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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샙피디 Jul 02. 2022

서르니즘의 나날

가만히 멈추어 생각한 시간들 00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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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졸면서 머리로 낚시질을 하는 출근길. 웅~웅~웅~ 진동이 나를 깨운다. 웬 모르는 아이디가 좋아요 테러를 하길래 또 무슨 화장품 써보고 광고해달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폰 화면의 팝업을 눌러 들어가 보니 프로필 사진이 익숙하다. 회사 디자이너 언니였다.  



12:35  

매장에 도착해서 오픈하고 있는데 회사 디자이너 언니랑 위키*가 하나둘 모여든다. 매장 오픈 시간은 그들에게 식사 후 농땡이 타임이다. 이전 회사에서 사무실 옆에 캠핑용품 대여점을 차렸고, 나는 대표님의 삼고초려 끝에 실업급여와 안녕하고 대여점 점장(?)이 되어 이전 회사 식구들 옆에서 잠시 매장 운영이라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사무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우리 매장을 찾아온다. 


내가 퇴사할 때쯤, 퇴사 준비로 타투를 배운다던 디자이너 언니는 타투이스트 활동명으로 쓸 ‘이립’이라는 이름을 샀다고 자랑을 한다. 35만 원을 주고 샀는데 마음에 든다고. 그러자 위키가 옆에서 거든다. 


서른도 이립이라고 하잖아요.  

 

- 맞아요. 


그런데 한자가 다르죠.  

 

- 응 그렇다더라고? 나의 이립은 ‘하늘과 땅 사이에 서다’라는 뜻이야~ 


나 지금 이립이네.. 생각했다.  



21:40

퇴근 후 애인과 뚝섬(한강공원)에서 간지러운 밤공기랑 맥주를 마시면서 이립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라. 운을 뗐다.   


아 맞다, 우리 회사 디자이너 언니가~ ‘이립’이라는 이름을 샀대!   


- 이립?   


응 예쁘지? 중성적이고 흔하지도 않고. 근데 서른을 뜻하는 말도 이립이래~ 이립이라는 이름으로 서른을 사는 느낌은 어떨까? 근데 왜 서른이 이립이지?   


- 공자가 쓴 말인데, 생각이 확실히 선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   


(초록창에 검색하며) 아~ 그렇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래. 도덕까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혼자 선다는 말 같네. 나도 이제 전세 계약하고 나가서 살다 보면 진정 이립의 시간을 살게 되는 걸까?    


- 자기는 지학이야   


지학은 뭐야?    


- 15세 ㅋㅋㅋㅋ   


의씡?!   


-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호기심 많고 배우는 거 좋아하는 천진난만 우당탕탕 15세 ㅋㅋㅋㅋ   


흠 그렇지 나 배우는 거 좋아하지. 그럼 나는 지학에서 이립으로 가는 중인가 보다! ㅋㅋㅋ  



01:32   

나는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고, 아빠는 이순을 지나 환갑에 도착했고, 엄마는 지천명에서 환갑을 향해 가고 있다. 이순은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고, 지천명은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기엔 아무래도 너무 거창하고 내 눈에 우리 모두는 아직 젊고 귀엽기만 하다. 


요즘 누군가 나이를 물을 때 생각해보는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어 기분 탓인지, 전세 집을 계약하고 이직 준비하며 홀로서기를 준비 중이라서 그런지, 조금만 무리해도 몸 여기저기가 하나씩 망가져서 그런지. 매일 마주치는 엄마 아빠부터 나보다 어려 보이는 도수치료 선생님, 내 또래로 보이는 마을버스 기사님까지 오며 가며 스치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다들 그렇게 대단해 보이고 새삼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대학원 선배이자 전우, 얇고 넓은 지식으로 많은 이들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귀에서 피가 나게도 하는 수빈을 나는 위키수빈이라고 부른다. (가만히 멈추어 생각한 시간들 00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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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홀로 서는 훈련하는 요즘입니다.

나는 온실 속 화초는 아니지. 선을 그었던 날들이 우습고

어찌 보니 온실 속 화초도 그 나름대로 안온하고 감사한 날들이었구나 싶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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