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become an adult
당연히 우리는 지금 어른이다. 신체적으로 성숙하고 직업도 있고 자동차도 운전할 줄 알며 인터넷도 맘껏 쓰고 늦게 자도 괜찮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의 객관적 지표는 우리 안의 심리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어른으로서 우리의 발달은 공식적인 성숙의 시기보다 수십 년 지체될 수도 있다. 우리 감정이 작용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가 채 인식하지 못하는 범위에서 어떠한 경멸적인 의도도 없이 우리는 계속 과거의 어린 아이처럼 기능한다.
권위적인 인물 혹은 연장자 앞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수동적이 되거나 무척 소심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부당한 권위를 안겨주고 그들이 모든 답을 알고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들에게 맞서려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다.
혹은, 다른 맥락으로 보면 우리는 성적 관심에 대해 강렬한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이 순수하고 선량하다는 증거를 드러내야 한다는 필요를 과도하게 느끼기도 한다. 마치 제약을 받지 않는 육체적인 자아가 혐오와 실망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군다.
또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아주 어린 아이들이 흔히 의존하는 두 가지 전통적인 행동, 즉 분노나 시무룩함에 만족하기도 한다.
우리가 따르는 대본은 너무 오래되어 지금 환경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성장한 어린 시절의 작은 구석 세계는 보다 넓은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린 시절 권위적인 인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가 배웠던 온갖 반응들은 일반적인 인류와 관계를 맺는 법을 알아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깨달으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조용한 아이’ 혹은 ‘반항아’ 혹은 ‘희생자’나 ‘강인한 아이’로 규정되어 왔을지 몰라도 그런 꼬리표가 계속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우리는 당장 내일 그만두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불만족스러운 직장을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려고 몇 년을 기다린다. 더는 살아계시지도 않은 부모님의 기대를 투사한 ‘여론’을 실망시킬까 두려워하며 산다. 우리는 ‘아는 사람’의 칭찬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외면할 수 있는 분노를 놓아버리는 게 두렵다.
감정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행동의 레퍼토리가 훨씬 더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권위 있는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 우리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살아갈 수 있다. 섹스는 혐오스럽다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 차분하게 말하고 전달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유능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정신의 많은 부분에서 생물학적 나이보다 크게 뒤쳐질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을 나설 수 있다. 이런저런 미묘한 면에서 우리가 아직은 완전한 어른이 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번역 이주혜
편집 손꼽힌