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출근길

다섯 번째 출근길 : 호기심

by 진언

안녕하세요. 진언眞言입니다. 5월의 첫날 인사드려요. 봄비가 싱그러운 5월의 문을 열어주고 있어요. 상쾌하게 시작하셨나요. 4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던, 어느 기상학자의 예보는 다행히 빗나갔어요. 대신 지난 4월은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했죠. 출근길엔 겨울과 마주했고, 근무 중엔 여름을, 퇴근길엔 가을을 느꼈어요. 하루에 4계절을 만나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한 방송에서 그러더군요.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요. 이젠 적응의 문제라고 말이죠.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작은 일이라도 시간의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어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그 안에서 적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게 중요하죠.


자기 호기심은 자신의 라이프가드예요.


우리 인생에도 각자의 적응 과제가 있어요. 제게 통근은 여전히 적응 과제예요. 통근 4시간을 버텨온 지 이제 10개월이 됐어요. 그간 자기 대화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덕분에 브런치스토리로도 연결되었죠. 하지만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아니겠어요. 행복에 버금가는 시련도 닥쳐왔어요.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거죠. 주말에 가까스로 올라온 체력은 평일이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요. 오랜 시간 서 있었더니 무릎 통증도 발생했고요. 일상이 점점 마비되었죠. 문제는, 약해지는 체력이 정신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극한의 상황에 적응할 방법은 있겠죠. 저만의 빅데이터를 보며 최적의 코스를 설계할 시점인 듯해요. 저의 보물, 자기 대화를 펼칠 시간이죠. 자기 대화는 자신을 향한 호기심의 백과사전이에요. 사전을 펼쳐 쭉 훑어봅니다. 찾아야 할 포인트는 세 가지예요. 어떤 말로 자기 대화를 시작하는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 편안함을 느끼는지예요. 슬슬, 감이 오는 것 같아요. 이번 설계의 목표는 단 하나, 에너지 사용 최소화입니다.


첫 번째, 루틴의 재정비입니다. 인정할게요. 제가 욕심이 많았어요. 습관의 개수를 줄여야겠어요. 사이사이 숨 쉴 여백이 없네요. 오전엔 10개, 저녁엔 7개의 습관이 줄줄 이어지고 있거든요. 통근으로 인한 시간 부족을 이렇게라도 메우고 싶었나 봐요. 2/3만 유지해야겠어요. 운동시간도 줄여보고요. 무엇보다, 목표 달성률을 80%로 조정해야겠어요. 완벽이 아닌, 완성을 향한 삶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두 번째, 경계 설정이에요. 확실한 선 긋기죠. 업무 시간이 종료되면, 저의 사회생활도 종료되도록요. 핸드폰이 강한 진동을 내뱉으며 곤혹스럽게 해도, 되도록 받지 않으려고요. 업무도, 조직 속 관계도 퇴근과 함께 문을 닫아야죠. 시간 외 근무는 사절이에요. 퇴근 이후는 본격적인 이완의 시간이거든요. 세 번째, 호불호 표명이에요. 저는 커피와 밀가루를 먹지 못해요. 먹지 못하니 아쉬울 리 없지만, 이를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러다 보니 책상 위엔 커피와 과자가 한가득이에요. 이건 단적인 예일 뿐이죠.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마음속 찌꺼기는 커져가요. 이를 정리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점점 더 커지고요. 이젠, 좋아하는 걸 확실히 말해야겠어요. 저의 에너지 지킴이는 저 자신이니까요. 드디어, 최적의 코스를 설계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자기 대화가 도움이 되었네요. 자기 호기심은 자신을 살리는 가드(guard) 같아요. 강력한 라이프 가드(life guard)죠.


자기 덕질의 원동력은 호기심이에요.


한창 노션(Notion)에 빠졌을 때였어요. 친구에게 노션을 자랑하고 있었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자기 덕질’에 빠진 것 같다고요. 깜짝 놀랐어요. 정확한 표현이었거든요. 덕질은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즐거운 몰입이니까요. 덕질의 원동력은, 맞아요, 샘솟는 호기심이에요. 누군가 좋아지면, 계속 궁금하고 자꾸 시선이 그에게 향하죠. 지금 제가 그렇거든요. 자신이 궁금하고, 알고 싶고, 그래서 자꾸 내면으로 시선이 향해요.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워지는 덕질도 있어요. 하지만 자기 덕질은 뿌듯한 덕질이에요. 나라는 존재가, 나만의 언어로 정의되는 순간을 곧 맞이하게 될 테니까요. 멈출 수 없는 덕질이죠. 삶의 목표와 연관되는 중요한 덕질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호기심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죠.


