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여덟 번째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오늘 아침, 어떤 마음으로 첫발을 디디셨나요? 저의 첫발은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실었어요. 오늘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거든요. 오랜만의 만남을 앞두고 단장 시간이 길어졌어요. 무려 7분이나 늦었죠. 거기에, 서둘러 환승한 버스가 하필이면 저속 운행 버스였어요. 어찌나 느리던지, 늦게 온다던 버스가 제가 타고 있던 거북이 버스를 앞지르더라고요. 순간 발을 동동 굴렀어요. 환승을 선택한 자신을 탓했죠. 하지만 이내 마음을 잡았어요.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걸로 충분한 거죠.


아침부터 설렘을 선사한 지인들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요. 제 숏컷을 보고 놀라진 않을까요. 그들과 대화는 또 얼마나 즐거울까요. 생각을 나누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아요. 나의 한 조각, 너의 한 조각이 모여 완전한 퍼즐을 이루죠. 한 번에 하나씩, 티키타카처럼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더 즐겁겠죠. 우리 안에도 각자의 퍼즐이 있어요. 저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퍼즐을 맞추고 있어요. 잠시 멈춰 선 적도 있지만, 다시 움직이며 저만의 퍼즐을 채워가고 있어요. 언젠가는 꽉 찬 퍼즐을 볼 수 있겠죠. 완성된 퍼즐 앞에서 환하게 브이(V)를 그리는 게, 제 꿈이에요.


나를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자각이죠.


퍼즐을 생각하니 조카가 떠올라요. 퍼즐의 대가거든요. 어젠 조카가 집에 오는 날이었는데, 제 컨디션 난조로 다음으로 미뤘어요. 충분히 쉰 덕분에 몸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서서히 무거워졌어요. 새언니가 느꼈을 서운함과 조카의 좌절감이 계속 뇌리에 남았거든요. 생각이 너무 많죠? 맞아요. 생각이 많아요. 예전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어요. 착각, 맞죠, 착각이었어요. 어쩌면 저는,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각인이 깊게 새겨진 사람인지도 몰라요. 오랜 시간 익숙해진 탓에, 각인이 또 하나의 피부가 된 거죠. 본래의 모습은 어느새 기억에서 희미해졌고요. 결국 무의식의 작용이 아닐까요? 무의식은 우리를 잘 알고 있잖아요. 이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을 거예요.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건,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스스로 새긴 생존의 흔적이죠. 어르신들께서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저 역시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오랜 삶의 궤적이 지금의 저를 빚어냈어요. 이런 저를 미워한다는 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겠죠. 쉽게 바꿀 수도 없고요.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예요. 이런 나를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뿐이에요.


며칠 전, 회사에서 후배와 GD 앨범을 이야기하다 니체의 사상으로 주제가 이어졌어요. 앨범명이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였거든요. 초인(超人,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존재)은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니체(독일의 철학가)의 또 다른 사상이에요. 좋아하는 가수가,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의 사상을 앨범에 녹였다는 게 좋더라고요. 친구를 소개하듯, 한참 흥분하며 초인에 관해 말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깜짝 놀랐어요. '어머, 나 이걸 설명할 수 있네?' 평소 철학을 좋아했지만, 설명할 자신은 없었거든요. 저는 주로 표면만 맴도는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까요. 개구리의 목표는 하나였어요. 우물을 뛰어넘는 초인은 못 되더라도 이 짧은 초록 다리로 물 끝에는 닿아보자, 였죠. 그런 제 다리 위로, 물방울 하나가 또르륵 흘러내린 거예요. 감격적인 순간이었죠. 철학은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제게 해주곤 했어요.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라고요. 철학을 접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제 번뇌는 마음의 오작동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고민이라는 걸요. 큰 위안이었어요. 자책이 서서히 옅어졌죠. 철학은, 섬세한 선배들에게 답을 찾는, 철저히 실용적인 학문이에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삶에 적용하도록 돕죠. 실리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철학을 좋아하는 저는, 누구보다 실리적인 사람이었어요.


그 무엇도 자신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해요.

