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고 더 특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여행 중'의 여행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여행이야기들 나누고 있기 때문에 글의 시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대학교 2학년이 되고 개강을 하자마자 여느 대학생들처럼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학기가 시작한지 어느덧 반이 지나가고 있었을 때 나는 아무데나 그냥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1박2일 즉흥여행을 혼자 훌쩍! 떠났다.
부산까지 기차로 가면 더 편하겠지만, 우리집에서 기차를 타려면 수원역까지 가야했고, 첫 차로 떠난다고 해도 수원역까지 가는 버스나 지하철이 아직 운행을 안했기에 나는 버스로 부산을 갔다왔다. 집에서 미리 먹을 과일 간식거리를 싸고 새벽 6시 반에 버스를 타러 나섰다. 내가 부산으로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집에서 제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몇 시간을 달려서 버스는 부산터미널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바로 연결된 부산의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몇번 한 후, 동백역으로 갔다. 동백섬이지만 다 걸어갈 수 있게 이어져있었다. 동백섬에는 누리마을 APEC 하우스가 있는데, 이 곳에서 제13차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회의장이기도 해서, 이 장소 이름의 뜻은 '세계 정상들이 모여 APEC 회의를 하는 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정치외교학과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이런 국제회의가 열렸던 장소들을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에만 머리를 파묻기에는 너무 재미었으니깐! 이 회의장에 앉아서 각국 정상들과 회의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 슬쩍 자리에 앉아보고 싶었다.
누리마을 APEC 하우스에서 해안 산책로를 쭉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바로 앞에 해운대가 보인다. 부산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바다였기 때문에! 바로 운동화랑 양말을 벗어 던지고 그냥 반바지를 입은 채 모래사장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간식으로 싸온 오렌지 한 개를 꺼내 맛있게 먹었다. 바다에서 하루 종일 그냥 멍 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챙겨온 책 한 권. '미움받을 용기'를 꺼내서 바닷가에서 하루종일 책을 다 읽어버렸다. 여행이 끝나면 책을 빌렸던 도서관에 가서 반납하고 새 책을 빌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심리학과 사회학이 재밌어서 찾아보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형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지만, 생각은 오래 할 수 있는 그런 책.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 문득 영화의 전당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동백역으로 걸어가서 센텀시티역까지 또 걸어갔다. 지하철 몇 정거장을 쭉 걸어오면 보이는 영화의 전당! 야외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아쉽게도 없었지만 저 좌석에 앉아서 아무것도 없는 스크린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으로는 광안리 바닷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또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는 여행! 그래서 신발도 딱 운동화 한 켤레. 광안리 해안까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광안대교는 도보로 건널 수 없는 대교라서 아쉬웠지만!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은 후, 해가 다 질때까지 바닷가에서 놀다가 해가 다 지고 깜깜해 질 때쯤 광안대교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길었던 광안대교! 밤에 보는 광안대교는 무척 예뻤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산책하는 모녀, 산책하는 커플들, 산책하는 강아지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유모차 끄는 부부들, 시끌벅적한 학생들, 그리고 여행객 한 명, 바로 나.
광안리 해안 산책로를 쭉 따라 이번에는 경성대 부경대 역까지 걸어갔다. 왜냐하면 내가 하룻밤 잘 집이 있는 곳이니깐! 미리 예약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갔다. 부산에서의 여행이 나의 첫 번째 에어비앤비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 할 때마다 현지인과 함께하거나,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집의 호스트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통화 한 번은 했고, 대신 호스트의 어머니가 맞이해주셨다. 호스트의 어머니가 밀크티도 만들어 주시고, 코코넛 칩도 간식으로 주셨다. 집은 평범한 가정집으로 딱 내가 원했던 집이였다. 집을 에어비앤비로 이용할 수 있게 한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 하셨다. 다음 날 나가기 전 인사를 드리고 감사하다는 쪽지도 남기고 왔다.
