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여름, 혼자 떠났던 첫 번째 내일로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의 첫여름방학 때 첫 번째 내일로를 떠났다. 한국 아닌 외국에서 돌아다니면서 자랐고, 그래서 국내여행을 많이 못 해봤던 나는 대학교 전부터 혼자서 국내여행을 많이 다녔다. 가깝게는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부터 서울, 그리고 근교 여행도 많이 다녔고, 골목길들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더 멀리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 선택했던 것은 바로 내일로! 내일로 기차여행은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것. 나이 제한이 끝나기 전, 가능한 많이 가보고 싶었다. 5일권이나 7일권으로 기차표를 발급받으면, 그 기간 안에 무제한으로 기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전라도의 군산, 광주, 보성, 순천, 그리고 마지막 전주까지 혼자 여행을 떠났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수원시까지,
수원시에서 전라북도 군산시까지.
기차는 입석이기 때문에 이렇게 통로나 복도에 주로 앉아서 갔다. 그래서 편하게 갈려면 휴대용 방석을 추천한다! 그리고 나는 내 배낭에 국내여행 기념으로 태극기랑 장기기증 서약서를 달아서 돌아다녔다.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군산.
작지만 돌아다니기에 재밌는 곳이었다.
이렇게 골목길도 구경하고, 벽화도 구경했다. 내가 좋아했던 무지개 벽화. 아직도 있으려나.
한국의 역사에도 관심이 있어서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어떻게 보존하는지가 궁금해서 찾아간 곳들도 많았다.
그리고 군산 기찻길 양 옆으로 나있는 작은 길도 예뻤고, 가을이 오기 전 마지막 여름 햇살로 말려야 할 고추들과 호박들도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군산에서 우연히 또 혼자 내일로 여행을 온 여행자를 만났다. 같이 일정 맞을 때 기차도 타고, 사진도 찍고.
광주만의 역사 이야기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고.
이전에 전라남도 진안군에 있는 대안학교를 잠깐 다녔을 때 필드트립으로 갔다 왔었던 5.18 기념관도 다시 찾아가 봤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았던 양림동.
양림동의 작은 골목들, 그리고 벽에 그려진 지도도 예뻤다.
양림동에 한 무인카페 다형다방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혼자 글 쓰고 사진 보는 시간이 좋았다 나는.
아쉽게도 이제는 사라지는 공간이다.
문화적 도시재생 프로젝트였다는 것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5년이라는 시간 안에 나의 내일로 여행 때 방문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
문화적 도시재생, 문화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에도 관심이 많은 나.
나는 정말 공간 이야기가 좋다.
올해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프로젝트형의 공간이야기도 정말 재밌는 것 같다.
제일 좋았던 광주, 안녕!
세 번째 날은 보성으로 떠났다.
차를 좋아하는 나는, 녹차밭으로.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잎 같지만, 사실은 녹찻잎. 이걸 말리면 녹차가 되는 거겠지. 그렇게 뜨거운 물 한 주전가 컵에 따라 마시면, 향긋한 여름날 갔었던 보성의 녹차밭이 생각난다.
혼자 간 여행이지만, 길거리에 있는 아무에게나 사진을 부탁해서 사진 기록을 남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나무간판으로 나무이름도 걸려있고.
그리고 나는 미력 옹기라는 공간을 찾아갔다.
이 곳은 옹기를 만드는 곳.
한국의 옹기가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지, 그리고 구워지기 전을 기다리는 옹기들을 볼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걸까.
이렇게 논 밭도 많이 지나고.
이전에 그 대안학교를 다녔을 때 손모내기도 하고, 피도 뽑고, 낫으로 추수도 하고. 그 쌀로 밥해먹고.
나는 논에 대해서 조금 안다.
그리고 보성을 오래 걸어 다녔다.
보성 녹차 마라톤대회 코스 길을.
그 길의 5KM 반환지점에서, 내가 달린 마라톤들도 생각났고.
스무 살의 반이 지난 나의 모습도 생각해보고.
넷째 날은 순천으로 이동했다.
낙안읍성이란 곳을 먼저 갔는데, 그림 같이 멈춰있는 듯한 옛날 모습과 둘러싸인 산들. 정말 멋졌다.
해바라기 밭도 있고.
예전 여행 이야기를 한참 후에나 끄적여보는 것을 누구는 이제야 하는 게으름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나는 여행을 갔다 오는 것과, 그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여행 갔다 온 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정말 무엇을 느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은 늦은 나의 여행 보따리들.
나는 장기기증 서약자다.
그래서 사랑의 장기기증 대학생 홍보대사 SAVE 9 3기로도 활동했던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장기기증 서약자!
그래서 순천의 있는 순천만정원과 순천만은 입장료가 모두 무료였다.
내가 열정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는 것 같다.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리고 생각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오래오래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놓쳤다고 생각하는 인연이 너무 아쉽다면, 다시 찾아도 괜찮다.
다시 인연을 이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장기기증 서약이란 주제는 한국에서는 망설이게 되는 주제.
나의 가치관으로는 죽으면 사라질 몸을 누군가를 살리 수 있다면 다 나눠주고 가고 싶었을 뿐.
장기기증 서약할 수 있는 나이가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많아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서 내 핸드폰 속, 장기기증 어플로 서약서를 볼 수 있고, 장기기증 서약카드도 있다.
스무 살이라는 건, 그냥 그 나이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예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스물두 살 밖에 안 됐는데 더 옛날 같은 느낌은 뭘까.
한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항상 새롭다. 남들에게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고, 남들에게 익숙했던 것들은 나에게는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내 또래 아이들이 평범하게 학교를 가고, 교복을 입고, 급식을 먹을 때, 나는 도시락을 싸갔고, 입고 싶은 옷을 아무거나 입었고, 학교를 맨날 옮겨 다녔다. 남들이 국내여행을 먼저 하고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나는 그제야 국내를 조금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 더 오래 살았어도, 나의 '한국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나는 여행을 했다.
순천만을 보러 전망대까지도 올라가 보고.
내려오는 길에 여행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봤는데, 그분들 인터뷰도 봤었는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팔로잉도 했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의 첫 번째 내일로의 마지막 여정지는, 전주.
전주를 찍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전주는 생각보다 가장 아쉬웠던 곳. 나는 그냥 골목길들과 한옥을 걸어다녔다.
그렇게, 스무 살의 여름방학은 이렇게 끝났었다.
군산, 광주, 보성, 순천, 전주. 이렇게 전라도를 여행하며.
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좋으니깐 여행 작가라도 돼볼까.
아니다, 이미 그런 것 같다.
작지만 저의 공간에서
수많은 지구별 여행자들 중, 저의 여행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에필로그,
그렇게 나는 또 내일로를 떠나게 됐는데..
지금은: 여행 중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의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Breakfast: http://blog.naver.com/gkdmsinj
Lunch: https://www.facebook.com/headshave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