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일곱 번째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여유로운 하루 시작하셨나요? 아쉽게도, 제 심장은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고 있어요. 방금 에스컬레이터를 빠르게 걸어 내려왔거든요. 개찰구에 카드를 대는 순간, 급행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멜로디가 울려 퍼졌어요. 마음은 다음 전철을 떠올렸지만, 다리는 이미 바람의 손자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로 빙의됐죠. 1루 슬라이딩 세이프! 문이 닫히기 전, 아슬아슬하게 전철에 올랐습니다. 와우, 아침부터 흥미진진하네요. 여전히 숨이 거칠어요. 잠시 숨을 고를게요. 경기를 복기하듯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아, 현관문이었어요. 현관문 앞에서 또 꾸물댔어요. 꾸물거림도 결국 습관이겠죠.


습관의 힘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적부터 그 힘을 느껴 왔어요. 아쉽게도, 부정적인 쪽으로요. 부정적인 습관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도무지 놓아주지 않죠. 얼마 전 그 힘과 맞닥뜨렸어요. 저는 금사빠(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성향)예요. 또 누군가에게 빠졌습니다. 이번엔 배우였어요. ‘그래서 그게 뭐?’ 맞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나쁜 습관이 아니죠. 삶의 활력소가 되니까요. 문제는 그 활력소가 금세 무기력의 늪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처음엔 행복의 나날을 보내요.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그가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다니죠. 그렇게 그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시소 맞은편에 자리한 그를 발견하게 돼요. 그의 막강한 매력은 시소 위의 저를 가볍게 들어 올립니다. 저는 한없이 작아지죠. 그러다 우연히 그의 눈빛을 열등감 없이 마주하는 여배우를 보게 돼요. 그러면, 시소 위 제 자리는 힘을 잃고 결국 허공에 떠버립니다. 머쓱해진 저는 한 마디 던져요. ‘에잇, 다음 생엔 나도 절세미인으로 태어나 그의 눈빛을 받아보고 말테다!' 장난처럼 던진 한 마디에, 그를 향한 호감이 자연스레 옅어집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듯 지내죠. 하지만 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적함이 찾아옵니다. 당시엔 분간하지 못해요. 미묘한 감정이거든요. 하지만 알게 되죠. 무엇이든 반복되면 알 수밖에 없어요. 이건 패턴이구나. 내가 또 패턴에 빠졌구나, 라고요.


나쁜 습관은
결국 자기 돌봄의 부재에서 시작돼요.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이 지쳐 보여요. 밤새 술과 함께 달린 사람 같아요. 왜 20대의 저를 보는 것 같죠. 저는 주량이 적어요.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고요. 하지만 20대엔 달랐어요. 주량은 레벨업을 위해 반드시 깨야 할 퀘스트(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나 과제) 같았죠. 정복 대상이었어요.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마시는 기호식품이, 제게는 하나의 과제였던 셈이죠. 마시지 못하는 술을 이겨보겠다고 꽤 오래 애썼어요. 자기 관리나 자기 돌봄의 개념은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또래들이 으레 마시니 함께 마셨고, 취기로 흥얼거리는 무리 속에서 행복을 느끼곤 했어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숙취 앞에서도 당당했어요. 더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었죠. 술이든, 정신력이든, 무엇이든지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어요. 저는 술과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요. 행운이었어요. 그 시간을 오롯이 저를 들여다보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쁜 습관의 패턴이 선명하게 두드러졌어요. 미묘한 감정의 변화로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된거죠. 섬세함은 감정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각각의 감정에 다른 이름표를 붙여줘요. 감정의 표면이 아닌 뿌리를 보게 하죠. ‘누군가를 좋아할 때, 왜 기분이 우울해질까?’ 섬세함은 이 질문에 답을 주었어요. 이상화된 인물 앞에서 못난이 가면을 꺼내 걸치는 진짜 심리를요. 이상화하고 싶었던 인물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저였던 거예요. 잠시, 마라토너를 예로 들어볼게요. 그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대회의 이름은 ‘이상화된 자기(Idealized-Self)’에요. 그는 아름다운 자기(self)를 그리며 앞만 보며 달리죠. 그러다 저 멀리 결승선을 지난 듯 보이는 선수들을 보게 돼요. 순간 미소가 지어집니다. 반갑거든요. 이미 성공한 듯한 기분에 휩싸여요. 행복하죠. 하지만 이내 여전히 뛰고 있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좌절감이 찾아와요.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좌절감은 마라토너를 강하게 흔듭니다. 달리는 목적마저 잊게 해요. 이제 달리기는 고통이에요. 흔들리는 마라토너를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달리는 행위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죠.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예요. 인생도 마라톤과 같지 않을까요. ‘언젠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자기 돌봄을 시작하는 거예요. 나쁜 습관은 결국 자기 돌봄의 부재에서 시작되거든요. 누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저를 미워하게 되는 못된 습관도, 자기 돌봄이 부족한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죠.