그 동안 여행하면서 호텔, 게스트 하우스, 찜질방, 친구 집, 어머니의 친구의 집, 캠핑카, 텐트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을 이용해 봤지만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의 집을 이용해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것 같다. 게다가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사람의 집이라니! 낯선 사람의 집을 이용해 보는 건 정말 재밌는 것 같다. 그리고 그냥 내가 가보고 싶은 곳 느끼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것이 난 좋다. 부산여행을 하면서 수첩에 그때그때 마다 느꼈던 나의 감정을 기록해갔다. 한 편의 여행일기처럼.
에어비앤비 집에서 단잠을 자고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새벽 일찍 일어난 이유는 바로 새벽의 바다 공기를 가득 마시고 싶어서였다. 새벽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니깐 조금 추울 줄 알았는데, 웬걸! 날씨가 전 날보다 더 따뜻했다. 구름 한 점 없었던 그날의 부산. 새벽에 해안도로를 따라 쭉 산책을 하고 싶어서 나는 호스트 집에서 이기대 산책로까지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 바다를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이기대 산책로가 보였다. 원래는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러닝을 하고 싶었지만, 러닝 하기에는 조금 터프한 길이어서 그냥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가볍게 트레킹을 하기 위해 나의 베낭을 맡겨두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갔다가 아무도 맡겨주지 않았는데 마침 아래에 있던 분포 고등학교에서 맡아주신다고 해서 서 감사했다.
이기대 산책로를 왔다갔다 다 걷가보니깐 몇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다시 베낭을 찾아온 후, 또 내가 가보고 싶었던 부산 UN기념공원까지 걸어갔다. 이 날도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1950년에 일어났던 한국전쟁 이후 전생 전사자들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한 곳이다. 그리고 1955년에 한국 국회가 기념공원의 토지를 유엔에게 영구 기증했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뒤, 유엔은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합군을 파병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 사례는 유엔군이라는 이름하에 세계 분쟁지역에 파병한 유일한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총 21개국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참전했다. 그중 전투를 지원한 국가는 총 16개국이며, 의료를 지원한 국가는 총 5개국이다. 그리고 그중 내가 교환학생으로 가는 스웨덴도 있었다. 이렇게 3년이라는 한국전쟁의 기간 동안 총 40,896명의 유엔군 희생자가 있었다. 11개국의 2,300구의 유해가 여기 묻혀있다. 역시나 정치외교학과 학생 다운 여행이었던 걸까.
그렇게 잠깐 추모를 하고 근처 대연역까지 걸어갔다.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대연역에서 센텀시티역까지 타고 갔다. 센텀시티역에는 전날 가본 영화의 전당이 있다. 전날 갔을 때는 내가 보고 싶었던 제나 할러웨이 사진전이 하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날 아쉬운 마음에 다시 가서 표를 현장에서 바로 끊었다. 부산 여행의 마지막을 이렇게 제나 할러웨이의 사진전으로.
부산에 도착해서 가고 싶은 곳들을 정했고, 가다가 마음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여행을 했고, 거의 다 걸어 다녔기 때문에 따로 교통비는 들지 않았다. 너무 걸어 다녔나? 가끔 여행을 온 건지, 국토대장정을 온 건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이번 짧은 여행은 무척 재밌었다. 평소 내가 보내는 일상과 큰 차이가 없어서 그런지 너무나도 편했던 여행이었으니깐. 평소에도 많이 걸어 다니고, 동네 뒷산에도 종종 올라가 보고,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시간도 갖고, 사진전이나 전시회도 관람하러 가기 때문에 그저 나의 일상을 부산에게 빌려주었다.
아녜스 르디그의 소설,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줄리는 삶을 믿었고
나도 내 삶을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운 것들, 실수 한 것들, 그 실수를 통해서 또 한 번 배운 것들을 믿는다. 내가 여행하면서 그리고 27개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나의 삶을 믿는다.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니다. 나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특별하고, 그 특별한 인생에, 여행이라는 것을 하나 더 더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일상을 여행지에게 빌려주는 것이 좋다.
지금은: 여행 중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의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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