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출근길 : 관계
마음을 향해 귀 기울이셨나요?
이제 마음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입니다.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도 용산역 급행 전철 안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다섯 번째 칸, 두 번째 문이 열리면 늘 익숙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인파에 따라 방향이 변할 법도 한데, 매번 같은 자리에 서 있어요. 같은 자리는 묘한 안도감을 주거든요. 오늘도 어제와 같을 것이라는, 안정감 말이죠. 앉아 있는 사람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여요. 출근길을 함께 하는 반가운 사람들입니다. 혼자 내적 친밀감을 두텁게 쌓아가고 있어요. 당신, 오늘도 일찍 나왔군요. 우리 즐거운 하루 보내요, 라고요.
이렇게 나를 친구 삼아 살아갈 수 있겠구나, 확신이 들었어요.
어젯밤 지난주에 작성한 자기 대화를 읽었어요. 새롭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어요. 글쓰기는 의식적인 행동이잖아요. 그런데 의식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생각의 흐름이 빨리 전환되는 게 신선했어요. 죽이 맞는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제가 변하고, 자연스레 그 주제를 따라가요. 생각을 나누고, 때에 따라 결론을 내리기도 해요. 그리곤 다른 주제로 넘어가죠. 친구와 나누는 대화, 딱 그 흐름이었어요. ‘자기 대화’라는 표현이 정확하구나, 싶었죠. 이렇게 나를 친구 삼아 살아갈 수 있겠구나, 확신이 들었어요. 오늘로 <나를 만나는 출근길>이 세 번째 이야기를 맞이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사전 속에도, 자기 대화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저는 단연코 ‘관계’를 꼽을 거예요. 관계는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단어죠. 우선 나와의 관계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제 브런치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타인과 맺는 관계도 있어요. 어떤 분은 이 관계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요. 마지막은 자연 혹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방금 눈을 한 번 깜빡이셨나요?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으신 거죠? 맞아요. 자연과 맺고 있는, 끈끈한 관계를 말씀드렸어요. 저 역시 세 번째 관계는 고려해 본 적이 없었어요. 종교 서적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나와 너를 이해하는데, 세 번째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제 천천히 이야기 나눠볼까요.
전철에 올라타면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정수리가 저를 맞이해요.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어요. 저도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고요. 인파가 몰릴 땐, 어쩔 수 없이 옆 사람이 보는 화면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대체로 화려한 영상에 몰입해 있어요. 저 역시 유튜브 앱을 습관처럼 켜곤 했습니다. 종일 수고한 자신을 위한 보상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됐어요. 혼자 있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일종의 분리불안이 아닐까, 하고요. 누군가 옆에 없으면 불안한 거죠. 내 안의 목소리가 말을 걸어올까 봐요. 마음의 공백을 메워 줄 대상을 부랴부랴 찾아다니는 거예요. 유튜브 앱에 빠지기 전엔, 전화 통화가 그 대상이었어요. 특별한 용건은 없었어요. 습관이었죠. 나를 받아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어요. 물론 통화 중간에 끊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전화한 자신을 속으로 탓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을 멈추지 못했어요. 지금은 통근 시간이 두 배로 늘었지만, 누군가를 찾아다니지 않아요. 오롯이 저를 만나고 있거든요.
긍정의 모습도 부정의 모습도,
모두 저라는 걸 알게 됐어요.
혹시 소크라테스 좋아하시나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과 나누던 대화를 저 자신과 나누고 있거든요.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질문을 던지죠. 저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합니다. 자신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랄까요. 질문이 쌓일수록 저의 데이터베이스는 단단하게 채워지고 있어요. 저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미워하기도 해요. 직장생활에 회한을 느끼다가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죠. 여전히 양가감정이 불쑥불쑥 등장합니다. 그럴 때면 이렇게 되뇌곤 해요. 나도 전형적인 인간이구나, 하고요. 긍정의 모습도 부정의 모습도, 모두 저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을 알고 있다는 확신만큼 든든한 버팀목이 또 있을까요. 혼자 있는 시간이, 그래서 두렵지 않아 졌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가장 신뢰하고 있거든요.
