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마지막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두 달 만에 인사드리네요.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꽤 길어졌죠? 발행 약속을 지키지 못한, 못난 작가를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그동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정성스럽게 귀담아들으며 지냈어요. 뻑뻑함에 떠지지 않던 눈꺼풀이 조금씩 무게를 덜기 시작했고요. 음식물을 거부하던 위장은 서서히 그 문을 열어주고 있어요. 변화의 시작은 통근거리의 단축이었어요. 감사하게도, 7월부터 자택에서 가까운 근무지로 출근하고 있거든요. 덕분에 기상시간이 2시간 늦춰졌어요. 긴 통근시간을 의미 있게 보냈다고 자부했지만, 가슴 어딘가에 큰 바위 하나가 조용히 걸려 있었나 봐요. 발령 첫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온몸에 구멍이 뚫린 듯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어요. 그동안 몸과 마음이, 결연한 의지 앞에서 힘듦을 내색하지 못했구나, 라고요. 지금은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이루어져 있죠. 몸은 자유를 찾았지만, 마음을 향유하던 정신적 자유는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근거리의 이점을 누리고자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서, 출근길 자기 대화가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거든요. 자기 대화의 행복을 목놓아 외치던 제가 맞냐고요? 네, 맞아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자기 대화의 신봉자였던 제가, 이렇게 쉽게 자기 대화를 놓아버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저, 참 모순 덩어리죠? 그래서 찾아뵙기 더 힘들었는지 몰라요. 꼭 변절자 같았거든요. 극한 상황에서도 이어가던 자기 대화를, 편안함을 되찾자 바로 놓아버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러다 오늘에서야 그 이유에 닿을 수 있었어요. 오히려 극한 상황이었기에 자기 대화가 절실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죠. 괜찮다고, 계속 나아가자고, 기진맥진한 저를 앞으로 끌어 줄 단단한 동아줄, 그 동아줄이 제겐 자기 대화였을 거예요. 2024년 8월 26일부터 2025년 6월 27일까지, 약 10개월 간 자기 대화 저널엔 269개의 글이 등록됐어요. 불안할 때도, 지칠 때도, 행복할 때도, 제 옆을 지킨 건 자기 대화였죠. 269개의 작은 숨결들이 모이자, 드디어 제 마음에도 순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동아줄을 꼭 쥐느라 쥐가 난 두 손을 보게 됐고요. 자기 대화는 반드시 손으로, 또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자기 대화 기록(2024.8.26.~2025.6.27.) / Day One 저널


천주교엔 화살 기도라는 특별한 기도 방식이 있어요. 화살 기도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간결한 말을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를 말해요. 이름 그대로 화살처럼 빠르게 전달되는 기도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그 순간, 하느님과 더 가까이 만나는 느낌이 들어요. 화살 기도처럼, 저는 요새 자신과 화살 대화를 하고 있어요. 감정을 자각하는 모든 순간, 화살 대화가 시작돼요. 자기 대화가 일상이 되었다고 할까요. 매 순간 자신과 만나고 있기에 대화를 위한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자기 대화는 중단된 게 아니라 더 깊숙이 연결된 셈이죠.


감정을 자각하는 모든 순간
자기 대화가 시작돼요. 일상이 되었죠.


지난 1년의 기록을 돌아보다, 정확히 1년 전에 작성한 글과 만났어요. 후배를 통해 처음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된 날이었어요. "선배님, 브런치스토리 해봐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 한 마디가 작고 어두운 제 방에 한 줄기 따사로운 햇빛을 선사했죠. 바로 작가라도 된 듯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글을 쓰다, 별안간 먹구름에 휩싸였어요. '누가 내 글을 보겠어. 후배야, 아무래도 네가 날 과대평가한 것 같아.' 그날 이후 브런치스토리는 기억에서 잊혔어요. 더 이상 저의 한계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정확히 7개월 후, 거짓말처럼 저는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습니다. 7개월 전과 달라진 건 하나뿐이었어요. 그동안 124번의 자기 대화가 제 안에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자기 대화는 조용히 제 한계의 민낯을 보여줬어요. 제 한계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었죠. 그리고 말해줬어요. 저의 세상은 제가 만드는 것이라고요. 덕분에 지금 저는,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고 있습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를 향한 감정 변화('24.8.3.→'25.3.26.→4.1.)


