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가난한 애들이나 받는 거 아니에요?

가난의 단상2

by 더선생

고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았다.

지금에서도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집이 다자녀여서', '그때 좀 가난해서'와 같이 사족을 붙일 정도로 사실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내게는 조금 창피한 일이었다.

그때 나와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내가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은 학생 모두에게 지원금 신청서를 주셨다. 그리고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아도 모두가 그 종이를 꼭 가져오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이전에 그것과 관해 선생님께 따로 찾아가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이미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걸 제출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두가 그 종이를 가져와 제출하도록 한 것은 어쩌면 나를 향한 배려였으리라.


종이를 받은 나는 열심히 작성했고, 다음 날 학교에 가져갔다.

아침 조례 때 선생님은 신청서를 모두 꺼내라고 말씀하셨고 맨 뒤의 친구가 앞으로 그것을 걷어오라고 하셨다.

다른 친구들의 종이는 글씨가 없어 하얀데, 나의 종이만 까만 글씨가 빼곡하게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차이를 친구들이 발견할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내 자리는 두 번째 분단 맨 앞자리.

맨 뒤의 친구에게 내 종이가 가장 늦게 걷히기 때문에

내 종이 속 까만 글씨를 볼 사람이 맨 뒤의 친구와 담임 선생님밖에 없다는 건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신청서를 걷은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신청서들을 흘깃 확인하셨다.

그리고 안 가져온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모두가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는데 왜 안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 아이가 대답했다.

"그런 건 가난한 아이나 받는 거 아니에요?"




말은 활과 같아서 나를 향할 때면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때의 난 그 말이 나를 향한 활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인두와 같이 내 마음을 지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지원서를 신청한 것이 우리 집 형편이 안 좋아서지 '가난'해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때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형편이 안 좋은 것과 가난한 것이 같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나의 가난이.

빨개진 귀를 보고 친구들이 눈치챌까봐 몸을 웅크렸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셨다. 그건 나를 향한 위로였으리라.

그 뒤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귀를 감추느라 바빴기에.

그러나 아마 내가 가난을 잊는 날이 오더라도 그 선생님만큼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쉬는 시간에 나를 따로 불러 괜한 소리를 핑계로 내 손을 잡아주시던 그 손의 온기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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