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열한 번째 출근길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날씨는 어떤가요? 제 마음엔 구름이 잔뜩 끼었어요. 피로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거든요. 눈이 감기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 이럴 땐 관찰의 시간이 좋겠죠.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앞에 앉은 여자도, 옆에 서 있는 남자도 핸드폰을 보며 미소 짓고 있어요. 얼굴에 온갖 피로를 머금은 채 말이죠.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올라옵니다. 전철 안 강한 불빛 때문일까요. 마음속 어둠이 짙게 드러나고 있어요. 여러분도 이런 순간을 맞이한 적 있으신가요?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세요? 저는 머릿속으로 바퀴를 떠올려요. 중심축인 저를 기준으로 수많은 바큇살이 뻗어있는 알록달록한 바퀴를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에요. 각각의 바큇살은 관계, 감정, 일처럼 삶의 중요한 요소로 연결돼요. 그리곤 바큇살을 자세히 살펴보며 길이를 조정합니다. 긴장된 바큇살은 조금 풀어주고, 늘어진 바큇살은 조금 조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레 바퀴의 균형이 맞춰지며, 마음도 균형을 찾아갑니다.


바큇살 길이를 늘이고 줄이면서
관계의 거리를 조정해요.


여러분의 인생 바퀴를 그려본다면, 어느 바큇살이 가장 가까이 있을까요? 아마도 관계의 바큇살이지 않을까요? 저 역시 이 바큇살을 가장 빈번하게 조정하고 있거든요. 얼마 전엔 오래된 바큇살을 완전히 놓아버리기까지 했어요. 10년 넘게 함께 한 사람이었죠. 그런 관계도 놓아버리는 건 한 순간이더라고요. 오랜 시간 의지한 만큼, 마음에 닿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제 진심을 알고 있는 몇 안 돠는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녀 역시 타인과 같은 잣대로 저를 판단하고 있었죠. 당시 아파 누워있던 저는 일어날 힘마저 잃어버렸어요. 그리곤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죠. 그녀 역시 저를 찾지 않았고요. 10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어요. 끈끈한 관계 역시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어요.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함께 한 시간보다 중요한 건, 관계의 진실성이니까요. 지금은, 그녀의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아요. 어쩌면, 저도 모르게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었는 지도 몰라요. 그녀와 연결된 바큇살을 조금씩 늘이면서요. 관계 단절 후, 신기하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린 직후의 개운함이랄까요. 다행히, 지금은 편안한 거리가 만들어 낸 고요 속에 머물고 있어요.


어제는 한 후배가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제게 조언을 구했지만, 저 역시 완벽한 해답을 알고 있지는 않았죠. 다만, 서서히 방향은 잡아가는 듯해요. 가끔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방향을 틀고 싶진 않아요. 후배가 물었어요.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견디냐고요. 답은 간단했어요. 저에게 도움이 되면, 그냥 견디는 거예요. 저의 선택인 거죠.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고, 상대의 태도가 달라질까요.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 그를 스트레스의 중심에 놓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일 수 있고요. 저는 현명한 사람도, 대인배도 아니에요. 다만, 저에게 도움 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이를 선택하려고 할 뿐이죠. 이것이 제 삶의 제1철칙이거든요.


1:2:7의 법칙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보면,
답이 보일 거예요.


여러분, 혹시 1:2:7 법칙을 알고 계세요?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영상에서 이 법칙을 접하게 됐어요.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님의 영상이었어요. 그는 인간관계를 1:2:7 법칙으로 설명해요. 세상에 열 명이 있다면, 한 명은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두 명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를 싫어할 거고요. 나머지 일곱 명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집중해야 할까요? 당연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겠죠.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나를 싫어하는 두 사람에게 온 신경을 쓰며 살아가요. 마음속 자리를 모두 그들에게 넘겨주는 거죠. 그때 이 법칙을 적용해 보면 좋아요. 나를 미워하는 대상을 조용히 그 두 명의 영역에 놓아두는 거예요. 대신, 소중한 에너지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거죠. 관계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잖아요. 이보다 더 명확한 관계의 원칙이 또 있을까요?


