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아홉 번째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오늘은 온몸이 천근만근이에요. 요새 무기력이 슬그머니 저를 찾아왔거든요. 밤새 뒤척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어요. 찌뿌둥한 기분에 준비도 늦어졌고요. 꽤 묵직한 하루가 될 듯해요. 안 되겠어요. 몸을 풀어줘야겠어요. 눈을 감고 뭉친 어깨를 가볍게 돌려줍니다. 앞으로 세 번, 뒤로 세 번, 지금 이 칸은 저만의 작은 요가원이에요. 눈만 감으면, 전철은 어느 공간으로든 저를 인도하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를 자신에게 건네는 거예요. 아, 한결 가벼워졌어요. 몸도 알고 있겠죠.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자신을 위한 조율이라는 걸요.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대화를 이어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건넬 때마다 마음의 무게도 줄어들고 있어요. 자기 대화의 힘을 실감하며 오늘 하루도 가볍게 시작해 봅니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조율하는 것이에요.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와 점심을 함께했어요. 제 조카의 언어 구사력이 화제였죠. 아홉 살 조카는 저와 막힘없이 대화를 나눌 만큼 다양한 표현을 쓰거든요. 놀란 친구는 감탄과 함께, 행여 조카가 또래들을 시시하게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더라고요. ‘시시함’.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요새 저의 감정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었거든요. 맞아요. 시시해요. 인간의 가치를 잊은 사회가 시시하고, 이 안에서 잘났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시시하고, 그들의 대화가 시시할 만큼 가벼워요. 가장 시시한 건,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었어요. 신기하죠? 시시함이 무력감으로 전환되는 이 상황이요. 두 감정은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필연의 관계예요. 모두 삶의 가치를 찾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서 비롯되거든요. 욕구가 커지면 내 모습이 시시해지고, 무력감 역시 커져요. 마치 갯벌에 한 발이 빠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리죠. 갯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고 있을 때, 양귀자 작가의 《모순》 속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맞아요. 살다 보면 서서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가끔은 무기력한 상태를 유지하며 시시한 나를 견뎌 낼 필요도 있는 거겠죠. 다만, 저는 이 문장에서 단어 하나를 바꿔 말하고 싶어요. 인생은 살아가면서 '조율'하는 것이다, 라고요. 나를 일으키기 위해선, 탐구의 단계에서 조율의 단계로 넘어가야 하죠. 내면의 조율사는 절대 자신을 놓지 않으니까요. 어떻게든 이어나가려고 애쓰죠.


조율을 위해선 현재 상태를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무력감의 직접적 원인을 찾아보는 거예요. 한동안 저는 저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맸어요. 우주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인간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는 참 어려웠어요. 더구나, 비혼의 삶은 때때로 목표 없이 떠도는 느낌을 주기도 해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자책도 들었죠. 한참 소침해 있을 때, 노래 한 소절이 떠올랐어요. 가사가 바뀐 채로요. 나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이죠. 그래요. 저의 존재 가치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면, 저는 이미 빛나고 있었던 거예요.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고,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는 순간순간, 저의 존재는 완성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자신을 향한 사랑은 또 어떻고요. 저라는 존재의 의미는 충분히 차고도 넘치죠. 돌고 돌아, 결국 같은 결론에 닿았어요. 무력감의 원인도, 해결의 열쇠도 모두 제 안에 있었죠. 이를 깨닫자, 조율사의 역할에 몰입할 자신이 생겼어요. 제 안의 다양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맞추는 조율사라면, 섬세한 제가 제격이니까요.


조율은 자기 보호가 기본이에요.


그렇다면, 무력감이 발동하는 순간으로 가볼까요. 무력감은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질 때 발동해요. 무력감은 혼자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에요. 관계 안에서 좌절이 반복될 때, 서서히 올라오는 반응성 감정(상대에게 반응해 생겨나는 감정)이에요. 관계성이 촘촘한 사회일수록, 무력감은 더 잦게,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에게 익숙한 집단 하나를 상상해 볼까요. 가정일 수도, 회사일 수도, 동호회일 수도 있어요. 그곳에서 여러분은, 늘 묵묵히 해오던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상황을 자주 보셨을 거예요. 어쩌면, 그 대상이었을 수도 있고요. 물론, 집단의 입장에선 효과적인 방법이죠. 일이 빠르게 마무리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이 결국 그 집단을 병들게 한다는 거예요. 해내던 사람도 하지 않을 이유를 찾게 되거든요.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아요. 처음엔 '왜 나만 이러고 있지?' 하는 억울함이 고개를 들어요. 그 억울함이 오래 머물면, 그 아래에서 기다리던 분노가 서서히 스며 나오죠. 분노는 결국 눌러두었던 슬픔까지 건드리고요. 그렇게 감정은 서로 얽히고 얽혀 돌고 돌아요. 그러다 어느 날, 툭하고 느닷없이 눈물이 터지는 거예요. 무력감이 일상이 되는 순간인 거죠.

