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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Jul 16. 2019

직업 선택의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올까

The Creative Itch

많은 이들이 가장 강력하면서 동시에 가장 애매한 소망으로 더욱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를 꼽는다. 그리고 창조적인 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만만찮게 한정적인 직업군이 떠오른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창조적일 수 있다. 그러면 화가나 사진작가, 영화제작자, 디자이너,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적인 면에서도 창조적일 수 있는데, 그러면 소설가나 기자, 학자가 되기를 원한다.


음악적으로 창조적인 사람은 밴드를 하고 싶어 한다. 


감각적으로 창조적이면 음식점을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통계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직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하지만, 선택 분야에 진입하지 못하고 차단당한다. 


이렇게 내면의 확신과 외부의 불가능성이 결합할 때 우리는 단순한 관심이 아닌 흔히 ‘집착’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진다. 


이런 집착을 해결하려면 진심으로 창조적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어디인지 보다 밀접하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관심을 두는 일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고 더 정밀하게 파악할수록 창조적인 관심사와 그와 관련한 즐거움이 지금껏 익숙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직업군에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취업 시장에 대한 해석이 비교적 규격화되어 있고 빤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보장된 정도보다 훨씬 더 좁은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한 가지 창조적 직업으로 이끌었는지 제대로 이해하면 다른 종류의 취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자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특정한 직업이 아니라 처음 그 안에서 발견한 일정 범위의 주제들이다. 이 직업은 가장 먼저 눈에 띈 그 주제들의 저장고였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는 직업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결국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게 되어, 가장 변변치 않은 보수를 받는 일로 전락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자질들은 오직 그 직업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알아보는 방법을 배우면 눈에 덜 띄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일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기자가 되고 싶어서 많은 투자를 해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기자’라는 단어 자체가 그 사람이 원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포착해낸 선망의 이름표가 되어버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직업은 매력과 자극, 흥분과 역동성을 암시했다. 부모와 삼촌과 이모도 이 사람을 미래의 기자라고 부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현재 이 직업은 공급과잉 상태로 퇴락하고 말았다. 결국 길은 막히고 비관만 남았다. 

이럴 경우 헛된 구직활동과 무보수 인턴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기자라는 직업에 관해 직관적으로 어떤 매력이 가장 와 닿았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이 분야에서 진심으로 추구하는 즐거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즐거움을 직업 세계 가운데서도 보다 유리한 다른 곳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이때 아주 당연하게도 애매모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해당 직업이 풍기는 광범위하고 대략적인 인상을 좋아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즐거움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본다면 뚜껑을 열고 주어진 즐거움을 더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일단 탐색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기자라는 일이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분석하며, 자신의 생각을 우아하게 글로 쓰고, 비판력으로 존경을 받는 능력이라는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요소들을 분명하게 찾아낸다면 그것들이 반드시 기자라는 직업하고만 특별히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해진다. 그 요소들이 반드시 신문과 잡지에만 존재하거나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어떤 특정 분야와 관련이 있지도 않다. 이런 자질들은 여러 가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실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투자금융회사는 신흥 시장을 분석하고 고객에게 잠재적인 약점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크다. 또 대학은 경쟁적인 환경에서 변화를 분석하고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내용을 직원들에게도 명백하고 매력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석유회사는 미래의 고용 요구를 분석하고 전 세계 인사팀에게 그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산업들은 언론 분야에 속하지 않지만, 일차적으로 그러나 다소 피상적으로 언론과 관련이 있는 즐거움과 정확히 같은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줘야 한다. 


조사를 해보면 우리가 추구해온 즐거움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성이 더 크다. 그러한 즐거움을 반드시 언론계에서만 추구할 필요는 없으며, 경제의 다른 분야에서 추구할 때 접근성이 더 좋고 안정적이며 경제적인 보상도 더 클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연습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처음 발견했던 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교직에서도 같은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교직을 반드시 초등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복합기업에서도 교사가 될 수 있다. (신입사원에게 해당 사업의 본질을 가르칠 수 있다.) 또 자산관리회사에서 까다로운 고객을 다루는 법에 대해 임원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정치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추구하는 즐거움(사회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즐거움)을 관광위원회나 석유탐사회사에서도 똑같이 활용할 수 있으며, 이쪽 일이 보수도 더 많고 중대한 일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정말로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행보가 포기나 내리막길로 보일 수 있다. 


창조적인 요구를 즐거움의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사랑하는 직업을 발견할 핵심 열쇠는 절대 특정 산업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행히도 창조적인 즐거움은 포괄적으로 존재하며, 처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더 자세히 이해한다면 더 폭넓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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