맞은편 여자가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지고 있어요. 자신에게 흡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네요. 어젯밤 조카도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저 역시 걸을 때 슬쩍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훔쳐봐요. 모두 나르시시즘이겠죠? 나르시시즘이 없었다면 세상을 버텨낼 힘도 없었을 거예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신이 인간을 보살피기 위해 엄마라는 존재를 인간에게 보내줬다고요. 나르시시즘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르시시즘은 신이 인간을 위해 인간의 중심에 심어 놓은 사랑의 씨앗 같아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힘이죠. 이때, 중요한 건, 타인의 중심에도 나르시시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예요. 나르시시즘은 자신과의 거리도, 타인과의 거리도 건강하게 유지해 주죠.


진정한 나르시시즘은
타인과의 거리도 건강하게 해 줘요.

저는 상당히 예민한 편이에요. 제 몸에는 수십 개의 안테나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요. 타인보다 받아들이는 자극도 많고, 감정 소모도 큰 편이죠. 그래서, 이 안테나를 모두 뽑고 싶냐고요? 아니요. 민감한 안테나는 끊임없이 제게 말을 걸어오거든요.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함께 고민해 주죠. 이제는 저의 영혼과 신체가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저의 섬세함과 공감 능력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저희 회사 인트라넷엔 동료를 칭찬하는 릴레이 코너가 있어요. 얼마 전, 제 이름이 그곳에 등장했어요. 10번째 등장이었죠. 그동안은 부끄럽기만 했는데 이번엔 아니었어요. 100개 가까운 댓글에 일일이 답하며 감사한 순간을 즐겼죠. 동료들에게 저는, 환한 미소가 예쁘고 목소리는 싱그러우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동료들의 호감 표현에도 부끄럽지 않았던 건, 이미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당당해졌기 때문이겠죠? 나, 잘 살고 있구나, 확인받는 느낌도 들었고요. 이건 모두 자신과 절친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물론 자신과 거리가 늘 가까울 수는 없어요. 때론 마음이 대화를 거부할 때가 있거든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요. 그럴 땐 가만히 마음을 지켜봐요. 거리를 두는 거예요. 짜증 내는 자신을, 펑펑 우는 자신을 그저 지켜보는 거죠. 과거의 저는 그런 저를 가르치기에 바빴어요. 감정을 돌보기보단 성숙함이라는 명분으로 감정들을 가두려 했죠. 그게 나잇값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요. 마음이 신호를 보내면, 그때 천천히 대화를 시작하죠. 밀착과 거리 두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있어요.


건강한 거리는
모든 관계를 지켜주는 힘이에요.

일과의 거리도 마찬가지예요. 가까이 당기기만 하면 그 긴장함을 감당할 수 없어요. 조직 속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죠. 팀원과 팀장, 실장은 각각의 역할과 책임이 있어요. 구성원 간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과거엔 몰랐어요. 제 선에서 완벽한 문서를 만들고 싶었어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 문서는 늘 수십 개의 버전이 있었어요. 이런 저에게 상사의 지적은 치명타였어요. 보고서는 바로 저였으니까요. 일과의 거리가 전혀 없었죠. 협력의 개념조차 없었고요. 이제는 완벽한 보고서가 없다는 걸 알아요. 업무 사이사이 상사에게 보고하며 업무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죠. 그리고 제 역할이 끝나면 상사의 시간을 기다려요. 상사의 취향에 따라 보고서는 수정되고요. 이제는 모두의 역할을 인정하고, 일을 일로서 받아들이고 있어요. 업무에서도, 드디어 건강한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어요. 이런 제 모습이 때론 여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건 연차의 힘일까요? 아니면 경험이 빚어낸 지혜일까요?




건강한 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관계를 지켜주는 힘이 있어요. 자신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더욱 가까워질 용기를 갖게 하죠. 여러분은 자신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여러분의 인생 바퀴를 그려보시면 어떨까요? 상황에 따라 바큇살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연습도 해보시고요. 이건 단순한 상상이 아닐 거예요. 여러분을 지키는 건강한 이미지 트레이닝이 될 수 있죠. 이때,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바로, 중심축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거예요. 말씀드린 대로, 저의 모든 바큇살은 저를 중심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었죠. 제 중심축인 건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정신력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4시간 통근은 결국 극심한 피로로 저를 몰아넣었어요. 돌아보니, 몸 곳곳에서 주황색 경고등이 켜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브런치스토리와도 잠시 거리를 두기로 했어요. 늘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에요. 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때까지 여러분의 내면을 더욱 아름답게 키워나가시길 바랄게요. 오늘도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나를 만나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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