안 되겠어요. 무력감의 강력한 힘을 약하게 만들어야겠어요. 우리, 무력감과 평화롭게 헤어져 볼까요. 내면의 조율사를 부를 시간이에요. 이번 조율의 목표는 하나예요. 좋은 사람이 아닌, 단단한 사람으로의 전환이죠. 단단한 사람은, 사람들과 부드럽게 지내되, 자신의 이익과 감정의 한계는 분명히 아는 사람이에요. 결정적일 땐 자기 판단을 지키는 사람이죠. '자신의 이익'이라는 말에, 방금 제 안의 초자아(내면의 도덕적 목소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어요. ‘그건 어설픈 변명이야. 늘 최선을 다해야지!’ 이번엔, 초자아 말을 듣지 않을래요. 조율은 자기 보호를 기본으로 하니까요.


자기 대화는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조율의 길잡이죠.

어제 퇴근길, 한 후배가 제 표정이 예전보다 편해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다만, 마음속 얽힌 실타래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을 뿐이에요. 모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근엄한 목소리 덕분이었죠. 제게 두 가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거든요. 하나는, 마음속 번뇌는 외부가 아닌, 외부를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거였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었죠. 번뇌에 빠진 이 순간조차 곧 지나가니까요. 얽혀있던 실타래에겐 희소식이었죠. 풀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답은 저였어요. 결국 모든 건 제가 해결할 수 있었죠. 마음을 수시로 읽고 불편을 해결하되,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지 않는 거예요. 마음의 변화를 이끈 건 저였으니까요.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길을 터주는 것도 저 자신이어야 해요. 마치 연을 날리듯,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천천히 연줄을 살피는 거죠. 그리고 힘껏 당기는 거예요. 연이 높게 날아갈 수 있도록요.

물론 가끔은, 힘을 너무 강하게 준 나머지 연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어요. 얼마 전, 기록의 재미를 잃게 한 슬럼프가 찾아왔거든요. 그중에서도, 진언왕조실록이 슬럼프의 중심이었어요. 진언왕조실록은 김경일 교수의 《마음의 지혜》에서 영감을 받아 적용한 기록 방식이었어요. 김경일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들며, 자신만의 사건을 기록하고 각 사건에 평점을 매긴 뒤, 그 평균으로 하루를 평가하라고 말해요. 평균이 0점만 넘어도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의 하루는 나쁜 일 '하나' 말고도 다채로운 '일들' 투성이니까요. 문제는, 저의 기록 루틴도 이미 충분히 다채로웠다는 점이에요. 여기에 세세하게 기록하는 방식까지 더해지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관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반면에, 저는 진언왕조실록의 대상이자 기록자, 성찰자였죠. 1인 3역이라니, 고달플 수밖에요. 하루의 의미를 찾으려던 노력이 하루를 더 버겁게 만들고 있었어요. 주객전도였죠. 그래서 하루 회고를 5-level 회고(story-feelings-decisions-insights-actions)로 단일화했어요. 결국, 기록에도 조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는 모두 자기 대화 덕분이에요. 자기 대화를 하다 보면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 눈에 쏙쏙 들어오거든요. 연줄이 방향과 당기는 힘을 조율하듯, 자기 대화도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조율의 길잡이가 되죠.




눈을 들어 차창 너머를 바라봅니다.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어요.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분주히 움직이는 우리들이 대견합니다. 삶은 이런 노력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을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의 신호를 보내줄 거라 믿어요. 저는 방금 그 신호를 감지했어요. 자연스레 삶을 조율하는 저 자신이 긍정의 신호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떤 조율사를 꿈꾸고 있나요. 자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읽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힘의 강약을 조절하는, 섬세한 조율사라면 좋겠죠. 처음엔 제멋대로 움직이는 연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두 번째 연줄을 잡을 땐 두려움이 사라지고, 조금씩 감이 잡힐 거예요. 바람을 타며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연을 상상해 보세요. 곧 만나게 될 여러분의 모습이니까요.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9.조율.png 나를 만나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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