조금 만만치는 않죠? 2024년 1월 20일 토요일 오전 5시 52분, 그날 쓴 자기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도 알고. 하지만 이제 느슨해지면 안 될까. 나를 봐. 눈도, 코도, 입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모두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같아. 같은 감정을 지녔고, 같은 모습을 하고, 무엇보다 같은 행동을 해. 나 역시 실수할 수 있고, 나쁜 감정을 품을 수 있고, 때로는 잘못을 할 수도 있어. 그럴 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넌 뭐든 이겨내니까. 잘못된 게 아니야.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타인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러니까, 내 눈치 그만보고 자유롭게 살지 않을래? 난 언제든 널 지지하니까!'라고 말해줄 수는 없을까? 어쩌면, 평생 이 말을 네게 듣고 싶었는지 몰라. 네가 날 인정해 주면, 날 받아들이는 게 훨씬 쉬울 것 같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건 나잖아. 너도 내 행복을 기원하고 있잖아. 도와주라. 그 혹독한 시선 좀 풀어주라. 기다릴게. 나의 초자아야."


당시 작성한 저널(Day One)의 스크린숏 이미지입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대화의 도입부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미지는 대화의 결말부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작성하다 보니 문법 오류나 중언부언이 많아요. 솔직하게 보여드리려고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초자아와 나누는 대화는 세 번째 이미지에 등장합니다.


어때요, 자기 대화가 여전히 어색하신가요.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반말도 좋고, 존댓말도 좋습니다. 구어체도 좋고, 문어체도 좋아요. 가장 편한 형태를 취하면 됩니다. 편하게 마음을 전하다 보면, 언젠가 내 앞에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앉아 있는 걸 보게 될 거예요.


자기 대화를 시작하며 관련 정보나 서적을 많이 접했습니다. 심리 전문 지식도, 글쓰기 실력도 없는 저에겐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거든요. 가끔 자기 대화를 자기 확언(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긍정하는 말과 태도)으로 풀이하는 이들도 만나곤 합니다. 자기 확언은 중요합니다. 사람은 결국 언어의 동물이고, 언어가 그의 세상을 정의하기 때문이죠. 긍정의 언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충분히 알고 있지만 할 수 없을 때, 혹은 하고 싶지 않을 때 말이에요. 힘이 풀려 누워버린 사람에겐 응원의 말보다 한 모금의 물이 더 소중할 수 있어요. 응원의 메시지는 일어난 뒤에 들려줘도 늦지 않거든요. 이제 막 힘을 내어 앉은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왜 힘이 풀렸는지,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답할 겁니다.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할 거예요.




고된 삶에 지치다 보면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가 있죠.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우리 무의식은 절대 우리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대화는 본능일지도 모르겠어요.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 말이죠. 단지, 우리가 그 문을 두드릴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고요. 자기 대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과 마주하고 싶을 때 펼쳐지는 마법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제 자신과 마주하며 진솔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신가요?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을 위한 해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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