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행운의 날인가 봐요. 전철에 탑승한 지 1분도 안 돼 자리에 앉았어요. 행운의 날 맞죠? 와우!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어요. 배시시 웃다 보니, 어젯밤 따뜻했던 순간으로 마음이 흐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조카와 함께 잤거든요. 품 안에 조카가 색색 얕은 숨소리를 뱉고 있었어요. 녀석에게도 고된 하루였나 봐요. 잠든 조카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여줬어요. 잠결에도 사랑받고 있단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회사에서도 저는 유명한 조카 바보예요. 하루는, 한 후배가 부러움을 머금은 채 말했어요. ‘조카가 어떤 어른으로 커갈지 궁금해요. 사랑을 충만하게 받은 아이는 마음의 결핍 없이 자랄 수 있겠죠?’ 글쎄요. 사랑이 결핍을 완전히 막을 순 없겠지만, 고통을 덜어주는 힘은 키워주지 않을까요. 그 힘을 믿고 싶어요. 조카가 그 힘 안에서 결핍을 덜 두려워하며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고요.


틈을 메우는 과정에서
자신을 향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죠.


결핍은 결여의 사실보다, 결여를 인식하는 감정에서 비롯돼요.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죠. 기대한 만큼 충족되지 않으면 우린 결핍을 느끼게 되니까요. 누구도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죠. 물론 결핍이 늘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때로는 매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오래전 ‘밀리의 서재’에서 시나리오 작성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작가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비범한 능력을 지녔지만, 모두가 공감할 법한 약점(결핍)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야 연민이 더해지며 그의 성장을 응원하게 되는 거라고요. 지난 10월, 오랜 공백을 깬 GD가 유퀴즈에 등장했어요. 미세한 손 떨림에서 그의 불안과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완벽해 보였던 인간에게 보이는 안쓰러운 틈, 사람들은 그 틈에 집중했죠. 순간, 그에게 쏟아질 국민적 응원을 직감했어요. 우리에겐 모두 채워지지 않는 틈이 있죠. 아마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틈으로 가득한 자기 자신을 봤을 거예요. 그를 응원함으로써 실제로는 자신을 응원하고 싶었던 거고요.


GD의 복귀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이 있었어요. 본인이 등장한 유퀴즈 방송을 보며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이었죠. 실은, 방송을 보는 내내 GD가 걱정됐거든요. 약해진 본인을 마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는 웃고 있었어요.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었죠. 그때 알았어요. 그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자신의 틈을 사랑하고 보듬는 모습에 존경심이 일었어요. 머리끝이 쭈뼛 설만큼 강렬한 울림이었죠. 순간, 일본의 킨츠기(金継ぎ) 공법이 떠올랐어요.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를 금이나 은, 옻으로 이어서 아름답게 복원하는 공법이에요. 킨츠기는 틈을 존중하고 그 틈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안아요. 오히려 틈을 메우는 과정에서 작품을 향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죠. 그러자 저의 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허점투성이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의 작품인 셈이었죠. 그래서였을까요. GD의 복귀가 먼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의 멋진 날갯짓을 응원하게 됐어요. 그의 날갯짓에, 저 역시 날고 싶은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틈이 많다는 게 한편으론 위로가 됐어요.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거니까요.


며칠 전 마음에 태풍이 일었어요. 예전의 저라면, 어김없이 세상과 작별을 논했을 거예요. 자책에 지쳐, 저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 칭얼거렸겠죠.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어요. 무언가 달랐죠. 시작은 분노의 폭발이었어요. 감정적으로 소화하기 힘든 일이 연달아 이어졌거든요. 당황과 무력감이 한데 뒤엉켜, 어느새 분노로 번졌어요. 결국 저도 모르게 모니터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말았어요. 맞아요. 기분이 태도가 된 순간이었어요. 누가 봐도 화난 얼굴로 분주히 움직였어요. 그 순간엔 화가 난 자신밖에 보이지 않았거든요. 감정에 휩쓸려 저를 놓치고 만 거죠. 마음이 가라앉자, 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씩씩거리며 온몸에 열기를 뿜어내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어요. 부끄러웠어요. 할 수 있다면, 땅으로 꺼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앉아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죠. 맞아요, 평소라면 이제 자책이 등장할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어요. ‘난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배울 게 이렇게나 많다니. 하나씩 틈을 발견해 메우다 보면, 결국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까?’ 갑자기 저의 완성된 모습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안도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있고 싶어 졌어요. 틈이 많다는 게 한편으론 큰 위로처럼 느껴졌어요.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거니까요. 멋지게 변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고요. 이 여행을 끝낼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날이었죠.