이어폰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인생)’가 흐르고 있어요. 트럼펫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노래 한 곡으로 마음이 고요해졌어요. 쿵푸팬더의 포가 찾아 헤맨 이너피스(inner peace, 내면의 평화)가 제 안에도 찾아온 듯해요. 내면의 평화는 마음 관리가 핵심인 듯 보이지만, 신체 건강 없이는 완성될 수 없어요. 특히, 저처럼 불안증이 심한 이에겐 자율신경계(의식적 노력 없이 자동으로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계)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아, 평화도 잠시네요. 방금 인파에 휩쓸리며 휘청거렸어요. 내면의 평화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해요. 고개를 들어 차창을 바라봅니다. 제 자리에 졸음 인형이 서 있어요. 하품으로 속이 가득 찬 졸음 인형이에요. 눈을 깜빡여봅니다. 이젠 눈만 깜빡이는 껍데기로 변했어요. 다른 이들도 확인해 봅니다. 다들 지쳐있어요. 껍데기 2, 껍데기 3, 껍데기 4. 껍데기로 가득합니다. 이들을 보고 있으니, 어제 한 선배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어요. 전날 새벽까지 일했다고, 지친 얼굴로 말하더라고요. 순간, 선배의 얼굴에 과거 제 얼굴이 겹쳐졌어요. 무리한 일정과 쉼 없는 긴장 속에서, 제 마음도 결국 무너져 내렸거든요. 건강을 향한 강박적 집념도 그 후 시작되었고요. 그 순간엔 다들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모두가 자신을 슈퍼맨이라 믿죠. 하지만 슈퍼맨도 크립토나이트 앞에선 힘없이 무너지잖아요. 신체적 과부하는 결국 정신적 균형까지 흔들 수 있어요. 드라마 <대행사>에 나온 말처럼, 계산서는 반드시 청구되는 법이니까요.


이를 인식하듯,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 역시 근무일 축소(주 4.5일)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요. 물론, 물리적 단축도 중요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일하는 방식과 태도의 전환이에요.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근무 시간을 성과의 잣대로 여기곤 해요. 정시 퇴근은 나태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중요한 건, 내가 제대로 존재해야 일도 지속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무엇도 자신보다 우선될 수 없어요. 이는 오랜 시간 자신을 갈아 넣은 끝에 비로소 알게 된 진리예요. 늦게라도 이를 자각한 자신에게 고마울 뿐이에요.


기록은 깨어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예요.


어제, 자각의 힘을 깨달은 사건이 또 있었어요. 제가 자기 대화를 기반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저는 Day One 앱으로 자기 대화를 기록하고 후에 노션(Notion)으로 옮겨요. 바쁠 땐 몰아서 옮기게 되죠. 어젯밤, 지난 일주일치 데이터를 옮기다 그만 실수를 했어요. 클릭 한 번에, 어제 글이 통째로 날아가버렸거든요. 허겁지겁 되돌리기 버튼을 눌렀지만 소용없었어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죠. 힘겹게 건져 올린 보물을 다시 빠트린 해적처럼,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이 찾아왔어요. 순간, 제 안의 목소리가 물었어요. '그 내용이 뭐였는데?'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하나의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기억조차 못 하는데 그게 정말 보물이었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제야 기록이 가진 진짜 의미가 떠올랐어요. 바로 ‘자각’의 힘이었죠. 기록은 화려한 전시품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깨어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예요. 그 순간을 오롯이 느꼈다면, 그 느낌만으로 이미 목적은 달성된 거죠. 기록이 사라지더라도 나를 만난 느낌은 남으니까요.




자각은 자신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자신을 살피고, 생각과 감정을 바로잡는 과정이죠. 섬세한 관찰이 필요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에요. 생각과 감정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 하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자각 초심자를 위한 훌륭한 가이드예요. 그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죠. 대단한 담력의 소유자였어요. 만약 제게 타임머신을 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그의 마지막 순간으로 가고 싶어요. 매 순간 깨어 있었던 그의 마지막이 진심으로 궁금하거든요. 초연했겠죠, 편안했을 거고요. 하지만 저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냉철함보단 온기가 제게 어울리거든요. 따뜻한 자각이랄까요. 채근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거예요.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고, 대신 따뜻한 눈빛을 머금는 거죠. 나머지 인생은,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자각은 내면의 신호를 감지하는 섬세한 안테나이자, 그 신호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자기애의 첫걸음이에요. 여러분도, 따뜻한 자각의 첫걸음을 가볍게 떼시길 바랄게요. 오늘도,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해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8. 자각.png 나를 만나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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