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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Dec 06. 2018

적절한 말이 적절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How the Right Words Help Us to Feel the

당신은 지금 십대 시절 살았던 동네에 와 있다. 열여섯 살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집 앞을 지나간다. 한때 그녀의 방 창문이었던 곳을 올려다본다. 밖에서 보면 모든 게 그대로인 것만 같지만, 사실 지금 그 집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은퇴했고, 그녀도 결혼해 다른 도시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당신은 가슴을 에는 향수를 느낀다. 그녀가 그립다기보다는 한때 당신이 가졌던 것, 그 시절 두 사람의 모습, 주변의 모든 상황이 더 그립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당신은 그 감정을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의 안부전화다. 당신은 지금 마음을 채운 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쩔쩔매다가 몇 번 시도해본 끝에 그냥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린다. 

만약 당신이 포르투갈어를 할 수 있다면 괴로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포르투갈어에는 이 상황에 곧장 쓸 수 있는 이상적인 단어가 있다. 당신은 친구에게 지금 Saudade를 겪고 있다고만 말하면 된다. 다른 언어로 직역이 불가능한 그 단어는 연애든 어린 시절의 집이든 우정이든,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운 것을 향한 달콤쌉싸름하고 울적한 갈망을 의미한다. 상실에 대한 고통과 그 사랑스러움이 한때는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는 기쁨이 뒤섞인 감정이다. 


언어와 감정의 관계라는 이 근본적인 문제는 오랫동안 철학의 논쟁 대상이었다. 어떤 사상가들은 감정은 단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아기들은 자신의 감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부터 사물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철학자들은 감정의 인식을 도와줄 단어가 없다면 어떤 감정들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진실은 종종 흥미로운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 언어가 감정을 완전하게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정을 분명하고 아름답게 심화하고 명확하게 해준다. 적절한 말은 우리 자신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언어라는 대리인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삶에 담긴 내용물들을 더욱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우리 언어에는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없는 감정을 정확히 가리키는 다른 언어의 단어를 만날 때면 확실히 두드러진다. 그럴 때면 우리는 좋은 단어가 어떤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지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터키어에 HÜZÜN이라는 단어는 주로 부패한 정치 지도자의 어리석음과 화려한 겉치레 때문에 정치적인 상황이 쇠퇴할 것 같을 때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을 가리킨다. 터키인의 영혼에서 펼쳐지는 슬픔의 깊이를 가리키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있다니, 얼마나 유용한가. 


아니면, 조금 더 유쾌한 예로 노르웨이에는 FORELSKET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사랑이 막 시작될 때, 이토록 완벽한 사람이 어디를 헤매다 우리 삶에 갑자기 뛰어들었는지, 이토록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좋아하게 되다니, 믿을 수 없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두 손을 굳게 맞잡았을 때, 나는 압도적인 FORELSKET를 느꼈어요.”

그러나 우리 마음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은 단지 외국어의 마법적인 단어 몇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위대한 문학 역시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좋은’ 시나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자기소외와 오해를 줄여주고 우리 자신에게 돌아가게 해준다. 평생 독서를 한 뒤 우리는 우리가 느낀 거의 모든 것을 가리킬 수 있는 딱 맞는 단어와 문장을 골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순간은 덧없고 아스라하게 지나갔을지라도 그 순간을 가리키는 언어는 남는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칭송했던 바로 이런 재능을 말한다. 


시인의 두 눈이 세련된 광기로 구르면서

하늘에서 땅, 땅에서 하늘까지 쳐다보고,

상상력이 알려지지 않았던 형상들을 

구체화함에 따라 시인의 펜촉은

그것들을 형체 있는 것으로 바꾸면서

무형물들에게 거주지와 이름을 준다오.


( <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최종철 옮김)에서 발췌했음을 알립니다.)


문학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갇혀 있던 폐쇄된 다이빙 벨에서 풀려날 수 있다. 적절한 말은 우리의 고립을 깨뜨린다. 적절한 말은 사랑의 매개체이자 연결관이다. 


번역: 이주혜

편집: 인생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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