고개를 들어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깁니다. 앞줄에 앉은 여자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단순히 메시지를 보내는 느낌이 아닌 듯해요. 저처럼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죠? 핸드폰에 글을 작성하는 그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의미로 오타쿠(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집착하는 사람)를 떠올렸어요. 자신은 전철에서 글을 쓰는 낭만적인 작가로 포장하더니, 타인에겐 정반대의 이미지를 씌우고 있던 거죠. 세상에, 자기중심적인 해석에 말문이 막혔어요. 내로남불, 그 자체잖아요. 순간 저라는 사람이 다시 보였어요. 맞아요. 저 역시 모순덩어리였어요. 그런데 저만 그런 모습일까요? 내로남불이 처음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했던 날이 떠올라요. 제가 알던 그 줄임말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오죽하면 이 단어가 공식 용어가 되었을까요. 모두 마음속에 내로남불을 품고 있기 때문이겠죠. 누군가는 그런 자신을 인식하고, 누군가는 인식하지 못할 뿐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일까요? 그래도 저는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그게 조금은 위안이 돼요.


죽음이 틈이 아닌,
여행의 마침표가 되는 순간이기를 바라죠.


요즘 《면도날》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어요. 어제 한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어요.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인물이었죠. 유럽 사교계를 동경한 그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어요. 삶의 가치를 명성에 두고, 그 탑을 쌓는 데 삶의 전부를 걸었죠. 탐욕과 허세로 똘똘 뭉쳤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거든요. 마지막까지 그는 허세로 점철되었어요. 그의 유서엔, 존경하는 선조의 것이라 우기던 무도복(무도회 복장)을 입관식에 입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든요. 지금껏 소설에서 본 죽음 중 가장 무감각한 죽음이었어요. 이대로 끝인가, 싶을 만큼요. 소회도 남기지 못할 만큼 가벼운 터치에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어쩌면 죽음 자체가 그런 게 아닐까요? 우리는, 사라지면 끝나버리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니까요. 숨 하나에 온 생애를 맡기고 있죠. 어떻게 보면, 우리의 가장 큰 틈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거든요. 과거엔 두려움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여행의 마무리가 떠올라요. 저만의 세상 안에서 오롯이 행복을 느끼다, 죽음을 맞이할 때 신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거예요. 편안하게 놀다 갑니다, 라고요. 제가 꿈꾸는 세상은 크지 않아요. 결이 맞는 존재들이 곳곳에 있고요. 소박한 순간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죠. 그렇게 마음껏 숨을 쉬다 여행 끝자락에, 그 숨을 가볍게 신에게 반납하는 거예요. 그것이 제가 꿈꾸는 삶의 완성이에요. 죽음이 틈이 아닌, 여행의 마침표가 되는 순간이기를 바라죠.




이어폰 너머로 빌리 홀리데이(1915-1959, 미국 재즈가수)의 I’m a fool to want you가 흐르고 있어요. 나른하고 거친 그녀의 목소리가 느슨한 속도로 고막을 울리네요. 이 한 곡이 저를 재즈바로 이끌어요. 이런 상상은 저를 숨 쉬게 해요. 풍부한 상상력에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눈만 감으면 저는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거든요. 무대에서 열창 중인 빌리에겐 미안하지만, 그녀는 제 최애는 아니에요. 따뜻한 목소리의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 미국 재즈가수)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빌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다소 거북했어요. 그녀의 거친 목소리가 제 불안한 기억을 건드리는 듯했거든요. 피하고 싶었죠. 알고 보니, 그녀의 삶은 목소리보다 더 거칠고 곳곳에 갈라진 틈뿐이었어요. 그토록 절절하게 전해지던 슬픔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를 재즈의 세계로 인도한 《재즈의 계절》 김민주 작가는, 불완전한 목소리에 담긴 그녀의 아름다움을 강조해요. 그녀는 3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로 언급될 만큼, 재즈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그녀는 결국 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어요. 그럼에도,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틈이 그녀를 더 높이 날게 해 줬겠죠?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틈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 틈을 가지고 있죠. 문제는 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예요. 자신의 틈을 작품의 한 요소로서 바라볼 수 있다면, 틈은 어떻게 변할까요? 다시 한번, 일본의 킨츠기를 떠올려 봅니다. 저의 수많은 틈이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채워지며 하나의 완성품으로 탄생하는 순간, 틈은 더 이상 틈이 아니에요. 진언眞言이라는 세상을 더욱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튼튼한 결이 되죠. 여러분의 틈 역시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운 결이 될 수 있어요. 이제 그 틈을 메울 시간입니다.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10. 틈.png 나를 만나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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