방금 전철이 신도림역을 출발했어요. 전철 안이 갑자기 한산해졌네요. 무리를 지어 내린 사람들은 계단에서 또 하나의 큰 무리를 이루며 내려가요. 저 인파를 보고 있으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뼛속까지 이해됩니다. 무리에 섞여 살지만 우린 늘 외로움을 느끼죠. 다시 유튜브 영상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영상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들어요? 질문을 다시 할게요. 어떤 마음이 들 때, 유튜브 앱에 손이 가나요? 내면의 목소리도 물론 무섭지만, 연결감을 향한 갈망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요.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 말이에요. 이는 우리를 고립감에서 구원하기도 하죠. 생각과 취향을 반영하는 영상만 좇다 보면, 절친을 만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사회적 동물로서 우린, 본능적으로 관계를 원할 수밖에 없어요. 다만, 타인이 어려울 뿐이죠. 그래서 힘들고요.
삶은 가로수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은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자유롭죠. 그래서 다른 생물체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삶은 가로수와 비슷한 것 같아요. 한땐 가로수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가로수는 어떤 나무가 옆에 올지 예상하지 못하잖아요. 큰 나무가 와서 햇빛을 빼앗을 수도 있고, 심한 매연도 참아내야 해요. 폭우와 번개에도 자리를 피하지 못하죠. 그런데 왜 가로수가 되고 싶었냐고요?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모습이 성숙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생을 부정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저와 달리, 가로수는 평화로워 보였어요. 지금은 가로수가 부럽지 않아요. 저 역시 같은 삶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것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걸 이젠 알아요. 옆에 자리한 나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리를 옮기거나 뽑아낼 수 없죠. 그 나무가 햇빛을 막고 있다면, 방법은 하나예요.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는 겁니다. 햇빛을 향할 수 있게 줄기를 옆으로 트는 것처럼요. 인간 역시 타인을 온전히 바꾸지 못해요. 바꿀 수 없죠. 그간 제 번뇌는, 옆 사람을 뿌리 채 뽑아 원하는 모습으로 바꾼 후 다시 심어놓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됐어요.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죠. 그 욕심에 상처받은 건 오롯이 저 자신이었어요. 타인과 상황을 탓하느라 시간을 의미 없이 버렸으니까요. 이제 저는 알아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됐어요. 소중한 에너지는 할 수 있는 일에만 투입하죠. 결국은 건강한 거리가 전제되어야 해요.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니까요. 스스로 변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면, 타인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그 순간, 마음의 돌덩이 하나가 스르르 내려앉을 거예요.
지금의 모습이 비뚤어 보여도,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자연의 일부인 셈이죠.
그렇다면, 자연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오래전에 한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두 사람이 억새밭을 헤매고 있었어요.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무질서하게 자라난 억새 틈에서 넋을 잃고 말았죠. 그때 갑자기 카메라 앵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곤 억새밭 전체를 조망해요. 위에서 바라본 억새밭은 어떤 모습일까요? 놀랍게도 질서 정연했어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어요.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말이요. 지금 모습이 비뚤어 보여도, 이 역시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자연의 일부인 셈이죠. 유약한 나도, 부족한 너도, 자연의 일부로서 이해할 수 있고요. 무기력한 결론처럼 들리시나요? 글쎄요.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삶만큼 힘이 넘치는 결론이 또 있을까요?
저는 이제 모든 관계에서 힘을 빼고 있습니다. 애쓰지 않아요. 힘을 빼니, 힘이 생기더군요. 유일한 목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에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이를 제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거죠. 할 수 있는 영역에선 제가 선택권을 쥐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죠. 온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끌려 다니던 삶에서, 끌고 가는 삶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관계’라는 단어를 새로이 정의하는 데 있었어요. 오늘의 정의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는 또 다른 정의로 펼쳐질 수 있겠죠. 여러분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관계라는 단어와 마주해 보는 게 어떨까요. 여러분만의 관계를 정의해 보세요. 오늘도,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해답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