자신에 집중하는 순간,
그 공간은 저만의 화원으로 변신하죠.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을 잊고 살까요. 기술의 혜택으로 물리적 시간은 늘었지만, 심리적 시간은 오히려 줄었어요. 더 바빠졌죠. 나만의 시간이 없어요. 책을 읽으며 머릿속 영사기에 장면을 돌려보거나, 어릴 적 모습을 꺼내보는 일이 줄었죠. 나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시간은 꿈도 꾸지 못하고요. 한땐 저도 그랬어요. 통근 거리는 가까웠지만, 제 손엔 핸드폰과 리모컨만 쥐어져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하나의 프로그램에 집중하지도 못했어요. 개업식에 우두커니 서 있는 풍선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죠. 그러다 이 시간을 만나게 됐어요. 통근 4시간이 가져온 축복의 시간이었죠. 어쩌면 여러분 입술에, 이 질문이 맴돌 수 있어요. ‘그 인파 속에서 자기 돌봄이 가능한가요?’ 맞아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죠. 하지만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 제 머리 위로 종 모양의 유리 덮개(식물용 클로시 cloche)가 조용히 내려옵니다. 그리곤 온전히 저만의 화원으로 변신하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저만의 것이 돼요. 그렇게 마음 구석구석을 돌보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죠. 번뇌가 자리할 공간이 없어져요. 유익한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저라는 식물은 쑥쑥 자라나죠.


지난 주말, 아빠와 점심을 먹으며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빠가 그러셨어요. 나이가 들면 몸이 무겁고 아픈 게 기본이라고요, 신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죠. 40대 중반의 나이에 20대의 가벼움을 바라면 안 되겠죠.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어요. 자꾸 밑으로 내려가는 입꼬리예요. 나이가 들수록 내려가는 미운 입꼬리죠. 왜 자꾸 내려갈까요.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이 역시, 습관이겠네요. 이 에너지를 긍정의 방향으로 전환해야겠어요. 편안한 미소가 습관이 되도록 말이죠. 한 번 입꼬리를 올려볼까요. 자, 시작합니다.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요. 자연스러운걸요. 계속해도 되겠어요! 나쁜 습관이 꼭 나쁜 건 아니네요. 무엇이든 계속하면 습관이 되는 걸 알려줬으니까요. 그 힘도 알려줬고요.


감사 일기는 연고 같아요.
상처를 낫게 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죠.


요즘 감사 일기의 힘을 실감하고 있어요. 저의 새로운 습관이에요. 처음엔 장점 찾기로 시작했어요. 하루를 돌아보고 세 가지 칭찬을 자신에게 해주는 거였죠. 신났어요. 쌓여가는 장점들을 보며 흡족했죠. 그도 잠시, 곧 부담스러운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이게 장점인가, 자기 검열의 시간이 늘어갔죠. 그래서 결국 감사 일기로 전환했어요. 매일밤 감사한 순간을 찾을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가더라고요. 일거양득(一擧兩得)이죠. 두 개의 목표를 이뤘으니까요. 어제 감사 일기에는 늦지 않게 달려 준 O번 버스 기사님과 늦게까지 스타일을 유지하게 한 헤어크림, 그리고 아이폰의 숨은 기능을 알려준 유튜버 OOO이 있었어요. 감사 일기를 읽고 있으면, 온 우주가 저를 향해 좋은 기운을 발산하는 듯해요. 마치 상처 위에 부드럽게 발린 연고 같아요. 감사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고 하루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죠.


오늘도 O번 버스 안에서 오디오북을 들었어요. 《명상록》이었죠.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세상엔 이상한 게 하나도 없어요. 우주는 늘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니까요. 번뇌도 결국은 상황 자체가 아닌, 상황을 해석하는 마음의 문제일 뿐이고요.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요. 중요한 건, 그들로 인해 마음이 깨지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마음이에요. 일종의 마음 습관이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어요.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놀러 온 존재일 뿐이고요. 무엇을 더 집요하게 바래야 할까요. 한순간, 한순간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 이미 삶의 목적에 다가간 게 아닐까요.




습관은 자기 돌봄의 결정체예요. 자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보여주죠. 일상의 힘을 느끼게도 하고요. 습관으로 가득 찬 하루는 예측 가능해요. 불안을 덜어주죠. 정해놓은 임무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쾌감도 얻을 수 있어요. 습관은 하루를 온전히 제 편으로 만드는 강력한 마법이에요. 마법의 지팡이를 흔드는 저는, 자신을 위한 마법사인 셈이죠. 여러분 앞에선 열등감을 고백하지만, 실제로 저는 강한 사람인지도 몰라요. 힘들다 칭얼거리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고민하죠. 저의 자기 대화는 늘 바람과 기대로 마무리되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저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따뜻함이, 저의 가장 강력한 습관이 아닐까요. 그래서 다가올 시간이 두렵지 않아요. 습관의 힘을 믿으니까요.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드는 습관은 무엇인가요. 자신을 가득 채우고 싶은 습관이 있으신가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어때요? 저도 거기에서 시작했거든요. 오늘도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해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7. 습관.png 나를 만나는 세 가지 질문


keyword
이전 06화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