물론, 여전히 제 인생은 좌충우돌 그 자체예요. 어떤 날은 부정적 감정과 마주하고, 또 어떤 날은 세상의 모든 평화가 제 안에 깃든 듯 안도감에 미소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이젠 그 모든 모습이 저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거예요. 더는, 대면하는 게 두려워 감정을 깊숙한 곳으로 숨기지 않아요. 감정이 머리를 들고 올라오면 가차 없이 내리치던, 두더지 게이머는 이제 사라졌어요. 타격률이 높아진다고 인생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대신 감정에 자유를 달아주었죠. 본격적으로 감정에 날개를 달아준 건 <나를 만나는 출근길> 연재였어요. 제겐 큰 도전이자 행운이었죠. 여러분의 다양한 경험과 만나며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댓글에 답하며 처음 작가의 기분도 느껴봤고요. 사십 평생 가장 뿌듯한 순간들이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죠? 제목에서 예상하셨겠지만, 오늘이 마지막 출근길이거든요. 이별을 고하기 위해 수차례 로그인을 했지만, 오늘에서야 글을 완성 짓네요. 첫 연재를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욕심과 독자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신체적 한계에 대한 원망이 겹쳐지며, 단어 하나 쓰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출근길의 양상이 달라진 만큼, 출근길의 생생한 순간을 더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연재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나를 만나는 길은 출근길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또 다른 시작을 꿈꾸며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를 만나는 출근길>은 인생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저의 첫걸음이었어요. 제 인생 목표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건 아마도 감정을 일으키고 느끼는 주체가 자신일 때 가능한 이야기겠죠. 자기 대화를 만나기 전, 제 감정의 주인은 제가 아니었어요. 타인이었죠. 타인에 의해 생겨난 감정이 인생의 중심에서 저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타인을 앉히곤 했어요. 감정을 느끼는 대상(나)과 감정을 조정하는 대상(타인)의 불일치가 감정의 구속을 불러왔죠.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는 서기 2540년, 감정의 '자유'와 '구속'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져요. 바로 문명 세계와 야만 사회죠. 그리고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야만인 존이 등장해요. 존은 문명인의 피를 가졌지만, 야만 사회에서 길러졌어요. 연대감을 갈망하며 문명 세계를 찾았지만, 오히려 내적 갈등이 폭발하며 끝내 삶을 놓아버리게 되죠. 한때 저는 존과 저를 동일시했어요. 어두운 밤 홀로 절벽 끝자락에 앉아 계곡의 심연을 내려다보는 존을 꼭 안아주고 싶었죠. 처음엔 동정심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젠 알아요. 제가 안아주고 싶었던 대상은 존이 아닌 저였다는 걸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감정에 잠식되지는 않을까 늘 두려웠어요. 그래서 감정을 강하게 동여맨 채 자신을 구속했죠. 슬프게도, 저는 감정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특히, 부정적 감정일수록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 믿었죠. 참다 참다 폭발하는 감정은, 그래서 늘 존의 포효와 같았어요. 감정의 자유를 알지 못하니, 그 책임도 전혀 몰랐고요. 한 마디로 저는, 감정의 야만인이었죠.


감정에 조용히 머무르며 나를 이해할 때,
감정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 존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 은신처에 묶인 채 살고 있는 듯해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으면서요.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이도 있겠죠.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이가 있고, 문명인들처럼 자기 최면에 빠져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 이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제야 조금씩 그 진실에 다가가고 있어요. 타인에 의해 빚어진 감정일지라도, 감정의 주인이 자신임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요. 바로,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중요한 건, 감정 앞에서 절대 '얼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자유롭게 움직여야 해요. 감정에 조용히 머무르며 나를 깊이 이해할 때, 우린 감정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요.


2025.8.6. 출근길 / 오디오북


달라진 출·퇴근길, 요즘 코이케 류노스케의 《초역 부처의 말》 오디오북을 듣고 있어요. 천주교 신자지만, 부처님의 좋은 말씀은 삶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거든요. 어젠, 이 말씀이 마음을 두드렸어요. "어리석게도 뒤에서 자신을 조종하는 무의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어두운 마음에 조종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밑바닥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지 못합니다. 그 불편한 진실이 보기 싫어 자기 내면을 외면하는 데 전념합니다. (중략) 마음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배하는 의존증이나 혐오감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부수기 위해 자기 내면을 감시하고 마음 깊은 곳을 탐색하는 데 전념합니다(법구경 26)." 맞아요. 자기 대화는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보게 하고, 내면과 만나게 하는 메신저예요. 시간과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처럼 마음을 흔드는 경구와 마주한 순간, 그곳이 어디든 자기 대화의 장이 펼쳐질 수 있어요. 요즘 나를 만나는 출근길은 이 작은 차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여전히 매일 아침 저는, 저의 내면과 만나고 있고요.




찾아뵙지 못한 시간 동안,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가끔 여러분의 출근길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어요. 편안한 노래와 좋은 글,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로 마음을 포근히 채우고 계실 거라 믿었어요.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하니, 끝을 맺고 싶지 않다는 강한 미련이 제 안에서 아우성치는 듯해요. 이제야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 나네요.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 건 처음이었는데요. 부끄럽기도 했지만, 세상 어딘가에 제 미약한 신호를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 모든 출근길이 진심으로 소중했어요. 이 여정이 끝나더라도, 여러분과 함께 나를 만나는 새로운 길을 걷고 싶어요. 곧, 또 다른 연재로 찾아뵐게요. 그럼, 마지막으로 힘께 외쳐볼까요? '내가 찾고 있는 해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도 자신과 진심으로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셨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안녕.


나를 만나는, 마지막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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