‘호기심’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아이들이죠.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요. 한때 제 조카도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어요. 당연한 나머지 의식조차 못 하는 일을 아이에게 설명하기란 버거운 일이었죠. 당연한 일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또 있어요. 바로 철학자들이에요. 그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를 특별하게 바라보죠.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철학적 사유의 여정을 ‘급행열차(익스프레스)’와 연결하고 있어요. 나를 만나는 출근길과 어울리지 않나요? 여러분과 저도,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중이니까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세계의 철학자 역시 70억 명이라고요. 맞아요. 자신과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끓어오르는 우리들은 모두 철학자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학자들은, 앞서 걸어간 길을 우리에게 안내하는 선배들이겠죠.


시도에는 100%의 노력을 가하되,
결과에는 0%의 노력을 들여야 하죠.


선배 철학자들의 사유에 빠지다 보면,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독창적인 사유 체계가 때론 상충하는 듯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럴 땐 문장들을 계속 읽고 속으로 되뇌어요. 그러면,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들어요.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죠.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로요. 의미 있는 삶이란 나의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기쁨을 찾는 삶을 말해요. 나란 존재는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스토아학파의 숙명론도, 세계는 나의 행동으로 한 겹씩 쌓인다는 실존주의자의 능동성도 결국 같은 맥락이에요. 그들이 정의하는 세계의 범주가 다를 뿐이죠. 전자는 자연을, 후자는 주관적 세계를 말하니까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세계’로 향합니다. ‘삶의 의미(Why)’가 아닌, ‘의미 있는 삶(How)’으로의 전환이죠.


그럼, 도대체 자연이란 무엇일까요. 자연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연에 포함돼요. 우리 조카도 걸음마를 떼자, 자연의 영역으로 옮겨갔어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죠. 여기에서 질문 하나 드릴게요. 그렇다면, 나는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아니에요. 나 역시 자연의 ‘일부’니까요. ‘전부’이기를 바라는 순간 큰 좌절을 맛보게 되죠. 궁수를 떠올려볼게요. 활시위를 당기기 전까진 궁수의 노력이 중요해요. 바람과 습도를 체크하고, 힘을 조절하죠. 하지만 활을 떠난 시위는 더 이상 궁수의 몫이 아니에요. 인도 경전에 이런 말이 있대요. 시도에는 100%의 노력을 가하되, 결과에는 0%의 노력을 들이라고요. 나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유연함이 필요해요.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대한 시위를 잡아당겨요. 과녁 앞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이니까요. 그러나 시위가 활을 떠나면, 느슨하게 긴장을 풀어줍니다. 긴장과 이완의 순환으로 이루어진 자율신경계는, 삶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와도 같아요. 그 리듬을 타며 살아갈 필요가 있죠.


호기심을 따라
내 안의 다채로운 색을 만나보세요.


소풍 나온 아이는, 긴장과 이완의 흐름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걸 발견하면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죠. 관심이 사라지면 다른 즐길 거리로 발길을 옮겨요. 자유롭죠. 집착하지 않아요. 긴장과 이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아이의 하루에 후회가 있을까요. 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 손에 쥔 떡을 놓지 못한 채 다른 떡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긴장하고 있죠. 어깨가 바짝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눈빛에서 호기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삶이라는 소풍을 나온 건, 아이나 어른이나 같아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유지하며 나를 돌볼 필요가 있죠.




자기 돌봄의 핵심은 호기심이에요. 적응의 순간, 변화의 순간, 그 시작은 호기심이죠. 호기심이 없으면, 어떤 힘도 실을 수 없거든요. 자신을 향한 호기심은 그 폭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요. 물론 깊이 들여다보면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있어요. 단순한 발견에 머물 때도 있고, 성장의 발판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중요한 건, 그럼에도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 겁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들어가 보는 거죠. 들어가서 다채로움과 마주하는 거예요. 심연(深淵, 깊은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는 다채로운 색의 감정들과 만나보세요. 그 다채로움에 흠뻑 취해보세요. 그 색들로 나만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보는 거예요. 유일무이한 모자이크가 완성되는 순간, 여러분의 고유한 이야기가 시작될 겁니다.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찾고 있는 해답은, 언제나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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